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소노 아야코 지음
- 오경순 옮김
- 리수 펴냄
- 2004년

TV를 봤더니 영화 〈친구〉를 드라마로 만들어 방송을 하더군요. 친구들과 〈친구〉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스토리텔링, 영화적 짜임새, 배우들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시대상, 친구의 의미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 오래 두고 사귄 벗. 같이 있으면 즐겁고 고맙고, 곁에 없어도 늘 곁에 있는 듯한 그런 친구.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만큼 그런 친구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겠죠.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들은 짓궂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제게는 그런 친구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늦게 그런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돼지고기가 담뿍 담긴 묵은지찜에 소주를 곁들였습니다. 2년 숙성됐다고 하는 묵은지의 맛을 느낄 즈음 한 친구가 말하더군요.

“이외수의 《하악하악》을 보았어. 거기에 이런 말이 있더군.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나는 부패된 인간이냐, 발효된 인간이냐?”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당황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부패냐 발효냐’를 놓고 이런저런 평가들이 난무했습니다. 저도 친구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일말의 두려움 때문에 묻지 못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걸 묻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 왜냐하면 부패한 인간이었다면 발효된 인간으로 거듭나면 될 것이고, 발효된 인간이라면 좀 더 발효되는 모습을 보이면 되기 때문이죠.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든 저렇든 ‘우리는 친구’라는 것이지요. 이외수의 《하악하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대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져버릴 사람이 있고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 있을 사람이 있다.

혹시 그대는 지금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질 사람을 환대하고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 있을 사람을 천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때로는 하찮은 욕망이 그대를 눈멀게 하여 하찮은 사람과 소중한 사람을 제대로 구분치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나니, 훗날 깨달아 통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오늘 저녁에 친구들과 묵은지찜에 소주 한잔하면서 여러분들도 한번 물어보시죠. 여러분들의 친구들에게 여러분은 어떤 존재인지.

부패된 인간인지, 발효된 인간인지. 아니면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질 사람을 환대하고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 있을 사람을 천대하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소노 아야코가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에서 전합니다.

노인이 되면 아무개는 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든지, 아무개는 나의 편이라는 등 유치한 표현을 하게 된다.

마음에 맞는 친구가 있으나 그것은 상대가 옳은 사람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왠지 모르게 느낌, 어리석음, 성질, 취미 등이 닮았기 때문에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내 편이니까 받아들이고 자신을 비난할 경우 거부하는 형태로 사고가 변하게 되면 상당히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120쪽

이현 지식·정보 디자이너, 오딕&어소시에이츠 대표 (rheey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