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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으로 불황 뚫는다
“양서에서 교훈 얻자”… 책선물·독서토론 인기

‘힘들 때에는 책에서 경영을 배워라!’
불황타개를 향한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독서경영’이 뜨겁다.
직원들에게 불황타개 아이디어와 교훈을 주기 위해 책을 선물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전사적 차원에서 기업 내 독서 분위기를 유도하는 경영자들의 활동이 눈에 띄고 있다.
한국독서경영연구원의 다이애나 홍 원장은 “CEO들은 불황일수록 회사를 잘 운영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불황기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다”면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회사운영의 철학을 제공하는 독서에서 그러한 고민의 해답을 찾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우깡’ 파문 극복한 농심의 독서경영
CEO 중 ‘독서경영’의 대명사로까지 거론되는 이는 바로 손욱 농심 회장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 12월 중순 마케팅본부 전 직원들에게 ‘Back to the basic’ 시리즈 중 하나인 《마케팅의 과학》이라는 책을 선물했다. 막연한 시장조사나 예측이 아닌 구체적인 목적의식을 갖고 마케팅 조사와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점을 직원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한 달에 15권 정도 책을 읽는다는 손 회장은 “어려운 때일수록 예전 베스트셀러를 찾아 읽어야 한다. 이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변화와 혁신의 길이 보이기 때문”이라면서 “《마케팅의 과학》을 통해 경제가 어렵고 소비가 침체된 시기일수록 마케터들이 원점에서 고객을 바라보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랬다”고 밝혔다.
그는 이보다 앞선 같은 해 11월에도 직접 일본 출장에서 사온 《식품공장의 안전관리》외 1권을 직접 번역해 생산부문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사실 손 회장의 독서경영은 지난해 농심의 최대 위기상황이었던 ‘새우깡 파문’이 일 때 가장 빛났다. 농심의 대표상품인 새우깡에서 이물질이 발견돼 ‘생쥐깡’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을 당시 손 회장은 전국의 농심 공장을 일일이 돌며 “위기일수록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자. 그리고 다시 일어서자”며 직원들을 독려했다고 한다.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 역시 최근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인 《일본전산 이야기》를 신입사원 100여명과 각 계열사 팀장급을 포함한 200여명에게 직접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 《일본전산 이야기》는 10년 동안의 경기 침체기에도 놀랄 만한 성장을 한 일본전산의 성공 노하우가 담겨 있는 책으로, 특히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의 독특한 인재경영이 독서 포인트다.
주 회장은 책 마다 ‘000에게’라는 직원들 개인이름과 친필서명까지 일일이 적어 선물했다. 과거에도 추천도서는 있었지만 주 회장이 직접 직원에게 책을 선정해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
주 회장은 “임직원들이 불황을 기회로 극복한 기업의 사례를 읽고 공부해 실제 업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선물하게 됐다”고 말했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도 지난해 11월 《빙산이 녹고 있다고》라는 책을 팀장급에게 직접 사서 나눠줘 독서경영을 실천한 CEO로 손꼽힌다.
이 책은 현재 상황에 안주하는 기업이 가장 위험한 기업이며 변화와 혁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밖에 지난해 초 보광훼미리마트에 부임한 백정기 사장의 경우, 같은 해 상반기 장사의 원칙과 기본을 역설한 《장사의 원점》과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를 설명한 《장사의 창조》를, 하반기에는 《상식파괴 경영학》 도서를 1000여명의 전 임직원에게 증정했고, CJ홈쇼핑의 임영학 대표는 《이기는 습관》을, 롯데백화점의 이철우 대표는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를 직원들에게 소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책 읽게 만드는 ‘독서시스템’ 운영 회사 늘어
단순히 ‘선물 차원’을 넘어 전사적 차원에서 ‘독서 시스템’을 운영하는 회사와 CEO들 역시 독서경영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북클럽.
오리온은 지난 2007년부터 경영자 북 클럽, 핵심리더 북 클럽 등 회사의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오리온 북클럽 ‘OBC(ORION Book Club)’을 운영하고 있다.
격월로 진행되는 OBC는 한 번은 전사공통 도서를, 또 한 번은 조별로 자율적으로 도서를 선정하는데 전사 도서는 경영과 조직에 관련된 책을, 클럽별 자유 선정도서는 자기계발·인문·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관심 분야에 따라 다양하다.
특히 오리온은 직원들을 20여명씩 10개 조로 나눠 정기 독서토론회를 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조원을 재편성해 긴장감과 참여율을 높이고 있다.
오리온 홍보부의 김태욱 팀장은 “OBC의 효과는 다양한데 우선 토론회를 통해 직원들이 다양한 사람을 알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회사 분위기가 훨씬 밝아졌다”면서 “여기에 경영진도 회사의 메시지를 구성원들에게 전달하고, 구성원들 역시 자신의 의견을 경영진에 직접 전달하는 등 사내 채널이 확대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림건설 역시 심영섭 회장이 주축이 돼 ‘독서경영’ 시스템을 구축한 케이스다. 이 회사는 사내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견본주택에까지 도서관을 지었다. 실제 천안 용곡동 우림필유 견본주택 내 도서관에는 아동도서 3000여권을 비롯해 베스트셀러, 교양, 경제 등 5000여권의 책이 비치돼 있다.
공사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현장 인부들을 위해 이동도서관을 운영 중인데 연 인원 5000명의 현장 직원들이 책도 읽고 독후감까지 보낸다고 한다. 우림건설은 결국 심 회장과 현장 직원들까지 책으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이랜드도 경영자 개발 프로그램에 필독서를 추가해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지속적으로 경영에 반영토록 하고 있다. 이랜드 임직원들은 과장급 이상 400여명의 직원은 매년 2번씩 각 분야에 따라 적합한 책을 회사로부터 선물받는다. 또 임원 회의에서는 매주 1권씩, 중간관리자 학습팀에서는 격주 3권씩 선정 도서를 심층학습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부서나 팀 단위의 ‘독서 MT’, ‘독서토론회’ 등도 수시로 개최된다.
무엇보다 독서경영의 시초이자 선구자로 평가받는 회사는 동양기전이다. 이 회사 조병호 회장은 900여명의 직원들에게 필독도서를 포함해 의무적으로 1년에 적어도 4권의 책을 읽도록 한다. 독후감을 써 내고 독서토론회도 갖는다. 사업장 별로 ‘독서지도사’를 고용해 사원들의 책 읽기를 도와주기도 한다.
특히 동양기전은 독서 논문과 독후감을 제출해 심사를 통과해야 승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원을 채용하는 데에도 독서는 예외 없는 심사조항이다. 입사 지원자의 경우 면접 전에 미리 나눠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 것도 이 회사의 전통 중 하나다.
동양기전에서 이처럼 독서가 독특한 사풍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지난 1991년 사내에 ‘독서대학’이 설치되고부터다. 4년 과정인 독서대학은 2주에 1권씩 4년간 100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된다. 각종 독서 관련 토론회와 강연에 참여하는 것은 기본, 8학기 과정을 마치면 논문을 제출해야 졸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편 기업 내 독서 열풍과 관련, 다이애나 홍 독서경영연구원장은 CEO들이 책을 직원들에게 선물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홍 원장은 “CEO들이 독서경영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순한 책 선물에서 벗어나 직원들이 스스로 책을 통해 자신의 성장잠재력을 깨닫고 경쟁력을 높여보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직원들에게 독서를 권장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오리온 그룹의 사내 북클럽인 OBC에서 독서 토론을 하고 있는 임직원들.

박스
인터뷰 | 내가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한 이유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노하우 전달코자”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하게 된 동기는. 불황 극복의 열쇠가 임직원 한 명 한 명의 마음가짐에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때문에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다. 때문에 임직원들이 불황을 기회로 극복한 기업의 사례를 읽고 공부해 실제 업무에 있어서도 파이팅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선물했다. 특히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어야 할 신입사원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난해 12월에 열린 신입사원 교육 시 책을 나눠준 것이다.
책 제목을 보니 《일본전산 이야기》다. 굳이 이 책을 택한 이유는. 일본전산과 사조그룹의 상황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조그룹은 최근 몇 년 사이 신동방, 대림수산, 오양수산 등 굵직한 대형 수산과 식품기업들을 인수했고 1년 내내 흑자을 유지해 왔다. 일본과 한국은 경영환경이 다르고 일본전산과 사조는 영위하는 업도 다르지만 핵심을 관통하는, 즉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경영노하우는 우리 사정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사조는 수십 년 동안 일본 기업과 거래하고 교류해 왔으며 상호 간에 신뢰를 쌓아왔다는 점에서 일본기업의 성공 사례를 적용하기 쉽다고 여겼다.
책 선물 이후 어떤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지. 단기적으로는 직원들 스스로가 자신감을 좀 얻지 않았을까 기대한다. 또 내가 직원들을 만나 일일이 다 하지 못하는 말을 책을 빌려 대신 전했기 때문에 사조의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두 권 책을 읽는다고 사람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스스로 책을 찾아서 읽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스스로 발전하는 동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일본전산 이야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불황은 기업이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헤쳐나가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 책은 얼마나 자주 읽는가. 꼬집어 몇 권을 읽는다기보다는 항상 책을 가까이 하는 편이다. 선친께서 출판업을 하셨던 것도 내가 독서를 즐기는 동기 중 하나다. 사조(思潮)라는 이름 역시 ‘사조사’라는 출판사 이름에서 탄생하지 않았나. 어렸을 때부터 책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던 덕에 지금도 책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주로 읽는 서적은 아무래도 사조가 영위하고 있는 수산, 식품산업 관련 전문지식이 담긴 것들이다.
독서경영에 대한 평소 생각은. 책을 읽는 것과 경영이 분리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서 자체가 곧 경영이라는 말이다. 전국에 걸쳐 사업장이 나눠져 있어 직원들 한 명 한 명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목표의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독서를 생각한다.

박스
인터뷰 | 독서경영이란

다이애나 홍 한국독서경영연구원 원장
“‘책 읽어라’아닌 스스로 읽게 만들어야”

독서경영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위로 보면 된다. 기업뿐 아니라 가정, 국가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영자들이 왜 독서를 하느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자신이 주도하는 사업이 ‘늘 불안하다’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경영상 불안감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한 끝에 많은 답을 책에서 얻고자 노력하는 행위 자체가 곧 독서경영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독서경영을 실천하는 경영자들이 많다. 왜 그런가. 불황 국면에서 경영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이 불황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기업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라도 정신적인 안정과 기업경영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 위해 자신은 물론 직원들에게도 독서활동을 독려하는 ‘독서경영’을 실천한다고 본다. 특히 예전에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직원들을 단순히 ‘일하는 도구’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회사경영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이 인재, 곧 사람이 아닌가. 따라서 직원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가치를 높여주는 학습활동이 지금 필요하고 그것이 독서경영으로 귀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서를 통한 경영은 효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가. 독서의 길은 천천히 가지만 결코 뒷걸음치지도 않는다. 당장 (독서경영의 효과가) 눈앞에 보이진 않지만 돈도 눈에 보이는 돈이 있고 안 보이는 돈이 있듯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그것이 바로 ‘독서의 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피드경영 시대이긴 하지만 독서를 통해 닥쳐올 위기나 현재의 불황을 미리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 책 한 권을 읽었다 해서 당장 활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향후의 독서가 위기극복을 위해 필요한 판단력을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CEO들에게 필요한 독서경영 노하우를 소개한다면.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한 것으로 독서경영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CEO들이 종종 있는데 이는 잘못됐다. 직원들에게 ‘책을 읽어라’가 아니라 책을 읽고 싶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CEO들이 담당해야 할 독서경영의 바운더리다.


다이애나 홍 원장이 추천하는 ‘독서경영을 위해 CEO들이 읽어야 할 도서 10’
1. 부의 창조 - 매일경제세계지식포럼
2. 세계는 평평하다 - 토마스· 프리드먼
3. 전쟁의 기술 - 로버트 그린
4. 올 댓 비즈니스 - 제임스 데일
5. 미국경제의 종말이 시작됐다 - 마쓰후지 타미스케
6. 5가지만 알면 나도 스토리텔링 전문가 - 리처드 맥스웰
7.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 - 리처드 D. 루이스
8. 대국굴기 - 왕지아펑
9. 현장이 답이다 - 다카하라 게이치로
10.마이크로트렌드 - 마크 펜 외

김진욱 기자 (action@ermedia.net)

김진욱 기자 action@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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