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 1948년생. 영남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신한은행에 입행한 뒤 비서실장, 홍콩현지법인사장, 인사부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쳐 신한캐피탈 대표이사,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굿모닝신한증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향기가 묻어나는 이유는 ‘정신’이라는 향료가 제각기 다른 향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향기는 에너지와 다양성에서 배어나온다.
이동걸 굿모닝신한증권 부회장은 젊은 정신에서 스며나오는 생명력 넘치는 향기를 풍긴다.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을 맡았을 당시 감성경영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그는 수필전문지 〈에세이플러스〉가 주최한 제 39회 수필공모에 그의 수필 ‘결혼 33주년’이 당선돼 수필가로 등단했다.

이 부회장은 “글쓰는 작업은 내 삶을 펄떡이게 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면서 “글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놓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또한 “한 가정의 가장뿐만 아니라 CEO도 꼭 글이 아니더라도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동걸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Q. 지난 40여년간 금융인으로 계시다가 수필가로 변신하셨습니다. 수필가로 등단하시게 된 소감 한말씀 해주신다면.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만일 은퇴를 하게 된다면 집중할 수 있는 분야가 하나 더 생겼다’라는 기쁨에 기분이 들뜨더군요.

물론 제 수필이 대중에 공개돼도 되는 수준인가에 대한 고민과 부끄러움도 있었습니다.

또한 여러 번의 시도가 아니라 단 한 번에 당선됐기 때문에 치열하게 공부하거나 준비하지 않은 자가 선정됐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습니다.

이번 당선을 시작으로 저의 부족함을 채우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Q. 등단 과정과 특별히 수필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라는 피천득 시인의 말처럼 그 재료가 무엇이든 간에 수필로써 내 생각을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에 시간 여유가 생겼는데 문득 책상에 놓여 있던 〈에세이플러스〉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누군가가 2년 동안 꾸준히 보내줬던 책이었습니다. 2년치를 한꺼번에 읽다가 문득 나도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먼저 한 편의 글을 써서 보냈는데 주최 측에서 “당선되면 바로 등단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한 편으로 당선되기에는 리스크가 있으니 5편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기에 부담이 돼서 포기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한 설득 끝에 5편을 준비하는 과정이 두 달 정도 걸렸습니다. 두 달 동안 저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는 일이 많아 힘들었습니다.

특히 어휘의 한계가 있었는데 지난 40여년간 머릿속에 숫자, 경제 등만이 들어 있어 어느새 건조한 사람이 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이제 글쓰기가 제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Q. ‘결혼 33주년’이란 작품에서 아내가 등장하는데 아내의 반응은 어떠셨는지.

글 속에서 반성문을 쓰게 했다는 구절, 과체중이라는 구절을 보고 흥분하더군요. 하지만 아내도 남편이 뒤늦게 또 다른 일을 찾게 된 것에 유쾌해하는 눈치입니다.

아이들도 제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젊은 시니어가 되고 싶다’는 말을 실천에 옮기자 ‘멋지다’고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Q. 등단하셨다는 소식을 접한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지.
지인은 물론 말단 직원부터 임직원에 이르기까지 축하 메시지만 100여통 받았을 정도로 많은 분들에게 축하인사를 받았습니다.

직원들은 신입사원 때부터 저의 스킨십이 묻어 있는 가족들이기 때문에 몇 달 동안 떨어져 있다가 서로 안부를 물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유쾌했습니다.

Q. 굿모닝신한증권 사장 시절 감성경영으로 유명하셨습니다. 스킨십경영을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부분이 있다면.

금융은 사람경영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납득시키는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취임 직후 1900여명에게 감성터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1900명도 한 사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에 출발조차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목적지에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딸아이의 결혼식 참석 답례장, 속초 출장길에 임원들에게 줄 선물로 사온 황태와 동봉한 편지, 직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직접 작성했습니다.

특히 작년 12월 리먼 사태 이후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고객들에게 항의를 받고 상심했을지가 걱정이 돼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렇듯 일이 있을 때마다 편지를 보냈던 것은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고통을 자식들이 알아야 하듯이 기업의 가장인 사장의 고통에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보다는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Q. 글을 통해 직원들과 소통하는 CEO들이 늘고 있습니다.
사실 글을 쓰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한 상대방이 이해해 줘야 하기 때문에 각 계층에게 전하고자 하는 뜻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작업입니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소통의 부재이며 벽을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말은 잘하는 사람만이 달변가가 아니라 어눌하게 말하는 사람도 동의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CEO가 글을 쓴다는 것은 직원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Q. 글은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 수단이라 생각하는데요. 글 속에 어떤 모습을 투영하고 싶었는지.

내가 속해 있는 조직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모멘텀이 있어야 합니다. 글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놓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며 절차이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죠.

앞으로도 가까운 지인에게 지속적으로 글을 써서 제 마음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가장뿐만 아니라 CEO도 자신을 표현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수단은 꼭 글이 아니어도 좋을 것입니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수단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향후 주식시장 전망과 금융시장 변화에 대해 한말씀 해주신다면.

지난 40년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늘 위기와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회는 위기 뒤에 찾아왔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대단히 멋진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금융위기 뒤에도 기회가 있는데 우리는 안살림만 쳐다보고 마치 우리가 위기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야를 넓게 보고 위기 뒤에 오는 기회를 빨리 포착해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지금 기회가 코앞에 왔는데 전부 위기만 이야기하고 기회 포착은 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Q.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나이가 들수록 3S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Study), 운동(Sports), 봉사(Service)의 3S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서 막힘이 없기 위해 공부를,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을, 제 나이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것 자체가 사회에서 받은 신세가 많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받은 걸 되돌려줄 수 있는 봉사를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 꿈이 있다면 한국의 명소를 돌면서 여행, 사진, 역사 등이 가미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같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오희나 기자 hno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