달러가치 급락은 글로벌 경제를 뒤흔드는 뇌관이었다. 다들 달러가 문제라고들 했다. ‘애디슨 위긴스’나, ‘폴 크루그먼’ 스탠퍼드 교수를 비롯한 유명 경제학자들이 바로 이런 달러 위기론의 선두주자였다.

국내 시중은행이 중소 기업인들을 상대로 ‘파생금융상품’을 판매한 것도 ‘달러 위기’를 맹신한 결과다.

하지만 이번에도 위기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 투자은행들을 쓸어버렸다. 부동산이 위기의 진앙지였다.

그리고 달러화의 급등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당시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내다본 이가 미네르바 박대성(31) 씨이다.

스스로를 ‘고구마 파는 늙은이’로 칭하던 미네르바는 주가 예측도 정확했다.
그의 예측 능력은 위기 국면에서 맹위를 떨쳤고, 가방끈이 긴 제도권 전문가들은 머쓱해졌다.

미네르바 박대성 씨를 지난달(7월) 29일 교대 인근의 한 로펌에서 만나 지난해 ‘필화(筆禍)’를 겪은 ‘소회’와 더불어, 하반기 경제 예측을 물어보았다.

Q.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정확한 예측을 해냈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전문대 출신이라는 냉소였습니다.
정부에서 한 개인을 그런 식으로 매도한 것 자체가 불합리했어요. 한국사회의 불합리한 병폐입니다.

Q. 요즘은 어떻게 지냅니까.
등산을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갑니다. 달리기도 자주 합니다. (신문) 기고문도 쓰고, 또 언론사 인터뷰도 하며 글도 읽습니다.


Q.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면서요. 경제학을 더 공부할 계획입니까.
마케팅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습니다. 중국이나 일본, 아시아 시장,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상품이나 서비스 혹은 스스로를 어필할 수 있는 마케터로서의 능력이 중요합니다. 자영업자 500만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국내시장에서도 마케팅은 필수입니다.

Q. 제도권 경제학자들은 지난해 금융위기 국면에서 극히 무력했습니다. 유학을 갈 필요가 있습니까.
(저는) 전체를 통해서 부분을 해석합니다. 이런 메커니즘에 먼저 익숙해져야 합니다. (제도권 전문가들은) 투기자금이 원유시장이나 금융 선물시장에 유입될 때 어떤 파급 효과를 불러올지 오판했습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에 치우쳤습니다. 미 금융시스템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가 정확한 예측의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선진 시스템은 한번 돌아보고 싶습니다.

Q. 지난해 원·달러 환율의 흐름을 정확히 예견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혹시 1억원이 지금 있다면 주식에 투자할 의향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Q. 국내 증시가 과열돼 있다고 보는 건가요. 하반기에 이른바 ‘바이 온 딥스(Buy on Deeps)’ 전략을 추천하는 재테크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주가지수가 최근 1500을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지수 1500은 ‘위작’입니다. 정부가 4조원에 달하는 돈을 풀어 증시를 부양한 결과입니다.

하반기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변수들이 많고, 그 폭발력을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좀 더 지켜보며 관망해야 할 때입니다. 단타나 그런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주가가 한때 1500을 돌파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수 1500은 ‘위작’입니다. 정부가 증시에 4조원에 달하는 돈을 푼 결과입니다. 하반기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변수들이 많고, 그 폭발력을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Q. 종합주가지수 1500이 ‘위작(僞作)’이라는 건 어떤 뜻입니까.

지금은 ‘보장된 호황기’가 아닙니다. 무역 흑자가 많이 나고 있지만 정상적인 수출입 동반상승의 결과는 아닙니다. 미국이 만약 금리를 올리면 국내에 투자된 자금이 부분적으로 이탈할 겁니다.

자금이탈은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불러오게 마련입니다. 환율 상승과 더불어 금리 조정으로 (자산가격의) 거품이 꺼지면 주가도 조정을 받게 될 겁니다.

Q. 국내 증시가 하반기에 큰 폭의 조정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까.

한국 증시는 ‘이중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부가 증시를 떠받쳤으니 그 하락 폭도 크겠죠. 미국에서 금리인상 냄새만 풍겨도 국내에서 반응이 올 겁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버블이 꺼지면 주가가 조정을 받는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겠습니까. 한때 디커플링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습니다만, 경기 불황기에는 미국 경기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는 ‘커플링’이 대세입니다.

Q. 한국 정부가 출구전략에 신중한 것도 자산시장에 미칠 영향을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인가요.

한국과 미국의 금리는 지난 2005년 역전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전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전 세계가 똑같은 저금리 기조가 아니었어요.

엔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라는 변수도 있었습니다. 금리가 역전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입니다. 제로 금리인 상황에서 금리가 역전되면 100% 돈이 빠져나갑니다.

Q. 하지만 소비심리를 비롯해 괜찮은 경제지표들을 애써 무시하는 건 아닙니까.

숫자를 그대로 믿으면 곤란합니다. 낙관과 비관의 신호들이 어지럽게 교차합니다. 하루는 소비심리가 회복됐다고 언론에서 떠들다가, 다음날 갑자기 미 주택가격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소비심리가 회복된 것이지, 소비가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Q. 정부가 재정을 더 과감하게 풀면 되지 않을까요.

문제는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미국 등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리스크가 있지 않습니까.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선진국과 비교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물론 북한 리스크가 없다면 미국처럼 돈을 더 많이 써도 상관없겠죠.

Q.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회복 여부를 언제 알 수 있습니까.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재정’으로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소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은행들이 돈을 풀지 않아도 봄기운이 완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 재정의 약발이 떨어지는 3분기나 4분기경이면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세계 경제가 정말 바닥을 치고, 건강을 회복했는지 알 수 있겠죠.

Q. 지난해 과다한 해외차입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른 국내 은행도 경영지표가 호전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저축률이 한때는 20%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3% 정도에 불과합니다. 예대마진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은행채를 발행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도입니다. 가계 부채도 많습니다. 은행에 개인예금이 몰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Q. 은행권을 뒤흔들 리스크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수수료를 더 올리고, 대출이자를 인상하는 것만으로는 성장하기는 어렵습니다. ‘투자은행’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지난해 금융위기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금융 파생상품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역설적으로 위기 국면에서 그 피해가 적었던 것은 활동 무대가 국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Q. 국내 은행들이 스페인 ‘산탄데르’ 모델에 주목하는 것도 해외 시장에서 성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포석이 아닌가요.

산탄데르은행이 북미, 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파고들 수 있던 이면에는 이 지역이 과거 스페인 영역권이었다는 사정이 한몫을 하고 있어요.

구 식민지 사람들의 소비 습관이나 습성 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략할 수 있던 겁니다. 유럽 업체들이 아프리카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잘 들어보지도 못한 은행이 금리를 조금 더 준다고 해서 거래를 트기는 쉽지 않습니다. 국내은행들의 단기 위주 경영방식도 문제입니다.

Q. 해법이 있습니까.

글로벌 은행들은 일찌감치 해외 시장에 진출해 기본적인 인프라를 다 깔아놓은 상태입니다. 실적이 안 좋을 때 은행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건이 형성돼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은 시장 개척에 한창 나서며 물적 기반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성과 부진의 책임을 은행장들에게 묻는다면 해외 시장에서 철수해 국내 영업에 주력할 겁니다. 긴 호흡으로 성과를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저축률이 한때는 20%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3% 정도에 불과합니다. 가계 부채도 많습니다. 은행에 개인예금이 몰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Q. 하지만 파생상품 투자에 나섰다 천문학적인 손실을 초래한 국내 은행장이 비판의 도마에 최근 올랐습니다.

투자 당시에는 이익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긴 호흡으로 ‘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책임을 묻는다면 리스크가 따르는 모든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Q. 중국은 지난 1997년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는 물론, 미국발 금융위기의 후폭풍에도 독야청청하지 않습니까.

중국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을 이해해야 합니다. 중국인들은 매우 실용적입니다. 사례가 없으면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이론을 믿지 않습니다. 바닷가에 인접한 특구를 만들고 그 득실을 철저히 따져본 뒤 다른 지역에 적용하는 것이 그들의 실용적인 접근방식입니다.

중국은 지난해 가이트너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위안화를 절상하지 않았습니다. 외환시장을 대폭 개방했다 환란을 겪은 한국의 사례를 철저히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환율제도는 마치 고정환율제 같습니다. 변동성이 극히 적은 편입니다. 중국은 한국을 정치, 경제 분야의 테스트 마켓으로 삼고 있습니다.

Q.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은 전 세계 투자고수들의 로망이기도 한데요. 혹시 그를 닮고 싶은 건 아닌가요.

조지 소로스를 만든 게 바로 영란은행 사건이 아닙니까. 캐리 트레이드로 ‘파운드’화에 ‘몰빵’을 해서 돈을 벌었죠. 그의 재귀성 이론에는 관심이 높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엄청난 기부를 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Q. 지난해 키코 상품을 구입한 중소기업들은 ‘달러위기’를 경고하는 전문가들을 너무 믿었던 것 같습니다. 재테크에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훗날) 돈을 벌어 가난한 이들이나, 대중들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Q. 요즘 가장 자주 보는 지표가 무엇입니까.

미국 주택시장 동향입니다. 거래량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가격의 추이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답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습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