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화 기자

최근 글로벌 뜨거운 감자는 단연 환율이다. 경제의 글로벌 공조현상이 뚜렷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국가들은 경제 부양을 위해 자국 통화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흡사 글로벌 환율 전쟁을 방불케 한다. 특히 일본은 무기한 양적완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엔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최근 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 환율 갈등에 불이 붙었다.

지난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 실험을 단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미 북한 악재에 학습효과가 생긴 코스피지수는 낙폭을 줄이며 5포인트 가량 하락하는데 그쳤다. 과거 1, 2차 핵실험이 이뤄진 당시 단숨에 20~4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게다가 이튿날인 13일에는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30포인트나 상승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북핵 이슈에도 끄떡없는 국내 증시의 최근 가장 큰 변수는 ‘엔저’다. 북핵 이슈가 발발한 12일에도 엔화는 전일보다 0.71% 오른 93.93엔에 마감하며 약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아베 신조 총리가 정권을 잡으며 시작된 무기한 양적완화로 엔화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에 들어서며 잠시 주춤거리는 듯 보였지만 유일하게 아베정권의 정책을 반대해온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의 조기 사임으로 다시 크게 떨어졌다.

이에 사임을 발표한 지난 2월 6일 엔/달러 환율은 2010년 5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94엔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엔저가 단숨에 절하를 이뤄낼 수 있었던 건 주변국들의 묵인 덕분이라고 말한다. 특히 최근까지 아베정권의 공격적인 엔저 유도 노력에도 입을 굳게 다물었던 미국이 일본 통화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서 글로벌 환율 문제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에 대한 엇갈린 시각, 지지 vs 동병상련

엔저 기조가 가파르게 진행될수록 세계의 이목은 미국에 집중됐다. 과거 미국은 특정 국가의 통화가치 저평가 상태가 무역불균형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중국 위안화 절상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일본이 경기부양이라는 명목으로 자국의 통화 가치를 적극적으로 끌어내리고 있음에도 팔짱만 끼고 있었던 것.

급기야 최근에는 아베정권의 정책을 옹호하는 발언까지 내놓았다. 데이비드 립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가 “일본 경제가 만성적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2%의 물가상승은 적절한 목표”라고 언급한데 이어 라엘 브레이너드 미국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도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하려는 아베노믹스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렸다. 지지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미국이 일본을 옹호한다는 측면과 재무부 장관의 입을 통해 지지라는 말이 언급됐지만 직접적인 일본 편들기 발언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논리 방어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일본을 지지한다는 시각에 무게가 더 실려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행동이 중국의 그때와 다르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중국을 5차례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2010년 10월에는 중국을 겨냥해 미국 하원에서 환율 조작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환율개혁법 등도 논의됐다. 최근 엔화 변동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과는 상반된다.

전문가들은 아시아에서 일본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우방국가인만큼 현재 정책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허재완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엔화 약세는 미국의 암묵적인 용인에 의해 가능했다”며,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은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우방 국가”라고 말했다.

방위문제도 미국이 일본을 지지한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은 일본 아베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15년 만에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는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확대된 중국의 해양 방위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재정 여건은 예전과 같은 수준의 방위비 예산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에 미국이 안보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일본의 유동성 확대 정책을 묵인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반면 미국의 발언을 지지로 보는 것은 확대 해석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미국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있는 만큼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일본의 처지를 이해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또한 엔저가 미국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만큼 엔저 현상을 관망하고 있을 뿐이고 덧붙였다.

송두한 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의견을 같이한다. 송 연구위원은 “미국이 일본을 옹호한다기보다는 달러화도 엔화처럼 약세기조가 지속되고 있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양적완화를 실시 중인만큼 논리방어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엔저 쓰나미에 유럽·한국 쓸려갈까

미국과는 달리 지속되는 엔저 현상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국가도 있다. 바로 유로존이다. 엔저 현상으로 유로화 강세 기조가 이어지자 일본 정책에 긍정적인 발언을 한 미국과는 달리 유로존은 제재 필요성을 역설했다. 엔저 제재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유럽중앙은행이 환율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며, 역내 정상들이 중기 유로 환율에 합의해야 할 것이라고까지 언급했다. 마리아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도 유로화 절상에 물가 안정에 대한 평가를 바꿀지 주시할 것이라고 밝혀 시장 개입 가능을 열어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유로화는 문제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어 유로존의 입장이 갈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마리아 펙터 오스트리아 재무장관은 “지금 유로화는 적절한 중간 수준”이라며, “유로는 지금보다 강세 혹은 약세일 때도 있었기 때문에 소란을 피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일침을 놨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총재도 “현재의 유로화는 과대 평가돼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국내에서도 정부 개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엔저 현상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엔저 장기화로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 기업 실적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금융당국이 환율전쟁을 방관하기보다는 선물환 포지션 한도 축소 방안을 비롯한 추가 조치를 통해 원화의 추가 강세 흐름을 저지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원화 강세 저지 필요성이 재차 강조되고 있음에도 지난 14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넉 달째 연 2.75%로 동결했다.

엔저에 웃고 웃는 국내 기업

단기적인 시각에서 엔저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 있지만 일본과 경쟁 구도에 있는 국내 기업들의 영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업종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으로 원화강세가 이어질 경우 운수장비와 기계, 일부 전기전자 업종이 타격을 받았다. 그동안 국내 증시의 견인차역할을 해온 자동차 역시 영향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엔화 약세는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수출 채산성 등 글로벌 영업실적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요타는 지난해 엔화가치가 10% 절하될 때 영업이익이 19% 증가하는 높은 민감도를 보였다. 이에 현대·기아차의 피해가 예상된다.

에스엠과 엔씨소프트 등 일본 로열티 매출이 있는 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엔화를 원화로 환산한 계상액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원화 강세로 국내에 들어오는 일본 관광객이 감소해 외국인 전용 카지노인 파라다이스나 GKL 역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다만 화학을 비롯해 엔화 부채가 있는 유틸리티, 항공업종은 부분적인 수혜가 기대된다.

반도체업종도 달러 매출이 95%에 달하고, 총원가의 70% 역시 달러와 연동돼 있어 엔저에 따른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게 허재환 애널리스트의 분석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모바일 D램, NAND 등 자체적인 수요가 높은 만큼 엔저에 따른 영향은 극히 제한적 일 것이란 판단이다. 디스플레이 업종 또한 매출이나 매출원가가 달러와 연동돼 있어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지속되는 엔저에 수혜를 입는 건 일부 기업들만이 아니다. 엔화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도 엔화 가치 하락 덕을 톡톡히 볼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엔화 대출은 금리가 낮아 인기가 많았으나 엔고현상이 장기로 이어지면서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  엔화 약세 기조로 원금 회복은 물론 이익까지 챙길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영아 IBK기업은행 시장분석가는 “아베정권이 엔화가치를 100엔까지 떨어뜨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만큼 원화 대출을 받았다면 상황을 좀 더 지켜본 후 상환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발맞춰 은행에서는 엔화대출 원화전환 서비스를 보완해 선보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최근 엔화대출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원화대출로 변경할 수 있도록 ‘엔화대출 원화전환’서비스를 올해 말까지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 서비스는 엔화대출을 원화로 전환하기 위해서 심사를 거쳐야 했던 기존 일반 엔화 대출의 불편을 보완했다. 다만 금융사에 따라 원화대출 전환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으므로 대출을 받은 금융사에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글로벌 환율 갈등, 투자 대처법

엔저를 비롯해 최근 보이고 있는 통화의 가치 변동은 오히려 투자자들에게는 투자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통화를 활용한 투자 방법으로는 실물투자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영아 시장분석가는 “최근에는 환차익이 비과세인 위안화를 직접 매입하는 투자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엔화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근 엔화 가치가 하락 기조인 만큼 헷지를 하는 게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달러의 경우 신규 실물투자는 잠시 추이를 지켜보고, 현재 실물투자를 한 상태라면 원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환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이다.

직접 실물을 매매하는 방법이 어렵다면 시중 은행에서 판매하는 외화통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하나은행은 엔저 현상에 발맞춰 ‘엔화 환율 연동예금’을 출시하기도 했다.

KB국민은행은 적립식으로 투자가 가능한 ‘KB적립식 외화 정기 예금’을 판매 중이다. 이 상품은 가입기간이 1~12개월로 짧으며, 적립횟수를 30회로 제한한다. 자동이체를 활용할 경우 투자자가 상한환율과 하한환율을 지정해 자동이체일의 고시환율이 지정한 산한환율 이상인 경우 적립이 중지되고 하한환율 이하인 경우 추가로 적립이 가능한 구조다. 또한 입금 건별로 외화정기예금 금리를 제공하는 점도 특징이다.

농협에서도 ‘트리플외화자유적립예금’을 이용해 외화에 투자가 가능하다. 이 상품은 적립일이나 적립금액, 적립횟수 등에 제한이 없는 자유 적립식 형태다. 브라질채권 등 외화표시채권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배성민 대신증권 상품기획부 팀장은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한국을 비롯해 신흥국의 통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헤알화 등 단기적으로 성장성이 높은 국가의 국채 투자가 유망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외화표시채권은 환차익이 비과세에 적용돼 절세 상품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밖에 환율에 직접 투자를 하지는 않지만 영향을 받는 상품도 있다. 농산물과 금펀드가 대표적이다. 이중 농산물펀드는 국내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익률을 웃도는 견조한 성과를 기록 중이다. 국내주식형펀드는 연초이후 2월 8일 기준 -3.38%의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농산물펀드는 2.68%의 성과를 올렸다.

1년 수익률 또한 6.07%로 -2.76%를 기록한 국내주식형펀드보다 우수했다. 금펀드는 지난해 다소 부진한 수익률을 보였지만 최근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예측이 어렵고 각국의 정부정책에 영향을 받는 만큼 환과 관련된 투자는 투자자산 중 일부분만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