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 1947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한국선물학회 회장, 한국재무학회 회장,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소장, 고려대학교 총장,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동대표를 거쳤고 현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 코스피가 단숨에 1500을 넘어섰다. 부동산가격도 2006년 수준을 회복했다는 평가다. 이에 한국 경제의 출구전략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국내 경기선행지수, 소비지수, 기업실적 등이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어 이제 터널은 지난 것 아니냐는 의견과 함께 유동성 흡수에 대한 논의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

반면 아직 터널을 통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의 대응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시민 운동가 출신의 전 고려대 총장,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 시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유동성이 투기와 맞물린 버블이기 때문에 실질경기와는 상관이 없다”면서 “투기를 잡지 못하면 더블딥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Q. 국내 경기의 경기선행지수와 소비지수가 오름세를 이어가는 등 긍정적 시그널이 나타나고 있어 이제 최악의 상황은 벗어난 것 같은데 더블딥 가능성을 경고하신 이유는.

정부의 재정지출과 금리인하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경기회복이 아니라 투기회복이 먼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생산자금이 아닌 부동산, 증시 등 투기자금으로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투기 열풍을 잡지 못하면 국내 경제는 회복되다가 다시 주저앉는 더블딥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Q. 그렇다면 국내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시는 건가요.

불안감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회복단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작년 4분기에 성장률이 -5.1%였기 때문에 이제 수렁에서 절반만 나온 격이거든요.

상반기 국내 성장률 2.3% 달성의 3가지 요인은 원화 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출호조, 희망근로로 인한 소비촉진, 내수를 살리기 위해 자동차 노후 교체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 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3가지 동력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또한 정부가 상반기에 예산의 65%를 지출해 인위적으로 부양했던 부분이 하반기에는 35%만 남아 있기 때문에 지출여력이 없어 또다시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과정이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찾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표가 조금씩 호전되고는 있지만 그것만 보고 경제가 성장동력을 찾았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정부의 재정지출과 금리인하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경기회복이 아니라 투기회복이 먼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Q. 현 상황이 경기회복 단계가 아닌 위기진행형 국면이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는 과도기라는 거죠.

어디 방향으로든 복병을 만나는 과도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경기가 상승하면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시엔 디플레이션과 만나게 되는 진퇴양난의 형국이죠.

둘 중 더 가능성이 큰 것은 인플레이션입니다. 팽창정책으로 인해 부동자금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인플레이션은 부동산, 증시상승과 동반해 등장합니다.

여기서 인플레이션이 투기와 얽히면 국내 경제는 또 한번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반 서민경제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투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경기가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오르는데 서민들은 실직자가 늘어나 구매력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죠. 그래서 다시 침체기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Q. 투기만 잡을 수 있다면 국내 경제가 정상적으로 경기회복을 할 수 있다는 건가요.

물론 자금흐름만 부동산과 증시에서 산업으로 되돌린다면 그 여력이 확산되면서 국내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의 대응책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출구전략을 찾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죠.

Q. 그렇다면 시중의 유동성을 잡기 위한 출구전략이 답이 될까요.

출구전략이 시행되면 1차적으로 고통받는 것은 서민과 중소기업입니다. 가계부채가 700조원에 이르고 1가구당 부채가 4000만원에 이르는데 금리를 올려 돈줄을 조인다면 서민가계는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자리 불안에 더해 이자 갚기도 어렵고 빚을 내기도 어려워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지금도 영업이익을 내도 이자도 못 갚는 중소기업이 부기지수입니다. 지금은 출구전략을 함부로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Q.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도 안 되고 출구전략도 아니라면 해법은 무엇인가요.

유동성이 부동산과 증시가 아닌 산업자본으로 흐를 수 있도록 자금로(路)를 바꿔야 합니다. 중소기업이 창업하고 신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돈줄기를 바꾸는 것이죠. 그래야 투기불안이 사라지고 일자리 창출이 늘어나 경기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9988’, 투자의 99%와 고용의 88%는 중소기업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대기업이 살아나면 성장률은 높아지겠지만 서민의 고용과 투자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이에 미래 지식산업과 내수산업, 서비스 등 서민과 중소기업이 살 수 있는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Q. 정부는 신성장동력을 녹색산업, 4대강 정비사업 등에서 찾고 있는데 교수님이 제시하시는 신성장동력은 무엇인가요.

정책의 정책은 초점이 잘못 맞춰져 있습니다. 문제는 선택과 집중, 지속성인데 지금껏 정부정책은 출자총액제한제폐지, 금산분리법, 수도권규제완화 등 대기업, 고소득층 위주로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 왔습니다.

중소기업과 내수산업을 위해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대책을 내놓는 데 그쳤죠. 백화점식 나열만 했지 실체는 없는 정책인 것입니다.

어떤 산업을 발전시켜야 서민과 중소기업이 살아나겠는가를 고민해서 경제가 균형을 맞추면서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제조업은 자동화, 정보화로 인해 일자리 창출이 힘듭니다. 일자리 창출은 금융, 지식, 서비스산업에 달려 있습니다.

이에 나노, 바이오 등의 미래 지식산업과 금융, 레저, 관광 등의 서비스산업과 내수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먹고, 쓰고, 즐기는 산업을 일으켜야 합니다.

오희나 기자 hno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