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시장의 전쟁이 뜨겁다. 지난해 한국 필립모리스는 버지니아 슈퍼슬림 브랜드 가격을 기존 2900원에서 400원 인하(13.7%)한데 이어 지난 4일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 코리아(BAT 코리아)가 던힐 파인컷 수퍼슬림 브랜드 판매 가격을 2500원으로 인하했다.

이는 국내 담배시장에서 토종기업인 KT&G가 초슬림형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80%의 점유율을 빼앗겠다는 강한 의지로 풀이된다. 가격인하로 가격경쟁력을 갖춰 정면승부를 펼치겠다는 의미다.

외국담배회사 관계자는 “초슬림형 제품은 국내 성인흡연자들이 애용하는 제품군”이라며 ”가격인하를 통해 보다 많은 성인흡연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국계 담배회사와 정면승부를 펼칠 KT&G는 긴장하지 않는 모습이다. KT&G 관계자는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힐 부분이 아닌 것 같다”고 일축했다.

"올릴 땐 언제고”...누구를 위한 가격인하인가?

이번 가격 인하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시장점유율이 떨어지자 가격인하를 하는 속보이는 꼼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외국계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코리아(PMK), BAT코리아(영국계)와 JTI코리아(일본)는 2011년 말보로, 던힐, 보그, 마일드세븐 등 자사의 제품 가격을 2500원에서 2700원으로 슬쩍 인상했다. 인상폭 200원은 8%라는 인상률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인상 이유로는 원재료 가격 및 인건비 상승에 따른 경영부담 가중을 표면적 이유로 꼽았다. 원가상승이 문제라면 재무제표에 반영돼 이익이 줄어들어야 정상인데 외국 3사의 영업이익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실제로 필립모리스코리아의 경우 영업이익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847억원, 947억원, 1332억원으로 매년 큰 폭 상승했다.

하지만 원가상승을 명분으로 가격을 인상했던 외국계 3사의 제품은 2년이 채 안돼 가격인하를 단행했다. 수익성 악화를 명분으로 가격을 인상했던 외국계 3사의 제품은 시장에서 차가운 반응을 맛봐야 했다. 특히 현지보다 한국에서 더 큰 폭으로 가격을 올린다는 지적과 서민층 가계를 압박한다는 비난의 여론을 피할 수 없었다. 편의점 판매 기준 외국계 3사의 시장점유율이 인상전인 2010년 41.5% 대비 2012년 38.0%로 3.5%p 감소했다. 특히 전체 담배 시장에서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초슬림 제품군은 KT&G 에쎄(esses)에 시장점유률 80%을 내줘야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뒤집기 위해 최근 프리미엄 담배 시장의 확산과 함께 급성장 중인 슬림담배를 '히든 카드'로 가격인하를 결정했다. 시장 경쟁력이 없는 슬림담배인 보그와 던힐 파인컷 수퍼슬림 가격을 내린 반면 던힐, 마일드세븐 등 비교적 시장점유율이 높은 제품의 가격인하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소비자들의 시선이 고을 리 없었다. 다른 인기 제품의 가격을 올릴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점유율이 낮은 제품의 가격을 내리니 너무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초슬림 시장에서만 가격인하를 하는 속이 휜히 보이는 이기적인 결정”이라며 “그들의 희망대로 초슬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면 2년 전처럼 언제라도 가격을 다시 올릴 수 있지 않냐” 며 한국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밝혔다.

KT&G의 뚝심, 경기 침체에서 서민과 함께 하다

반면 수입 잎담배 대비 2배 이상 비싼 국산 잎담배를 사용해 외국계 3사보다 원가 부담이 더 높았던 KT&G는 물가안정과 소비자 부담을 감안해 가격을 동결했다. KT&G는 수익성 악화 가능성을 무릅쓰고 가격을 동결하면서 정부의 물가안정시책에 협조했지만, 외국 담배회사들은 물가 압력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인상을 단행하는 등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담뱃값 인상은 소비자들, 특히 서민층 가계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서민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가계소비 중 담배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 더욱이 국산 담배가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가중치 비중은 0.5%, 외산 담배는 0.35%다. 담배의 가중치는 481개 소비자물가 조사품목 가운데 20번째로 높고 저소득층의 구매 비율이 높아 서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또 해마다 연매출의 2% 이상인 3386억원(최근 5년간 평균 564억원 수준)을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했다. 이는 전경련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 평균(0.2%)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국민건강이나 환경 등 사회해악적인 죄악산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담배산업은 그 특성상 사회적 책임이 무겁게 뒤따른다. 이에 KT&G는 2006년 중장기 마스터플랜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위한 사회환원 기본방향을 밝히며 매년 매출액의 2% 이상을 사회공헌활동에 집행하고 있다.

외국계 누른 토종, 외국 담배 초슬림 시장에서 백기 들어

지난 1988년 국내 담배시장 개방 이후 20년간 시장 확대에 주력해 온 외국계 담배회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40%내외까지 급성장했다. 막강한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구축하며 20~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국내 공략에 성공했다. 반면 토종 담배회사인 KT&G는 연구개발 부진과 마케팅 전략 부재로 시장점유율 50% 후반대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2011년 외국 3사가 담뱃값을 인상하며 본격적인 수익성 전략으로 전환 할 때 KT&G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연구개발로 신제품을 출시했다. KT&G가 공기업에서 민영화로 변모하면서 `팔릴 상품'을 연구 개발해 왔다. 또 끊임없는 리서치와 그에 대한 마케팅 전략으로 작년에 출시한 레종 에어로, 더원 임팩트 등 신제품 판매량이 급등하였다. 그 결과 외국 담배회사들의 국내에 진출한 이후 내림세를 걷던 KT&G의 시장 점유율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62% 시장점유율을 기록해 전년대비 3%p 상승했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들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KT&G의 시장점유율 상승을 견인했다.

특히 에쎄의 반응은 뜨거웠다. 외국 3사의 초슬림 담뱃값 인하를 이끌어 낼 만큼 사실상 초슬림형 담배시장을 독점했다. 하루 평균 320만개를 팔며 시장 점유율 24.4%를 차지했다. 에쎄의 성공요인은 시장환경과 트랜드를 정확히 읽고 브랜드에 적극 반영했기 때문이다.

에쎄은 국외서도 인기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세계 40여개국 수출을 통해 글로벌 대표 브랜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해 중동, 중앙아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 초슬림 담배 판매 1~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연간 판매량은 국내외 포함 총 16억2000만갑에 달할 정도다. 세련된 패키지와 낮은 타르 함량으로 현지시장에서 외국 슬림 브랜드보다 높은 품질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최근 KT&G는 지속적인 신제품 출시로 외국계 담배 회사에 비해 신기술 개발이 뒤쳐진다는 편견을 완전히 깨고 있다. 에쎄 성공에 힘입어 KT&G는 지난해 람보르기니 담배를 출시한 데 이어 5월말에는 보헴 모히또 1㎎를 출시했다. 초기 입점 효과로 인해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다른 제품에 비해 구매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KT&G 관계자는 “지속적인 제품개발과 그 상응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국내 시장의 지위를 공고히 해나갈 것”라 전하며, 자신에 찬 어조로 “앞으로 토종의 반격을 주의 깊게 봐달라”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