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제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재무부 관세협력과장,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금융감독위원회 공보관·부위원장,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현재 기업은행장으로 있다.


인간개발연구원이 지난 6월18일 개최한 제1601회 세미나에서 윤용로 기업은행장이 ‘세계 금융위기와 한국 금융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를 발췌해 싣는다.

무역수지에서 흑자가 나고 있지만 수입이 수출보다 크게 줄었다. 우리나라의 수입은 대개 수출용 원자재, 부자재 그리고 설비자금 아니면 원료들이다.

이렇게 수입이 줄어들게 되면 분명 6개월이나 1년 뒤에 생산이나 수출이 어렵게 된다. 당장 무역수지 흑자로 환율 안정이 오는 것은 좋지만 이 상태가 지속되면 금년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올 하반기는 상반기보다 조금 어려워 질 것이다. 상반기에는 지난해부터 시행한 재정투입 효과와 예산 우선집행을 통해 좋은 모습을 유지했다.

하반기에 선진국에서 경제가 살아나 수출경기가 호전돼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경기회복은 내년 상반기 이후로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조금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10년 전 외환위기 경험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주식투자를 하거나 부동산투자를 해 이득을 봤다. 그래서 지금이 기회 아니냐는 말도 많은데 아직 낙관적으로 보기는 이르다. 10년 전의 데자뷰 현상, 과거의 경험이 오히려 나쁜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320만개의 기업이 있다. 그중에서 상장되어 증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은 1800개밖에 안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비상장기업이 돈을 꾼다는 것은 자본시장에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2000년대 들어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 것과 자금이 나간 것을 비교해 보면 연평균 2조원이 된다.

조달된 자금, 신주발행이나 증자한 것들은 연평균 10조원밖에 안 되는데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의 방법으로 나간 돈이 거의 12조원씩 되어 거의 매년 2조씩 돈이 줄어든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주식시장은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해 온 셈이다.

주주가치 최우선이 좋은 원칙이긴 하지만 이제 그런 장기투자들보다는 금융자본주의에 의해서 단기차액을 많이 노리고 있고, M&A를 통해 그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보다는 단기간에 되파는 방법들이 도입되어 이러한 현상이 많이 벌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9.7~99.9%를 차지하고 있고, 인력 비중은 87.5%이기 때문에 ‘9988’이라고 얘기한다. 중소기업이 제대로 크지 않고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

주식시장은 자금공급 기능 상실
우리나라에서 보면 기업의 외부 자금 조달 중에서 은행대출 비중이 84%나 차지하고 있다.

결국 기업은 내부에 있는 돈 아니면 은행대출에 많이 의존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은행은 주식시장 발전과 자본시장 발전에 따라서 그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증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8년 이후에 대기업의 은행대출이 많이 늘었다. 지금 대기업의 은행대출이 늘어나니 언론, 학계에서도 “대기업은 이제 자본시장으로 가고 은행은 중소기업이나 가계대출을 해야 하는데 왜 대기업 대출을 늘리느냐.

특히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을 많이 해야지, 왜 대기업 대출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현재 상황에선 굉장히 높은 금리가 아니면 대기업들도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들도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어떻게 보면 지난 10년간에 대한 반성의 결과다.

자본시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은행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IMF 때 대기업들이 개편되고 나서 양극화가 발생했다. 대기업은 아주 좋고 중소기업은 더 어려워지는 현상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많은 대출을 해주고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협력해 국가경제에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은행이다.

미국도 1994년도에 이미 은행은 죽었느냐는 논의들이 많이 나왔다. 미국도 지금에 와서는 역시 은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경제 전체 차원에서 생산성이 있고 앞으로 발전해야 될 분야를 잘 선정해 자원을 지원하는 기본 기능이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9988’ 중소기업이 위기극복 핵심
우리나라에선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9.7~99.9%를 차지하고 있고, 인력 비중은 87.5%이기 때문에 ‘9988’이라고 얘기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중소기업의 비중이 매우 높다. 중소기업이 제대로 크지 않고서는 우리 경제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수출에서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세계에서 가장 수출을 많이 한 나라는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독일이다.

독일이 작년 1조4000억달러를 수출했다. 우리나라는 작년 4200억달러 수출했다. 우리가 아는 독일회사는 지멘스나 벤츠가 고작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보다 1조달러를 더 수출할 수 있는가? 중소기업 때문이다.

《히든 챔피언》이라는 책을 쓴 헤르만 지몬은, 세계적으로 2000여개의 히든 챔피언 기업이 있는데 독일에 1000여개가 있다고 했다. 미국에 300개, 일본에 100개, 우리나라에 25개 정도가 있다고 책에 나와 있다.

금융위기에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많이 발전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 밑을 받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이제 강해져야 한다. 우리나라도 히든 챔피언을 300개정도는 키워야 한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중소기업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지수가 내려갔다. 자금 사정은 많이 좋아진 것 같다.

금년도에 중소기업 대출 만기가 돌아온 것은 자동적으로 1년 더 연장을 시켜준다. 그리고 올해도 약 40조원의 대출을 순증하고 있다. 하지만 평균 가동률은 아직까지 70%에도 못 미치는 그런 상황이다.

‘일야십기(一夜十起)’. 후한서에 나오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밤에 열 번이라도 일어나서 돌본다는 말이다.

올해 중소기업이 금융위기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을 때에 기업은행은 밤에 열 번이라도 일어나서 이마를 만진다는 심정으로 일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금년도는 특히 중소기업이 중요하다. 자금이 필요하면 자금을, 사람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잡월드를 만들고, 특정 분야에서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에는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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