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1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의 회의가 끝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그동안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쓴 데 힘입어 생산도 호전되고 내수부진도 완화되고 있으며 주가지수, 환율 등 금융 쪽 지표들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기하강세는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이어 이 총재는 “위기 상황에 대응한 그간의 확장적 통화 및 재정정책이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물가불안에 대한 우려를 피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이 총재의 의견에 대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바로 다음날일 6월12일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과 가진 워크숍에서 “한은과 정부가 반드시 같이 갈 필요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이 총재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윤 장관은 “아직 경기가 하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경기회복은) 착시 현상일 뿐”이라고 단언하며 “현재 정부 입장으로는 적극적 금융 완화정책의 기조를 바꿀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윤 장관은 “전분기 대비 국내총생산(GDP)이 1~2% 증가하는 점만을 보고 정책 전환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며 “하반기에도 지금과 같은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정정책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장관과 통화정책의 주무부처인 한국은행이 구체적인 정책에 이견을 보이는 일이야 흔히 있는 일이지만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마저 이처럼 엇갈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코노믹 리뷰>는 한국 경제를 관리하고 이끄는 두 수장의 경제 상황에 대한 견해 차이가 왜 생겼는지, 또 누구의 의견이 우리 경제 현실을 더 많이 반영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국내의 경제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윤 장관과 이 총재의 의견 차이가 “두 기관의 역할 차이에서 나온 것으로 본질적으로 경기관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대체로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윤 장관의 의견에 많이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먼저 윤증현 장관과 이성태 총재의 의견 중 누구의 의견이 보다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한 20명의 경제 전문가 중 9명이 윤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이 아직까지는 우리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 20명 중 9명, 윤 장관 손 들어줘
이에 대해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아직 우리 경제 현실이 인플레이션을 이야기할 정도로 한가하지 못하다”며 “당분간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성태 총재의 의견이 보다 경제 현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응답한 전문가는 3명에 불과했다.

이성태 총재의 의견이 옳다고 응답한 이들은 “장기적으로 경제상황이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우리 경제가 저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며 “과잉유동성으로 인해 일시적인 자산거품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분기별로 볼 때 경기는 2009년 1분기에 바닥을 찍었다”며 “유가, 부동산 등 물가 상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설문에 응답한 20명의 전문가 중 8명이 ‘두 사람의 의견이 모두 옳다’고 응답해 최근 드러난 윤 장관과 이 총재의 의견 차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장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의견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향후 경기여건이 불안정함에 따라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빠른 시일 내에 기대하기 힘들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채희율 경기대 경제학과의 교수 역시 “통화정책의 효과 시차를 감안해야 하는 이 총재의 입장에서는 물가를 주시해야 필요가 있다”며 “두 사람의 의견이 상호 대립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보완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는 윤증현 장관의 생각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물가관리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성태 총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발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물가 책임 맡은 이 총재 입장도 이해해야
다만 정부의 경제정책을 관리하고 이끌어가는 두 기관의 수장이 서로 엇갈린 의견을 내놓기 전에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상황인식에 대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두 기관의 수장이 서로 엇갈린 경기 전망을 내놓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참여한 20여명의 전문가 중 14명이 ‘두 기관의 정책적 입장이 다르므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의견조율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즉 재정부와 한은 두 기관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보는 관점에 따라 경기 인식 차이는 드러낼 수 있지만, 그 인식 차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국민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인 셈이다.

반면 두 기관의 입장 차이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의견조율도 필요치 않다는 의견도 6명을 차지했다.

이에 대해 명지대 경제학과의 조동근 교수는 “두 기관이 상이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시장에서 다양한 기대치가 형성되고 경기변동의 진폭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며 “서로 정책목표가 다른 두 기관의 의견을 조율을 할 수 없을뿐더러 조율을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 경기바닥 찍을 것
한편 경기가 언제 바닥을 찍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 중 10명이 ‘올해 하반기에 경기가 바닥을 찍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올 상반기 중에 바닥을 찍었다고 답한 이는 5명에 불과했다. 또 내년 상반기까지 경기가 계속 하강할 것이라고 응답한 전문가는 3명이었다.

결국 대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이 경기하강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올 상반기에 경기가 저점을 찍었으나 올해 4분기 이후에 경기하강이 다시 이뤄지는 이른바 ‘더블딥(Double deep)’의 가능성도 있다고 응답해 경기회복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같은 사실은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언제쯤 이뤄질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11명의 경제 전문가가 내년 상반기나 돼야 경기회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답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반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이뤄질 것이라고 답한 이는 5명에 불과했고 경기침체가 2~3년 이상 장기화돼 2011년 이후에나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이뤄질 것이라고 응답한 전문가도 4명에 달했다.

즉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아직 경기가 저점을 찍지 않았으며 설사 저점을 찍었다 하더라도 경기가 저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이른바 ‘바닥이 넓은 U자형’ 경기그래프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출구전략 논의 아직 일러
유동성의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다소 있다’고 답한 이가 9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7명의 전문가가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답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답한 전문가는 3명에 불과했다.
또 시장에 늘어난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한 금리인상과 같은 이른바 ‘출구전략’이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9명의 응답자가 ‘제한적으로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6명의 경제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반면 출구전략이 필요하다고 답한 경제 전문가는 2명에 불과했다.
즉 경제 전문가들 대부분은 물가불안 요인이 다소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유동성 과다라기보다는 유가 등 원자재가격 인상에 따른 것으로, 출구전략을 펼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복현 한밭대 교수는 “물가불안의 가능성이 다소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과잉유동성 때문이 아니라 환율과 원자재가격 상승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양기인 대우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현재 상황이 유동성 과잉으로 보이는 것은 경기위축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판단된다”며 “인플레 우려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출구전략을 논하기는 이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형구 기자 lhg054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