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inar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 말하는 2009년 한국경제
“성장잠재력 회복 없으면
경기부양책도 효과 없어”

전문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가 지난 12월18일 개최한 제1577회 세미나에서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 ‘기로에 선 한국경제 - 한국경제 위기론의 허와 실’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를 발췌해 싣는다.

발문
교과서에 보면 중앙은행의 역할은 ‘최후의 대부자’라는 표현을 쓴다. 요즘 쓰는 표현은 ‘정부는 최후의 소비자’라는 것이다. 아무도 소비하지 않을 때 정부가 소비해 줘야 산다.

발문
지금은 달러값이 올라서 걱정이지만 내년 중반 이후를 보면 달러 과잉에 의한 석유값과 원자재값 상승, 그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세계은행이나 IMF를 비롯해서 2009년도 한국경제의 성장 패턴은 ‘상저하고’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연평균이 2.4%가 됐든 2.0%가 됐든 상반기가 저성장이고 하반기는 좀 회복된다는 얘기다. 미국도 그런 패턴을 보일 거라는 예측이 나와 있다.
금년 말 내년 초로 예정되어 있는 각종 경기부양정책이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재정지출 증가는 대체로 1분기 내에 바로 나온다. 금리인하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안 나올 수도 있고, 우회적으로 2~3분기 후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금년에 통화 풀고 금리 낮추고 정부예산 지출 늘리고 한 것의 효과는 대체로 내년 3~6월 이후에 나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년 하반기부터는 정책효과가 많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상반기에는 1.8~1.9%, 하반기는 3.0% 정도의 패턴으로 갈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중국이 8.5% 성장할 경우에 한국이 2.4% 성장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만약에 중국경제가 경착륙을 해서 6%대, 또는 그 이하로 둔화되면 한국경제도 연 평균 성장률이 2% 미만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것이 지금 한국경제의 숙명이다. 자력으로 경제성장률을 컨트롤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적다. 해외수출, 특히 중국이 관건이 될 것 같다.
물가는 안정될 것이다. 경상수지가 흑자로 간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우리가 이번에 금융위기, 외환 불안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한국 돈이 국제통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불안을 가져다주는가를 많이 느꼈다. 그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미국은 달러 걱정을 하지 않는다. 유럽도 유로라는 공통화폐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원’이라는 우리만의 돈을 갖고 있고, 이 돈이 국제통용이 안 되니까 우리나라의 대외경제활동은 달러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다.
그렇다면 달러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달러를 얻는 방법은 수출밖에 없다. 그래서 수출, 특히 경상수지가 흑자가 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흑자는 굉장히 안타까운 흑자다. 수출이 늘어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경제가 위축되면 수입이 줄어든다. 그래서 수출이 줄어드는 양보다 수입이 줄어드는 양이 더 현저할 것이기 때문에 흑자가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름값, 원자재값이 낮아질 것이기 때문에 흑자가 될 것이다.
흑자 기조가 유지되는 한 우리나라의 금융, 외환 불안은 많이 진정될 것이다. 내년도 예측은 2.4% 정도의 연평균 성장률, 물가상승률은 2.5%, 경상수지는 160억달러 흑자를 전망한다.
그리고 환율이 하나의 관건이다. 우리는 상반기에 1300원, 하반기에 1100원으로 가정을 하고 모델을 돌렸다. 그런데 이것에 관해서는 다양한 예측이 나와 있다. 미국이 사실상 제로금리로 가는데 제로금리는 다르게 말하면 달러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가져가라는 뜻이다. 그래서 무한대로 푼다는 뜻이 됐고, 실제로 많이 풀렸지만 지금 현재 전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겪고 있는 달러 기근 현상은 파이프가 막혀서 그런 것이다.
유통 속도, 즉 흐름이 막혀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흐름이 뚫리는 순간 홍수가 날 가능성도 있다. 빨리 유동성을 흡수하지 않으면 전 세계로 풀려나간 달러의 유동성이 돌 때는 오히려 달러 가치의 폭락이 올 수도 있다.
우리는 그래도 내년말까지 1100원 전후로 가정했지만 삼성경제연구소는 1000원 이하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우리가 아직도 달러 부족이나 환율 급등과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 앞으로도 몇 차례 그런 고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내년 중반 이후를 내다보면 오히려 지금 우리가 걱정할 것은 달러 과잉에 의한 석유값과 원자재값 상승, 그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장기적으로는 잠복된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단기적 정책과제 - 금융불안 해소
이러한 현상 진단을 놓고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먼저 금융 불안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달러 부족에서 오는 환율급등이다. 그리고 외국인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서 발생하는 주가폭락과 금리상승 가능성이다. 그 다음 국내 금융경색이다.
지금 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많은 기업들이 만기연장이 안 되고, 회사채 발행도 사실상 안 되고, 돈은 풀었다는데 지금 흑자 부도의 기로에 서있는 기업이 많다. 이 문제는 우리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현상이다. 어떻게 보면 정부 내의 인식이 안일하다 싶을 정도로 민간경제 쪽에서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외환부족 고비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그리고 중국,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때문에 사실상 고갈될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우리가 10년 전에 겪었던 것과 같은 소위 외환보유고의 소진은 단기적으로 가능성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국내의 신용경색이다. 국내 신용경색의 원인은 은행의 건전성 유지 때문이다.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통화공급을 해도 은행이 스폰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돈을 머금고 안 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에 우리 경제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분야가 금융이다. 10년 전에는 금융기관이 정책수단이었고,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분들은 기관원이었다. 사실상 금융정책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은행은 이제 금융기관이 아니다. 이제는 은행기업이 됐고 먹고 살아야 하는 회사가 됐다.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봤다.
그런데 이번에 부실이 되면 또 없어질지 모른다는 악몽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정부에서 구두로 압력을 가해도 ‘망하는 은행, 당신네가 살려줄 거냐’라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지금 은행들의 BIS비율 맞추는 문제가 급선무가 됐다. 그래서 지금 생각에는 은행들의 자본금을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조치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후순위채를 사준다든가 한국은행이 직접 회사채를 사준다든가, 채권안정기금을 만든다든가 여러 가지 온건하고 점진적이고 그러나 정당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지금 상황이 시간이 지나면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깊어질수록 부실화되는 기업들이 자꾸 생긴다.
빚을 못 갚는 가계가 생기고, 이렇게 부실이 늘어나면 은행은 은행대로 대출여력이 줄어들고 위축되니까 악순환이 된다.
10년 전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배운 지혜가 하나 있다면, 부실이 발생하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과감하게 원칙대로 메스를 들이대서 들어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질질 끌고 안 죽는다고 자꾸 자금 수혈해 주고, 감추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10년 전 경험으로 배웠다. 아프더라도 신속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하는 게 시장안정에 도움이 된다.

중기적 정책과제 - 경제침체 막아야
중기적으로는 경기침체를 막아야 한다. 이것은 금융불안을 막기 위한 또 하나의 필수조건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심화되면 불가피하게 부실, 금융부실로 가게 된다. 그런데 한국경제 성장엔진이 수출과 내수인데, 수출이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수를 늘려야 하는데, 내수는 소비, 투자, 정부지출 세 가지이다.
소비는 가계가 하는 것이고 투자는 기업이 하는 것인데, 지금 소비 마인드, 투자 마인드는 완전히 제로 또는 마이너스 상태다. 교과서에 보면 중앙은행의 역할은 ‘최후의 대부자’라는 표현을 쓴다. 요즘 쓰는 표현이 ‘정부는 최후의 소비자’라는 것이다. 아무도 소비하지 않을 때 정부가 소비해 줘야 산다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재정적자 걱정할 때가 아니다. 지금 재정적자 얘기하는 것은 여유로운 얘기다.
경제의 침체를 막기 위한 재정의 경기부양 효과는 1930년대 이후에 입증된 효과이기 때문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 과감하게 써야 한다. 그 다음에 SOC에 쓰도록 되어있는데, 그것이 1970년대 토목건설 발상이라는 비아냥도 있지만 그래도 고전적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경제의 밑거름이 된다.
물론 그것도 옥석을 가려야겠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경제의 경쟁력에 밑거름이 되는 SOC, 도로, 통신, 에너지 등에 인프라를 갖추는 것은 장기 성장잠재력 재고를 위해서도 전략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오히려 재정지출을 늘려서 단기적인 소비부양으로 사탕물 주듯이 해서 먹고 마시고 버리는 것이야말로 재정적자의 폐해를 가장 크게 하는 방법이다. 이런 기회에 20~30년 남는 고형 자산을 만드는 것이 재정지출의 한 방법이다.
세금도 깎아줘야 한다. 규제도 완화해야 하는데 지금 수도권 입지 규제 푸는 걸 가지고 정치적 논란이 있다. 한국경제의 현실을 볼 때 지방을 죽이고 수도권만 살리냐는 식의 논리를 펼 때는 아니라고 본다. 지금 대한민국 어느 곳, 어느 땅이든지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 창출하는 것이 선이다. 무조건 해야 한다. 찬밥 더운밥 따질 때가 아니다.
특히 규제개혁이 필요한 영역이 서비스 산업이다. 이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지속은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 중심으로 가야 한다. 이것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국정과제로 되어있고 지금 정부도 그렇다. 병원·학교에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금융개혁 하고, 유통·관광·지식·서비스 등의 분야에 개방과 투자, 규제완화를 통해서 투자를 유발하고, 양질의 일자리, 지식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장기적 정책과제 - 성장잠재력 회복
지난 5년, 10년 동안에 우리 경제 운용방식이 경제원리대로 가지 않았다. 전부 정치논리, 형평논리, 배분논리, 국민정서로 대못을 박아놓았기 때문에 한국경제의 체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쇼크가 들어왔을 때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대로 몸으로 충격을 받고 충격이 경제 내에서 돌고 있다.
이게 다 분담이 돼야 하는데, 흡수가 안 되고 계속 도니까 장기화되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경제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하에서 경기부양 정책을 쓸 때 경기부양 정책의 효과가 매우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게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GDP 갭이라는 개념이다. 한 나라 경제가 갖고 있는 잠재생산량이 있다. 한국경제가 갖고 있는 기술력과 자본 부존량을 볼 때 생산할 수 있는 양이 1000조원 쯤 된다고 가정하면 그게 잠재생산량이 된다.
경기순환 과정이 호황과 불황을 지난 40년간 반복한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불경기 트랙 레코드를 보면 최장 30개월이고 대개 24개월 미만이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과거 40년의 경험으로 보면 2년 이상의 불황이 가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1차, 2차 오일쇼크도 겪었고, 외환위기도 겪었다. 이것이 굳이 희망의 메시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어렵다고 하더라도 내년 하반기부터는 미국을 비롯한 한국경제가 회복은 아니더라도 바닥은 치고 안정화되는 단계는 될 테니까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또 하나의 해석은 1990년대 들어와서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잠재력이 계속 하강해서 현재는 4%대에 와있다는 얘기가 가능하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이 추세가 1~2년 사이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 장기 추세를 우리가 바꾸지 못하면 언젠가는 영에 수렴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이 내려가는 추세 하에서는 경기침체기에 경기부양책을 써도 그게 경기부양 효과로 잘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물가불안 등 과열로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생산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기부양책은 항상 과열로 간다. 물가불안으로 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경기부양책을 과도하게 쓰면 과속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물가불안이나 다른 부작용으로 갈 가능성이 많다.

이재훈 기자 huny@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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