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는 30대가 되면 차도 있고 집도 있을 줄 알았다. 막상 지금의 나는 그 흔한 운전면허 하나 없고, 단칸방 전세자금도 못 모았다. 10대 때는 ‘누가 뭐래도’ 내가 걷고 싶은 길을 가겠다는 고집이 있었다. 지금은 글쎄. 걸어온 길을 힐끔힐끔 돌아보며 ‘맞게 가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처럼 뒤늦은 ‘진로고민’을 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그렇지만 10대나 20대 때만큼 ‘진로’에 쏟을 에너지는 많지 않아, 그 고민의 말로는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아니라 대부분 ‘허황된 바람’ 늘어놓기로 끝난다. 그 중 하나가 ‘가업’이었다. 또래 친구들도 엇비슷한 생각을 털어놓곤 했다. 가끔씩 헛헛한 말투로 “물려받을 가업이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을 뱉고, 여기저기서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는 식이었다.

얼마 전 취재차 한 농가를 방문했다. 젖소 40두를 키우면서 직접 짠 우유로 치즈를 만드는 곳이었다. 50대인 그 곳의 대표는 선친이 운영하던 농가를 이어받아 약 10년 전부터 치즈 가공을 시작했다. 그리고 20대인 아들에게 벌써부터 치즈 가공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들은 일찍이 가업을 물려받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치즈 만드는 모습을 봐오며 컸던 아들은 부모님의 강요에서가 아니라 가업의 ‘가치’를 스스로 깨달아 자발적으로 승계의 의사를 비쳤다고 한다. 3대째 운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젖소 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하루에 몇 십 킬로그램의 치즈를 만든다.

지난여름에는 충북 진천군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양조장을 찾은 적이 있다. 양조장 대표는 “나를 포함, 3형제가 모두 승계를 거부했었다. 이미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양조장 사업자체의 비전을 못 느껴서다. 나이가 좀 들어서 보니, 집안에 이런 보물을 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래서 대를 잇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90년 가까이 지켜온 양조장이 도로확장공사로 철거 위기에 처했을 때 지켜온 과정 등 하마터면 가업의 ‘맥’이 끊길 뻔한 경험도 실감나게 들려줬다.

보통 기업의 생존기간은 약 30년이란다. 기업의 숨을 끊는 요소에는 M&A, 경영난 등 몇 가지가 있지만 ‘손 한번 못써보고’ 불씨를 꺼뜨리는 ‘후계자의 부재’는 어떤 요소보다 허무하고 잔인하게 친다. 이미 병이 온몸에 퍼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라 산채로 묻히는 느낌이랄까. 위 사례의 경우 둘 모두 자발적으로 가업 승계를 결심했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어쨌든 ‘기업’도 30년을 이어가기도 힘든 마당에 이렇다 할 지원이나 혜택 없이 3대째, 4대째 이어가고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 혹은 가내수공업자를 보고 있자니, 술자리서 가벼운 말투로 ‘가업이나 이었으면’했던 게 내심 송구스러웠다.

한 창업 전문가는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전문성의 우위는 물론 위험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창업의 형태”라면서 “혈통과 기질 등 근본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전수되는 가업 승계야말로 가장 큰 생산성을 갖출 수 있는 구조”라고 했다. 그렇다고 가업이 있다면 무조건 이으라는 말이 아니다. 가업을 하나의 ‘전문직’처럼 여길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일견 가업을 잇는다는 것을 전세대가 다져놓은 입지 속에 무리 없이 ‘편입되는’ 형태로 보는 시선도 있다. 요즘 같이 청년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될 때에는 더욱 그렇다. 얼마 전에는 ‘청년실업률 증가, 가업 승계가 대안’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왠지 진주목걸이(가업)를 돼지 목(실업시장)에 걸어놓은 듯, 불편한 문구였다. 가업이 좀 더 존중받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한다. 대체재가 돼서는 안 된다. 지원이나 혜택은 그 후 문제다. “가업을 잇기로 했다”라는 말이 “모든 기회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선택한 길”이라는 의미로 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