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Watch

가벼운 지갑에 체면도 ‘훌∼훌∼’
약도 할인점에서…경기침체에 알뜰소비 선회하는 일본인들

남의 시선에 민감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이 체면을 벗어던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인터넷 경매 사이트 라쿠텐(樂天)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 ‘라쿠텐시장’에서는 75년 전통의 유명 센베이(일본식 전병과자)업체인 이나호가 만든 특별 센베이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나호 센베이의 월간 평균 매출은 500만엔(약 7200만원)으로 라쿠텐시장에 이름을 올린 센베이 메이커 가운데 1위다.
이나호의 히트 상품명은 ‘고와레센베이(부스러기 센베이)’다. 지난 2월 선보인 고와레 센베이는 이름 그대로 제조 과정에서 부스러지거나 갈라진 센베이를 제품화한 것이다. 예전 같으면 소비자들이 눈길도 주지 않던 것이다.
1㎏들이 한 상자에 1050엔인 고와레센베이는 출시한 지 나흘 사이 400만엔어치가 팔려 품절 소동까지 빚어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는 12월15일자에서 경기침체 여파로 일본의 소비풍조가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모양과 맛만 추구하던 소비자가 여의치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값에 가장 큰 비중을 두게 되면서 제값만 하면 모양새는 따지지 않겠다는 식으로 소비패턴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니혼종합연구소의 미야다 마사유키(宮田雅之) 소장은 “경기악화로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불안감이 극대화해 버블 붕괴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생활에 필요한 최소 금액으로 스스로 위안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인터넷뿐 아니라 거리의 상점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바야시제약의 고바야시 유타카(小林豊) 사장은 “백화점 등 고급 매장에서 떨어져 나온 소비자들이 대형 할인점으로 발길을 옮기는 등 소매시장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저가 맥주·평생 쓰는 건전지 ‘불티’
고바야시제약에 따르면 거래처 비중은 한동안 일반 약국이 가장 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슈퍼마켓, 대형 할인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체면 때문에 같은 제품을 웃돈까지 얹어주며 일반 약국에서 샀던 소비자들이 할인점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닛케이 비즈니스>는 올해 가전 부문 히트 상품 1위에 산요전기의 충전지 에네루프를 선정했다. 산요는 에네루프를 광고할 때 충전지가 아닌 ‘평생 쓰는 건전지’로 내세운다. 산요는 할인점을 집중 공략했다. 산요는 에네루프를 매장 계산대 옆에 걸어둔다. 계산하기 위해 줄 선 알뜰 주부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다.
에네루프 가격은 4개들이 1팩이 1400엔이다. 같은 값으로 알카리 건전지 40개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에네루프를 10회 이상 충전하면 알카리 건전지보다 오래 쓸 수 있다. 이렇게 평생 쓰는 건전지라는 발상은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
식음료 부문에서는 맥주나 발포주보다 저렴한 ‘제3의 맥주’가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은 일반 맥주를 즐겼다. 하지만 올해 들어 향기 나는 술 리큐르에 홉을 혼합한 제3의 맥주가 각광 받고 있다. 이는 저가로 맥주 맛을 즐기려는 젊은 층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주류문화다.
고가 상품인 자동차시장에서도 알뜰족을 공략해 성공한 사례들이 있다. 혼다자동차에서 지난 5월 출시한 미니밴 ‘프리드’가 바로 그것이다.
프리드는 성인 7~8명이 탈 수 있는 크기로 편안한 실내가 특징이다. 하지만 배기량은 1500㏄로 소형차 수준이다. 혼다의 2000㏄급 미니밴 ‘스텝왜건’이 200만엔인 데 비해 프리드는 이보다 30만엔 싼 170만엔이다. 연비를 따지면 스텝왜건은 리터당 12.6㎞지만 프리드는 16.4㎞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프리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혼다 4륜영업총괄부 영업개발실의 호쿠조 쓰요시(北條 毅) 실장은 “혼다가 한때 모빌리오로 미니밴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지만 가격 대비 성능이 떨어져 인기는 금세 시들해졌다”며 “프리드는 이런 경험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혼다는 내년 3월 말까지 프리드 6만대가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배수경 기자 (sue68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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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할인점 앞을 지나가는 시민

강혁 편집국장 kh@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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