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오토바이 업계에서는 실버 라이더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일본 오토바이 업계에 특명이 내려졌다. 이른바 “실버 오토바이족을 잡아라”.
일본의 명문인 와세다대학으로 가는 길목에는 할리데이비슨 같은 명품 오토바이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는 바가 여럿 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바를 눈여겨보면 어깨까지 늘어진 장발에 선글라스, 라이더 복장을 멋지게 한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오토바이 자랑이 늘어진다.

이들 대부분은 왕년에 “오토바이 좀 탔다” 싶은 마니아들로, 젊은 시절 취직이다 결혼이다 해서 애지중지하던 오토바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실버 라이더’들이다.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자녀들도 슬슬 슬하를 떠나자 남은 여생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겠다며 소박한 사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오토바이 업계에서는 이들 ‘실버 라이더’들을 잡기 위한 열전이 한창이라고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가 20일 전했다.

불황으로 오토바이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젊은 층은 밥벌이에 여념이 없는 반면 넉넉한 연금과 남아도는 시간으로 명품 오토바이를 즐기는 실버 라이더들이 급증하고 있는 덕분이다.

일본자동차공업회에 따르면 2008년도 신차 판매 대수 집계 결과, 경차를 제외한 4륜차는 전년 대비 15% 감소했지만 오토바이 판매는 전년에 비해 무려 23%나 곤두박질쳤다. 꾸준한 인기를 누리던 소형 2륜차(배기량 251cc 이상)시장도 지난해 10월부터는 전년도 수준을 계속 밑돌고 있다.

이처럼 가라앉고 있는 오토바이시장에 최근 유행하는 사업이 ‘렌털 바이크’다. 자동차 렌털과 마찬가지로 시간당 비용을 받고 오토바이를 빌려주는 구조다.

2007년부터 도쿄(東京)도 초다(町田) 시에서 오토바이 렌털 체인 ‘렌털 819(바이크)’를 운영해 오고 있는 ‘기즈키’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에 새로 19개 체인을 오픈할 정도로 잘나가고 있다. 주요 고객층은 30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하며, 이들은 ‘할리데이비슨’, ‘BMW’ 같은 명품 외제 오토바이를 즐긴다.

기즈키의 마쓰자키 가즈나리(松崎一成) 사장은 “지난해 오토바이 렌털 건수는 연간 약 1만건이었지만 올해는 6개월 만에 1만건을 넘었다”며 “올해 전체로는 2만5000건을 넘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렌털 바이크가 매력적인 것은 한 대에 200만엔(약 2600만원)을 호가하는 할리데이비슨 같은 신형 오토바이를 2만5000엔에 하루 동안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쓰자키 사장은 “지금 같은 불황기에 명품 오토바이를 보유할 경우 보험료와 유지비만으로도 큰 부담이 되지만 평소 동경하던 오토바이를 적은 돈으로 타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단골 고객도 많다”고 말한다. 고객 중에는 평소 타보고 싶었던 차종을 주말마다 이것저것 번갈아 빌려 타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렌털사업은 시간당 대여료 외에도 여러모로 수입이 짭짤하다. 렌털 업체는 차량을 대부분 신차로 구비해야 고객이 몰리는 만큼 주행거리가 일정 수준에 달한 차량은 우량 중고차로 직접 판매할 수도 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렌털 오토바이를 고객이 직접 매입하기도 한다. 평소 사고 싶었던 오토바이 성능을 렌털을 통해 확인하고 구입 의사를 굳힌 고객도 적지 않다는 것. 그야말로 잠재고객 확보와 우량재고 처분을 한꺼번에 얻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불황 가운데서도 렌털사업이 호황을 누리다 보니 경쟁자도 점점 늘고 있다.

올해 3월에 참여한 사이타마(埼玉)현 소재 ‘벤케이(弁慶)’는 6개월 만에 46개 체인을 오픈하는 등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또한 간사이(關西)를 기반으로 46개 체인을 운영하는 엠씨 코퍼레이션은 작년 가을부터 렌털점 ‘베스트 바이크’ 9개점을 열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엠씨 코퍼레이션은 도쿄(東京)에서 빌린 오토바이를 오사카(大阪)에서 반납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도 도입해 차별화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배기량 400cc 이상의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는 대형 자동 2륜차 면허 보유자는 1200만명. 10명당 1명꼴로 대형 오토바이 운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일선에서 물러난 ‘단카이(團塊) 세대(1947~49년 사이 출생)’를 중심으로 사지는 못해도 이따금씩 타보고 싶어하는 잠재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오토바이 업계에서는 판매급감으로 고전하는 가운데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경제신문 배수경 기자 (sue68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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