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디자인 케이크로 더 특별해진 인생 후반전”

살림만 알고 요리를 좋아하던 주부 전미경씨는 불혹을 넘겨 성공한 1인 창업가 그리고 케이크 아티스트로 우뚝 섰다. 오랜 노력 끝에 차별화된 ‘디자인 케이크’를 만드는 데 성공한 그녀, 사람들의 특별한 사연을 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케이크보다 더 달콤한 인생 2막을 열었다.

 

54세 ‘소녀’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머리는 희끗희끗하지만 막상 마주앉으니 열정과 쾌활함이 그 어느 젊은 청춘 못지않았다. 결혼 시절 얘기부터 인생 2막 새로운 삶을 펼치기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에피소드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중간중간 폭소가 오가는 가운데 인터뷰는 2시간을 훌쩍 넘겼다.

25년 남짓 주부로 살았던 그녀가 40대 중반에 디자이너이자 사업가로 변신했다. 케이크 아티스트 전미경(54)씨 얘기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케이크를 만드는 전 씨를 지난 6일 서울 성북동에 자리한 그녀의 케이크 숍 ‘제이스 케이크(J’s cake)’에서 만났다. 케이크를 제2 인생의 동반자로 삼아 즐겁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 ‘언니’의 달콤한 인생 레시피가 알고 싶어서다.

 

25년차 주부, 취미를 業으로 삼다

“결혼한 뒤, 요리에서 소질을 발견하게 됐어요.” 요리하는 게 좋았던 전 씨는 독학에서 시작해 한식, 일식, 양식을 두루 섭렵했다. 다른 사람에게 요리를 배워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화시켰다. 남들과 같은 요리를 만드는 게 체질적으로 싫었기 때문이다. 솜씨도 꽤 좋아 요리법을 가르쳐 달라는 주변 사람들이 부쩍 늘자 가정요리강습을 시작했다. 약간의 수강료를 받고 자신이 개발한 레시피와 푸드스타일링을 가르쳤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회의가 들었다.

“이 일에 점점 즐거움을 못 느끼겠더라고요. 그동안 주부로서 해왔던 것들에서 귀결점, 뭔가 색다른 쓰임새를 찾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전문화 시대잖아요? 이왕 하는 거라면 한 가지라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건강하고 스스로 살이 찌지 않는 음식과 디저트를 만들다 보니, 가족을 위해 만들었던 케이크를 떠올렸다. 여태껏 익혀온 식재료 감각을 바탕으로 케이크를 색다르게 접근해 보면 어떨까.

방향이 잡히자마자 제과제빵 기초부터 다지기로 했다. 2001년 초, 전 씨는 숙명여대에서 운영하는 ‘르 꼬르동 블루’의 제과제빵 과정을 이수했다. 이 분야에서 유명하다는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기술도 배웠다. 디자인학원에서 받은 컬러리스트 수업과정은 자신만의 특화된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따로 공부한 영역이었다. 덕분에 다채로운 색에 눈 뜨면서 색감을 익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특별한 디자인케이크 파는 온라인 숍 오픈

드디어 갈고 닦은 제과제빵 실력을 발휘할 때. 전 씨는 창업에 돌입했다. 먼저 온라인에서부터 출발키로 했다. ‘컴맹’이었던 그녀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알음알음 습득한 컴퓨터 지식으로 자신이 만든 케이크 사진들을 찍어 올렸다. 2002년 3월, 그녀의 나이 마흔 셋에 자기 이름 이니셜을 딴 인터넷 사이트(www.jscake.com)를 열며 온라인 케이크 숍 제이스케이크를 창업했다.

콘셉트는 ‘고객의 생각을 디자인해 케이크로 표현해 줍니다’라는 특별한 디자인 및 맞춤 케이크. 인터넷으로 케이크 주문을 받으면 주문자와 의논해 정한 화이트, 초코, 당근 등 유기농 케이크 시트에 주문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디자인을 입혀 집에서 제작한다.

당시 디자인 케이크, 스토리 케이크란 단어도 전 씨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처음엔 배송 시스템으로 운영했으나 배송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해 주문한 고객이 직접 케이크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바꿨다.

항상 남과 다르게 하려고 노력한 덕분인지 그녀의 디자인 케이크에 대해 재미있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런 거 만들어 줄 수 있느냐”며 전국 각지에서 문의가 잇따랐다. 기상천외한 걸 주문받을 때도 있었단다. “초창기 주문 들어오는 걸 보면 케이크의 형태를 벗어난 것들이 많았답니다. 스노보드를 타는 모습이나 ‘스타워즈’와 같이 영화에 나오는 장면으로 디자인해달라고….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재미도 있었어요.”

별다른 홍보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전 씨의 케이크는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케이크를 찾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오프라인 매장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2004년 4월, 서울 가회동에 오프라인 케이크 매장을 열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도 많다)일까. 매장이 안정돼갈 무렵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직이었다.

“장난인 줄 알았어요. 정말… 뜻밖이었으니까요. 직장을 잃은 남편은 숍으로 출근해 아침부터 종일 머물렀죠. 3개월 동안 저도 거의 아무 일을 못하는 스트레스를 겪었답니다. 위기의식이 느껴졌어요. 난 더 전문화된 영역을 해야겠다고 말이에요.” 다행히 남편은 새 직장을 찾았고 그녀는 케이크 만드는 일에 더욱 전념하게 된 계기가 됐다.

 

풍부한 표현력의 케이크 예술작품으로 승화

디자인 케이크는 재료가 특별한 게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일주일 전에 주문을 받아 제작한다. 고객이 주문하면 어떠한 디자인의 케이크라도 만들어준다. 구상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디자인 작업만 최소 3~4일 소요된다.

케이크를 디자인할 때는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실질적인 제품은 신선도를 고려해 고객에게 건네지기 바로 전날 또는 당일 일찍 만든다. 제작과정에는 잔 손 가는 작업이 상당하다. 모두 그녀 혼자서 한다.

창작의 모티브는 다년간 축적된 그녀의 경험치에서 나온다. 전 씨의 케이크는 평소 미술·전시 등을 보며 넓힌 견문, 취미로 민화·불화를 그린 실력, 플라워 디자인을 공부한 이력, 20년간 붓글씨로 다져온 손목의 힘까지 더해져 복합적으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방송인 황인용씨 아시죠? 음악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음악을 즐기고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관련 지식을 쌓았어요. 결국 음악실까지 차렸잖아요. 표현력, 전문성이란 건 그런 것 같아요. 관심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길러지는 ‘스킬(skill)’인 거죠.”

디자인 트렌드도 조금씩 바뀐다. 이전까지 케이크에 스토리를 입혔다면 최근엔 생화와 케이크의 조화를 꾀한다. 케이크 만들기뿐 아니라 설거지, 카페 정리정돈, 손님맞이, 장보기 등 모두 그녀 혼자서 ‘척척’이다. 전 씨에겐 철칙이 있다. 디자인 케이크가 모양만 예뻐서는 안 된다는 것. 맛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고객은 다시 찾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상급의 재료만을 써서 먹기 아까울 만큼 멋뿐만 아니라 ‘환상적인’ 맛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유기농 등 좋은 재료를 구하러 발품 팔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구입할 때도 전혀 아낌이 없다.

또 ‘건강한 케이크’를 추구한다. 재료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깐깐히 고른다. 다른 데서 파는 케이크의 성분표를 자신의 것과 비교분석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여기에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마음과 정성을 듬뿍 담을 수 있다는 게 주부로서의 최대 장점.

디자인 케이크의 가격대는 주문 제작 시스템이다 보니 케이크의 크기와 용도에 따라 3만원대~18만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브랜드 론칭, 연예인 생일파티, 돌잔치와 결혼식과 같은 기념일 등 상황에 맞는 케이크를 만든다. 책, 선물상자, 호박, 입술 모양은 물론 인형이나 황진이 같은 사람 모습, 에펠탑이 선 파리 경치와 골프장 풍경 등 그녀가 빚어내는 디자인은 아주 다채롭다.

매일 상시 판매되는 일반 케이크도 12종류 정도 갖추고 있다. 기본적인 가격대는 5만6000원~6만8000원선. 당근 케이크, 바나나 케이크, 오렌지 치즈 케이크가 대표적인 인기 제품이다. 다크초콜릿 케이크의 경우 남녀노소가, 고구마 케이크는 일본인들이 좋아한다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는 작업 특성상 혼자 일하는 게 편하다는 그녀. 하지만 가족이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으로 함께 한다. 전 씨가 만든 신제품에 대해 가장 먼저 맛보고 가장 신랄하게 평가해 주는 것도 남편과 장성한 아들·딸내미다. 기꺼이 실험용 ‘마루타’가 돼준다. 주 고객층은 그녀의 케이크에 홀딱 빠진 마니아들. 들으면 다 알만한 연예인들도 단골이다. 그녀의 숍을 찾는 손님들은 예쁘기도 하거니와 정성이 많이 들어가 한 사람을 위한 선물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나만을 위한 단 하나의 특별한 케이크를 찾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 특별함 때문에 전 씨의 케이크는 ‘작품’으로서 당당히 미술관까지 진출했다. 미술계 작가들이 협업을 요청해 왔다. 전시 주제에 맞는 퍼포먼스를 케이크로 디자인해 달라는 거다. 리움미술관의 ‘미래의 기억들전’에 케이크 작품을 내는 등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치룬 전시 경험은 그녀에게 힘이 됐고 또 하나의 동기 부여가 됐다. “단순히 초를 꼽고 먹는 케이크가 아니라 즐기며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예요. 자랑스러웠고 제 일에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창업 원하는 주부들에게 멘토 역할 하고파

가회동, 삼청동을 거쳐 지금의 성북동에 둥지를 틀기까지. 한 번 인연을 맺은 고객은 단골이 되고 그들의 입소문으로 주문이 밀려들면서 전 씨의 숍은 자리를 잡았다.

독특한 콘셉트로 케이크 시장에 뛰어들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케이크를 만들지 않은 게 성공비결이었다.

그녀의 상처투성이 손에서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과 열정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케이크를 선물받는 사람이 ‘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감흥을 느낄 수 있도록 하죠. 제 케이크에는 똑같은 것이 없고 똑같은 것을 다시 만들 수도 없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 프러포즈의 낭만, 축하하고 싶은 마음… 손님들의 이야기가 케이크마다 다르게 담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이스케이크의 경쟁력이에요.”

올해로 케이크 아티스트이자 사업가 경력 12년차. 제이스케이크의 운영 성적표는 어떨까. 전 씨는 매출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싶지 않아했다.

그저 “주부에게 용돈벌이보다 훨씬 수입이 좋으며 즐겁게 일해 나갈 수 있는 정도로 번다”며 웃어보였다. 사계절 중 겨울철이 상대적으로 한가한 편. 이때는 신메뉴 개발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재충전하기 위한 여행도 감행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전 씨는 요즘, 다음 달 오픈할 케이크 갤러리 준비에 한창이다. 케이크 퍼포먼스와 사진 촬영 컷, 디자인 작업과정 등 케이크 아티스트로 걸어온 발자취를 많은 이들과 나눌 계획이다. “케이크는 종합예술 영역에 속합니다. 부가가치 또한 높은 편이죠. 도자기 그릇, 나무 대, 대리석 등 어떤 프레임에도 올릴 수 있는 케이크를 만들고 싶어요. 나아가 하나의 작은 쇼케이스 안에 다른 이들과 협업해 독특한 작품을 창조하는 것. 그게 저의 소박한 바람이에요.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고자 합니다.”

전 씨는 “남편이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면 안 되는 일”이었다며 어엿한 케이크 아티스트로 거듭나기까지 전폭적으로 물질적·정신적 지원을 해준 남편에게 한없는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남편 역시 꿈을 마음껏 펼치는 아내가 고맙고 아이들은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그녀에게 또 다른 꿈이 있는지 물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데는 어디든 출동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창업을 원하는 주부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고 싶어요. 케이크 디자인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강의도 해주고 싶고요. 또 이 일은 손으로 하는 밑작업이 많거든요? 단순노동의 성격이 강한데 자폐증 환자 등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으로의 목표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 씨는 “생소한 아이템을 시도하기 보다는 관심 분야, 한 번이라도 해봤던 분야를 특화해 개발하면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으며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너무 유망 아이템에만 매달리지 말 것을 조언했다. “케이크 아트, 제가 진정으로 즐기면서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게 관대해지는 것 같아요. 새로운 걸 배운다는 자체가 행복감을 주죠.”

요즘은 첼로에도 푹 빠져 있단다. “전미경 제3의 인생 동반자는 아마도 첼로가 되지 않을까요?”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느끼는 듯 명랑한 표정에 함박웃음을 팍팍 날려주는 그녀,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행복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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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성공노트

자본금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00만원 미만이면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에서 케이크 숍(사업장)을 마련할 수 있음. 적자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월세가 저렴하고 자신이 가진 돈의 규모에 맞는 사업 장소를 택해야 함. 상가 2층이나 서울 변두리, 작은 공간을 고려해봄직 한데 자가소유를 권함. 오븐, 쇼케이스 등의 물품을 중고로 구매하는 데 500만~1000만선. 인테리어는 깔끔한 정도로 연출하면 됨. 따라서 총 5000만원 정도면 케이크 숍 및 카페 창업이 가능함.

준비기간 및 과정

결혼 후 한식, 일식, 양식을 두루 배우며 다진 요리 솜씨에서 출발해 ‘디자인 케이크’라는 독자 영역을 개발함. 숙명여대에서 운영하는 ‘르 꼬르동 블루’의 제빵과정을 이수해 기본기를 익히고 관련 분야에서 유명한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움. 사설학원이나 대학 과정의 제과제빵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임.

성공노하우

평소 미술작품·전시회 감상, 민화·불화 그리기, 플라워 디자인 및 컬러리스트 과정 공부, 붓글씨 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아 케이크 디자인 창작의 원천으로 활용.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면서 소질 계발이 필요함. 모양뿐 아니라 맛과 건강까지 고려해 남들과 차별화된 케이크를 제작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임. 마니아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 손님은 고객이 아니라 ‘가족’으로 접근할 것. 출퇴근 장소가 없으면 자세가 흐트러질 수 있으므로 집에서 벗어나 오프라인 숍이자 작업실을 마련, 자신만의 공간 및 사업장을 조성함. 고객의 피드백을 수시로 받으며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훈련시키는 방법을 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