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너리 리포트’에서 프리크라임 팀장 존 앤더튼(톰 크루즈)은 누명을 쓰고 필사적으로 탈주한다.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자기부상 자동차를 옮겨 타며 수사팀의 추격을 따돌린다. 주인공은 손가락 DNA로 시동을 걸고 차에서 내리면 자동으로 주차된다.

현대 5G그랜저에 승차한 운전자는 스마트폰을 통해 차량을 원격제어할 수 있다. 영화007 제임스 본드처럼 지도와 증강현실을 이용해 차량 위치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BMW 차는 현재 날씨 정보를 받아와 차 안 상태를 날씨에 맞춰 자동 조절해준다. 또 미국 드라마 전격Z작전 ‘키트’처럼 운전자 취향에 맞는 음악을 재생해주고 음성으로 목적지를 말하면 길 안내를 해주다. 단순히 눈요깃감으로 치부했던 미래의 자동차가 점차 실생활로 들어오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생각하는 것보다 빨라서 영화 속 미래 자동차를 현실로 만날 날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전기모터로만 움직이는 전기자동차는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스스로 움직이는 무인자동차 기술도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KT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이미 자동차 총 제조원가에서 IT기기, 소프트웨어의 전자부품 비율이 2010년 25%에 육박했다.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제조원가의 47%가 전자부품으로 구성돼 있을 만큼 자동차는 기계중심에서 전자중심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자동차와 IT 간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스마트카(smart car)’ 시대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2013CES, IT를 접목한 스마트 자동차의 습격

최근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인 ‘라스베이거스 소비자 가전전시회(CES)’에서 유명 IT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자동차 최고경영자가 기조 연설자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2008년 릭 왜고너 제너럴모터스 회장에 이어 작년 CES에서도 디터제체 벤츠 회장이 기조 연설자로 나왔다. 또한 가전쇼와 모터쇼의 경계가 무너질 만큼 최근 CES에서는 최첨단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차세대 스마트 자동차가 대거 선보여졌다. 올해 CES에서는 현대·기아자동차, GM, 포드, 크라이슬러, 렉서스, 아우디 등 세계적인 자동차회사가 참여했다. 별도로 마련된 자동차전시코너에서는 551개 관련 업체가 신기술을 소개했다. 모터쇼를 방불케 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특히 이번 CES에서 가장 눈에 띄는 스마트 자동차는 운전자가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주행하는 무인자동차다. 도요타는 '렉서스 LS 600h' 모델에 카메라, 레이더 등 각종 센서를 붙여 개조한 무인자동차를 들고 나왔다. 전방에 2대의 카메라를 배치해 사람과 자동차, 도로표지판, 과속방지턱, 신호등을 구별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지붕 위에 설치된 레이더는 360도 각도로 회전하며 주변 70미터(m) 이내에 있는 사물의 형태와 움직임을 파악한다.아우디 또한 원격조종으로 주차할 수 있는 '무인주차기술'을 공개했다. 전·후방 각각 6개, 총 12개의 센서를 이용해 운전자의 조작 없이도 자동으로 주차한다. 아우디에 따르면 현재 무인 주차기술은 운전자의 리모컨 조작으로 주차장에 들어가는 단계까지 개발됐다.

무인자동차 이외에도 운전자상태감지(DSM)시스템과 3차원 동작인식, MHL(Mobile High-Definition Link)기반의 스마트폰 연동 기술도 화제가 됐다. 현대자동차가 소개한 운전자상태감지시스템은 운전자 얼굴을 인증하고 운전 중 졸음 등 상태를 감지해 경고해 주는 안전 제어장치다. 이 시스템은 즉시 상용화 가능한 기술이다. 첨단센서와 컴퓨팅기술로 운전자 시선이 엉뚱한 방향을 향해 있거나 졸음운전, 판단실수로 발생하는 사고가능성을 예방하고 줄여준다. 또한 차량 간 양방향 제어가 가능한 안드로이드 스마트 폰 연동 시스템도 참석자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었다.

 

新 자동차 산업혁명···IT융합 ‘열공’ 중인 자동차

정보통신기술(ICT)융합과 소비자 취향 다변화로 자동차시장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자동차기업들은 스마트카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차량-IT융합(Convergence)기술력 확보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 자동차 전장부품 기반 기술을 강화한 데 이어 IT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스마트카 원천기술 확보까지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프리우스’를 통해 높은 IT기기 장착 비율을 보인 도요타는 '엔튠(Entune)'이라는 스마트카 플랫폼으로 차량 간 소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엔튠은 음성을 통해 영화 티켓을 예매하고 식당 등을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다. 2011년 2월 공개된 렉서스 모델에 이 시스템을 장착했다. 2011년 4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차세대 애저(텔레매틱스 플랫폼) 구축에 합의했다. 도요타는 ‘애저(Azure)’를 차세대 전기차에 장착해 세계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또 도요타는 구글과 손잡고 프리우스를 개조해 만든 ‘무인 자동차(일명 구글카)’를 일반도로 주행 실험에 성공시켰다.

포드도 IT융합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며 스마트카 기술로 시장 탈환을 노리고 있다. 미시건주립대와 공동으로 자동차와 연계·운영이 가능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와 합작해 운전자가 음성으로 다양한 기기들을 제어할 수 있는 차량 내 통신·오락시스템 ‘싱크(Sync)’를 개발했다. 이미 전체 포드 모델의 70%까지 장착된 싱크는 약 1만 개의 음성명령 지원이 가능하고 운전자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발달해 있다. 포드는 이러한 IT 기술력으로 2월 25일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올 뉴 에코스포츠 SUV 차량을 선보였다. 싱크를 탑재한 이 차량은 라디오에서부터 전화, 내비게이션, 실내 온도 조절 등 약 1만 개의 음성 명령을 인식하고, 차량 내에서 와이파이 연결을 통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도 이용할 수 있다.

BMW의 경우, 구글, 인텔, RIM 등 주요 IT업체와의 활발한 제휴를 통해 IT융합 기술력을 확보 중이다. 구글과 함께 지능형 솔루션인 ‘비전 커넥티드 드라이브’를 개발했다. 주행상태와 주변환경을 파악한 뒤 특정상황에 도움이 되는 1500개 이상의 정보와 메시지를 운전자에게 음성으로 알려주는 ‘미션 컨트롤’도 상용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외에도 GM은 모토로라와 함께 텔레매틱스 '온스타'를 개발해 차량원격조종, 길안내서비스 차량도난 방지 기능을 개발했다. 벤츠는 '커맨드시스템'을 통해 통합된 멀티미디어 기능을 선보이고 텔레에이드 시스템을 개발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충돌센서들이 사고내용을 기록해 곧바로 차량의 위치와 차 번호 등을 가까운 서비스센터로 송출한다.

이렇게 자동차산업이 차량-IT융합 기술력에 목을 매는 이유는 다른 아닌 스마트카시장의 성장율에 있다. 소비자의 차량 IT기기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카 세계 시장규모는 2010년 1,586억 달러에서 2019년 3,011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연평균 9.3%의 높은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스마트카 시장 규모는 2010년 약 88억 달러 규모로 형성되었으며 2019년에는 138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 약 4.2%로 세계시장 성장률에 비하여 다소 낮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포드의 경우 IT 기기의 탑재와 기능 향상으로 2010년 미국 자동차브랜드의 인기도가 전년대비 11% 상승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정태오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인식의 확산, 디지텔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20~30대층이 주요소비계층으로 성장하면서 스마트카 시장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패스트 팔로어’에서 벗어나 IT 톱 클래스로

CES 2013에서 현대·기아자동차는 약 370㎡ 면적에 벨로스터 터보와 블루스퀘어(HND-6) 콘셉트카를 내놓았다. 음성인식과 얼굴인식 등을 활용한 신기술을 대거 풀어놓았다. 스마트폰 연동 제어(MHL)와 근거리 무선 통신(NFC), 18인치급 대화면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등도 함께 공개했다. 도요타, 포드, GM 등 경쟁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스마트카 기술력을 과시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전자와 자동차 산업 간 융합 시도가 미미했기 때문에 국내 차량-IT융합 기술력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 받았다. 특히 고안전 반도체 및 전장기술은 유럽에 비해 길게는 5년 가까이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미래 차량IT 신기술 발굴을 위해 2008년부터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현대·기아차는 2008년 세계적 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전략적 제휴를 맺고 차량-IT 및 인포테인먼트 분야 첨단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이듬해 2009년도에는 삼성전자와 지능형 자동차용 반도체를 공동개발하기로 하고 MOU를 체결했다. 또한 미래IT경쟁력 확보 및 전문기업 육성을 위해 정보통신연구진흥원과 함께 차량IT혁신센터를 설립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 2010년 ‘CES2010’에서 첫 결실을 볼수 있었다. 당시 기아차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공동개발한 시스템 ‘UVO powered by Microsoft’ 공개해 차량IT 기술의 앞선 경쟁력을 선보였다. 현대차는 다음 해 ‘CES2012’에서 무선랜(Wi-Fi)과 이동 통신망을 활용한 ‘스마트 커넥티비티 시스템’, 세계 최초 자동차용으로 개발된 '근접 인식 마우스틱’, 주행 상황과 운전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는 ‘차세대 LCD 클러스터’ 등을 소개했다.

최근에는 구글과 손을 잡고 차량 내부에 구글맵 서비스를 탑재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미국에서 판매 되는 기아차에는 텔레매틱스 시스템에 구글지도와 구글 지역정보가 적용될 예정이다. 이전에 아우디 등 내비게이션에 구글맵을 적용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기아차와의 협력은 구글맵을 내비게이션에 연동할 뿐만 아니라 테레매틱스 부분까지 확장된다. 이에 기아차 관계자는 “경쟁사와 차원이 다른 인포테인먼트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 “운전자가 운전 중일 때도 항상 포괄적이고 정확하며 유용한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갈길 먼 스마트카

작년에 기아차에서 출시한 K9의 장착된 최첨단 기술 중 하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길 안내 및 교통 정보를 전면 유리에 표기해주는 장치다. 하지만 기아차에 HUD를 납품하는 회사는 일본의 덴소다. 기아차는 국내 부품업체와 계약을 고려했지만, 기술력 부재로 결국 덴소가 양산하게 됐다.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단위에서는 스마트카 기술력이 세계 Top class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 뒤를 받쳐주는 중소부품업체의 경쟁력은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조광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연구원은 “2차 혹은 3차 부품업체 기반이 취약해 자동차·IT 융합분야의 연구와 기술개발이 광범위하게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스마트카 기술력이 완성차와 부품업체 간에 불균형이 심하다 보니 DSM 시스템 등의 원천기술을 대부분 외국 부품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내 완성차들이 외산 부품 의존 현상이 심화되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스마트카 관련 신기술 도입이 지연될 수 있고 부품가격이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최근 현대·기아차의 전장 부품 비중이 크게 늘면서 완성차 가격이 올라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 초기 단계인 인포테인먼트 등에서는 선진 기술대비 유사한 수준이나, SW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 개발 측면에서는 아직 후발 주자로 경쟁력이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산업융합원천 R&D 전략’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카 기술력은 유럽의 86% 수준으로 1.3년 기술격차가 난다.하지만 기계, 소재, 전기, 전자 등 풍부한 전후방 연관산업이 있고, SK, KT 등 자동차와 통신 산업 간 융합시도가 확대되고 있어서 선진국과의 기술 수준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최근 외국과의 기술격차 해소를 위해 완성차업계 중심으로 차량IT 신기술 발굴 역량을 모으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차량IT혁신센터를 통해 IT중소기업 연구개발 지원하고 내비게이션 및 위치기반 서비스(LBS, Location Based Service), 차량용 인터페이스(HMI, Human Machine Interface) 개발 등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김윤기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 기술은 걸음마 단계다”며 “꾸준한 투자와 전·후방 산업 간에 융합이 잘 이루어진다면 기술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