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모(欽慕)하던 것을 직접 만났을 때의 묘한 설렘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대자연이라면 감흥과 느낌은 한 층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여름 한 지인을 통해 큰 비가 오고 나면 꼭 한번 가보라며 일러준 곳이 있다.

“평소 조용하고 아늑한 여성의 기운을 가졌다가도 비가 내리고 나면 웅장하고 신비로운 기운으로 변하는 곳”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그렇게 1년 동안 짝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흠모의 세월을 보냈다. 마침내 여름 장마가 시작되고 며칠째 많은 비가 쏟아졌다.

지난 주말 장마 때만 ‘비로소’ 신비롭고 아름다운 진면목을 드러낸다는 그곳을 찾아 빗속을 뚫고 길을 나섰다.

포천군 대회산리 비둘기낭.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없을 것처럼 평온하지만 숲 속에 조용히 숨은 비밀의 계곡폭포다. 박쥐가 집을 짓고 살고 비둘기 둥지처럼 생긴 움푹 파인 낭떠러지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곳.


협곡을 때리는 빗소리에 폭포가 춤을 춘다
그 흔한 관광안내책자나 지도에도 없고 이정표는 더더욱 없는 그런 곳이 비둘기낭이다.

비포장으로 이어진 고갯길을 넘어 찾아간 마을 끝자락엔 논밖에 보이지 않았다. 홍순식(47) 비둘기낭 정보화마을 위원장과 전종철(46) 영농회장이 길잡이에 나섰다.

마을회관에서 논과 작은 개울을 따라 10여분을 가자 갑자기 개울을 덮어버린 거대한 숲이 나타났다.

‘쿵! 쿵! 쿵!’ 그 속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이끌려 숲에 발을 들여놓았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숲을 헤치고 하류 쪽으로 내려갔다. ‘우르릉…’ 굉음은 더 심해지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갑자기 푹 꺼진 곳에서 현무암이 가득한 협곡이 장관을 이루며 나타났다. 돌단풍 가지 사이로 높이가 15m 정도 됨직한 물기둥이 직경 30m의 소(沼)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소는 마치 열대 산호바다와 비슷한 맑은 옥빛을 띠며 반짝이고 있었다.

위쪽의 자그마한 개울이 이렇듯 땅 아래로 웅장한 협곡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계속된 장맛비에 평소에는 물이 말라 아래에 쪽빛 소만 볼 있었지만 지금은 장쾌한 물기둥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폭포소리는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하다.

거기다 자욱한 물안개의 특수 효과와 우거진 신록의 푸르른 조명은 대자연이 감춰놓은 오페라하우스 같다.

1년여 동안 흠모한 세월이 아깝지 않고 단 한순간의 절경에 짜릿한 전율이 온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온통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폭포 주변에는 담쟁이덩굴, 돌단풍, 느릎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비롯해 삼지구엽초, 이끼 등이 빼곡히 자라고 있다. 서늘하면서도 맑은 기운에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폭포 아래서 발가벗고 미역을 감던 천혜의 놀이터였죠. 땡볕에서 그렇게 뛰어 놀다가도 계곡에만 들어오면 더위가 싹 가시며 한기가 들 정도로 짜릿했어요.” 마을에서 태어난 홍 위원장이 꼬맹이 시절 추억담을 한 토막 들려준다.

“예나 지금이나 비둘기낭 폭포에 서면 온몸이 편해지고 모든 상념과 잡 마음이 없어진다”며 “울적할 때 한 번씩 찾아 폭포소리를 듣고 가면 금세 좋은 일만 생긴다”면서 전 회장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비둘기낭은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하다. 한탄강 자체가 30만년 전 화산폭발과 침식과정에 의해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한탄강 유역에선 제주도 지삿개에 있는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특히 비둘기낭에서는 주상절리의 흔적이 뚜렷하다. 동굴처럼 보이는 천장을 눈여겨보면 각진 돌이 마치 타일처럼 붙어 있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폭포에서 아래쪽으로 20m 정도 내려가면 드라마 〈신돈〉에서 신돈이 수련하는 장면을 촬영했던 작은 동굴이 나오고 그 옆으로 높이 1m의 쌍둥이약수가 있다.

약수는 365일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고해 마을 사람들은 ‘생명의 약수’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가슴속 한편에 담고 흠모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 2012년 한탄강 댐이 건설되면 물이 채워져 곧 수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홍 위원장은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비둘기낭은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자연문화재”라면서 “이런 아름다운 경치가 후세에도 영원히 남아 있기를 기대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만약 수몰이 된다고 하더라도 1996년 홍수로 한탄강이 완전히 잠긴 때와 같은 물난리만 아니라면 1년에 3~4차례 장마철에만 볼 수 없다”며 희망의 말도 전해준다.

왠지 더 이상은 감히 침범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조심조심 내려온 계곡을 다시 오른다.

눈앞에는 여전히 신비스러운 무대에서 대자연이 선사한 한 편의 오페라를 구경하고 난 듯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고 있었다. 빗줄기는 여전히 거세게 휘몰아쳤다.


여행메모

가는 길
자유로에서 문산을 거쳐 37번 국도를 타고 전곡을 지나 산정호수 방면으로 가다 오가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2km쯤 교회 지나 대회산리 이정표 보고 우회전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길을 4km 정도 가면 비둘기낭마을이다.

비포장이 아닌 길을 원한다면 오가삼거리에서 산정호수 방향으로 더 내려가 송정삼거리에서 좌회전, 43국도 운천 방향으로 가다 운천 제2교차로에서 좌회전해서 대회산리 방향으로 가면 된다.

마을체험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비둘기낭마을은 올해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정보화마을로 선정됐다.

불무산, 운장산 등의 큰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변에 산정호수, 한탄강 볼거리가 많다.

특히 사전 신청해 마을을 찾으면 전통장 담그기를 비롯해 짚공예 체험을 즐기고 고추, 오이, 토마토 등 농산물 수확, 비둘기낭 탐방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또 트레킹, 사과 따기, 약주 담그기 등도 가능하다.
체험 문의 : 017-269-6483

비둘기낭(포천)=글ㆍ사진 아시아경제신문 조용준 기자 (jun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