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 최고경영자과정은 이제 전국 100여개 대학에서 300개 이상의 과정이 개설된 상황이다.

수강생 수로 따지면 학기당 1만여명, 등록금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시장규모가 600억~700억가량으로 추산될 정도의 빅마켓이 됐다.

하지만 국내 최고경영자과정의 질적 수준은 아직 내세울 만하지 못하다는 게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교수들의 중론이다.

폭발적인 양적 증가로 경영자들의 학구열을 가늠해 볼 수도 있지만 인적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특유의 문화 탓에 실질적인 경영지식 전달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

1999년부터 10년째 경희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김형재 책임교수와 이제 막 시작을 하는 이화여대 최고명강사양성과정 안병재 책임교수,

W-AMP라는 독자적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 중인 성균관대의 차동욱 책임교수, 그리고 최고경영자과정계의 명강사이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4T CEO 지속경영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한근태 책임교수 등 4명의 책임교수들에게 국내 최고경영자과정의 디자인 전략에 대해 물었다.


불황 여파로 수강생 모집이 안 돼 폐강을 결정한 과정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경영자들의 학습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안병재 이화여대 최고명강사양성과정 책임교수(이하 안병재) ● 그렇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남보다 한발 앞선 전략을 고민하는 일은 회사 경영에서 매우 중요하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질수록 경영자들을 위한 전문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차동욱 성균관대 W-AMP과정 책임교수(이하 차동욱) ● 예전에는 기업의 경영자들만 최고경영자과정을 듣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수강생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식융합에 대한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영자들도 이럴 때일수록 정치인이나 문화계 인사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위기탈출의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김형재 경희대 최고경영자과정 책임교수(이하 김형재) ● 최고경영자과정이 근대 산업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몇몇 과정의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공급 과잉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여러 과정을 섭렵한 CEO들이 들을 만한 참신한 과정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근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4T CEO 지속경영과정 책임교수(이하 한근태) ● 차별성을 갖는 참신한 과정을 발굴하기 위해서 정확한 어젠다를 던지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전국적으로 300개가 넘는 과정이 개설되다 보니 차별성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공급과잉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실 변별점을 찾기 어려운 과정도 많은 것 같다. 또한 인기 강사의 경우 한 과정에서만 강의하지 않기 때문에 수업내용이 겹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한근태 ● 공급이 과잉된 측면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그것 자체로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경영자들의 학구열이 그만큼 높아서 생긴 현상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물론 강사가 겹치는 문제도 생기지만 경쟁력 있는 과정들만 살아남음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로 본다.

차동욱 ● CEO들에게 인기 있는 강사가 따로 있는 건 사실이다. 교육서비스의 질 차원에서 웬만하면 다른 과정을 진행한 강사를 섭외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김형재 ● 여러 과정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들도 각 과정마다 다른 내용의 강의를 한다. 과정별로 특화된 강의라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안병재 ● 불황 여파로 최고경영자과정에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몇몇 특정 과정에 유명한 강사와 유명한 수강생들이 몰리고 있다. 대학들은 경영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과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비학위 과정에 국내에선 카이스트 최고경영자과정만이 유일하게 50위 안에 들었다. 벤치마킹할 만한 선진국 사례가 있나. 있다면 어떤 점을 가장 배워야 한다고 보는가.

안병재 ● 중요한 것은 차별화된 프로그램이다. 외국의 최고경영자과정의 경우 개인과 회사에 필요한 맞춤 경영자과정, 또는 소수 정예 토론 수업,

다양한 나라의 경영자들과 미팅 및 다양한 문화 견학 등 보다 선택의 폭이 다양하면서도 고객 중심의 차별화된 과정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근태 ●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미시간대 과정을 수강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최고경영자과정을 위한 독립된 건물이 마련돼 있고 굉장히 다양한 과정이 돌아가고 있었다. 인프라의 차이가 크다고 본다.

차동욱 ● 외국의 과정과 단순비교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국내 기업환경에서는 인적 네트워크 교류가 매우 중요하지만 외국의 유명 과정들에서는 전문적인 경영지식 학습에 몰두하는 편이다.

국내 기업환경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무시하고 가기는 힘들기 때문에 직접 비교가 쉽지 않다.

김형재 ● 경영자들의 학습열을 만족시켜 줄 만한 과정이 국내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차 교수 말대로 외국 과정들과는 그 성격부터가 조금 다른 면도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의 특화된 과정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지나치게 흥미 위주의 과정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고, 선택의 폭이 그만큼 다양해졌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형재 ● 친목만을 강조한 과정이 아니라면 다양성 추구라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이종업계 간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동종업계 간의 전문성 심화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차동욱 ● 비슷한 생각이다. 보다 다양한 과정들이 더 많이 생겨야 한다. 그래야 상호 학습의 바탕이 넓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안병재 ● 인문학과 엔터테인먼트, 해외 탐방과정 등이 확대되는 추세인 것 같다. 선택의 폭이 넓어져 수강생들에게 좋은 기회라고 본다. 한편에선 카이스트와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과정처럼 심층적인 과정들도 계속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한근태 ●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수요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자신들만의 어젠다를 던지는 과정이라면 살아남을 것으로 본다.

최고경영자과정이 ‘대학의 기부금 모금 통로’라든가 ‘학벌 세탁 통로’ 등 부정적인 모습도 자주 지적되고 있다. 이런 부정적 시선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형재 ● 일부 대학에서 기부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워낙 성공한 사람들끼리 모여 듣는 과정이다 보니 그러한 시각이 생기는 것 같다.

안병재 ● 내가 알기로도 기부금의 경우 대개 자율적으로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율적 참여야 문제 될 게 없다고 본다.

최고경영자과정을 듣기 위해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닌 만큼 학벌 세탁 문제도 별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차동욱 ● 경영자들이 최고경영자과정을 통해 대학에 대한 이해와 애착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가 대학의 부족한 점이나 보완할 점을 먼저 느끼고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한근태 ●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우리 과정도 처음에 거액의 기부를 하겠다고 한 CEO가 있었지만 말렸다.

대신 액수를 줄여 전액 장학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차 교수 말대로 경영자가 대학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려 도움을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

최고경영자과정을 듣고자 하는 CEO들이 가장 염두에 두어야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안병재 ● 가능하다면 다양한 과정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회사 내에서 고민하는 문제도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다 보면 찾고 싶은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정 참가를 결심했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석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중요하다.

김형재 ● 다양한 과정을 듣되 너무 대학의 명성에만 치우쳐 과정을 선택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실질적인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인적 교류 분위기가 잘 되어 있는 과정을 위주로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

차동욱 ● 스스로가 얻고 싶은 정보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 후에 선택해야 한다. 대부분 전통이 깊은 명문대일수록 인적 교류나 프로그램의 내실에 있어서 나은 게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흥미 위주의 과정보다는 경영지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강의를 섭렵할 수 있는 과정을 권한다.

한근태 ● 대체로 비슷하다. 과정의 테마가 무엇인지 정확히 살피고, 그 테마가 나의 관심사와 일치하느냐를 따지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이 과정을 수강했던 수료생들의 면면이나 강사진을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이런 점들은 말 안 해도 CEO들이 먼저 안다.

국내 최고위과정들이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한근태 ● 기본적인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규모가 작은 학교의 경우 교내에서 과정을 진행할 수 없어 호텔 등 외부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일단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다양한 과정의 적재적소에서 활약할 강사 인력 풀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형재 ● 인프라 확충에 대해 공감한다. 전용 건물까지는 아니더라도 학교 측에서 더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면 만족도를 더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안병재 ● 다양성의 측면에서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실질적 도움이 될 만한 과정을 더 개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최고경영자과정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차동욱 ●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무게는 경영지식 쪽에 두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 실제로 최근 수강생들의 경우 경영 공부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