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블랙스완(black swan)을 고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 충분히 예측 가능한 문제들은 필히 확인해 대비하자. 최악을 알고 있음에도 공론화 않고 대비하지 않는 습관을 버리자. 최악을 대비하되, 절대 최선에 대한 기대는 버리지 않는 기업문화. 최고경영자(CEO)의 올바른 질문이 핵심이다.

 

영국속담에 ‘최선을 기대하며, 최악에 대비하라(Hope for the best, prepare for the worst)’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일부는 부정적 반응들을 보인다. 특히 경영자들은 낙관주의적 현실주의자가 돼야 하는데 그렇게 비관주의자가 돼버리면 회사가 어떻게 되겠느냐 한다.

정확하게 새겨야 할 표현이 있다. 분명히 ‘최악을 대비하라’는 주문 앞에 ‘최선을 기대하라’는 표현이 있다. 낙관주의의 기본을 놓지 말라는 의미다. ‘최악(the worst)’이란 의미도 그렇다. 흔히 ‘최악’을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어처구니 없는 블랙스완(black swan: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기업 위기관리에서 ‘최악에 대비하라’하는 주문은 전사적 위기관리 시스템에 있어 각 부문별 역할과 책임(R&R: role and responsibility) 배분을 전제로 한다. 배분돼 있는 부문별 역할과 책임은 해당 부문이 리드해 관리해야 할 위기에 대한 정확한 규정을 가능하게 한다. 즉, 스스로 리더십을 가지고 관리해야 할 위기를 해당 부문이 미리 알고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시스템에서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은 좀 더 정확한 모습을 가진다. 해당 부문 구성원들은 물론 전 직원들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최악’을 그리게 된다. 특정 업무 분야에서 일정 기간 재직한 부문 구성원이라면 ‘A라는 위기상황에서 예측 가능한 최악의 상황은 이런 이런 것이다’는 공감대를 가진다. 이런 공유된 ‘예측 가능한 최악’을 대비하라는 주문이다.

현실은 어떤가? 일부는 이렇게 간단한 최악을 예측하는 습관이나 훈련도 부족해 보인다. 외부에서 “○○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듯 한데요. 어떠세요?”라고 질문하면, 그런 실무자들은 “그럴 일은 없어요”라는 식으로 단정지어 답변 한다. “그래도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잖습니까?”라고 재질문하면, 그들은 “뭐, 굳이 상상한다면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라고 답변한다.

하지만 위기란 확률에 기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더더욱 경계해야 하는 것은 실무자들의 ‘설마’ 또는 ‘별로’라는 주관적 느낌이다. 이는 평소 실무적으로 ‘최악’에 대한 예측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거나, 심리적으로 꺼리는 고질적 습관 때문이다.

또한 다른 실무자들은 경영진 앞에서 ‘최악’을 이야기하면 자신들의 업무 능력이 저평가되지 않을까 두려워해 최악을 거론하지 않는다. 항상 ‘최선책’의 제시에도 경영진들은 의심을 품고 조바심을 내는데, 혹 ‘최악’에 대한 예측과 설명을 곁들이면 살아남을 프로젝트가 있겠느냐 생각한다. “막상 시작되면 ‘최악’의 상황은 어떻게든 다 관리되곤 합니다. 그럼에도 미리 경영진들에게 부정적 느낌을 줄 필요가 있나요?”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는다. 이렇기 때문에 CEO로서 위기관리에 강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최악은 어떻게 예측하고 있는가?” 습관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제대로 된 실무자라면 대부분 ‘최악의 상황’을 마음속으로 미리 예측하고 있다. 단, 경영진 앞에서 깊이 설명하기 꺼리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이를 질문을 통해 확인해 주는 것이 위기관리에 강한 기업과 기업문화를 만드는 CEO의 습관이다. 그들로 하여금 ‘최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 주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설명하는 데 있어 자신감을 갖게 하자.

임직원들로 하여금 ‘CEO께서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항상 확인하시니, 문제 발생이 가능한 상황들을 예측해 보고 이에 대한 대비책들을 강구해 보고하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자. 실제 위기가 발생하기 전, 이런 프로세스와 사고방식은 구조화돼야 한다. 그래야 위기 발생 직후 혼란한 시기에도 위기관리 위원회 구성원들이 전사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구체화할 수 있다. 발생한 위기와 관련해 각 부문들이 그려내는 ‘최악의 상황’들을 하나로 모으면 ‘전사적인 최악의 상황’을 목도할 수 있게 된다.

최악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면, 이에 대한 대비는 당연히 가능하게 된다. 더 나아가 그러한 예측 가능한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지 않도록 많은 위기관리 활동들로 상황에 적극 개입하게 된다. 결국 예측 가능했던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부는 불행히 최악의 상황을 맞더라도 이에 대비한 플랜B(비상계획)를 가동할 수 있도록 전사적으로 준비될 것이다.

최악을 이야기하는 느낌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감정이다. 특히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미리 불편한 생각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우울하게까지 한다. 이해한다. 하지만 최선을 기대하며 최악을 준비하는 것은 CEO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습관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인해 최선에 대한 기대조차 종종 포기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