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의해 사법권이 독립된 민주국가다. 행정부가 나라 살림을 잘하는지 감시하는 것은 국회와 법원이고, 입법부가 국민의 뜻에 맞게 법을 만드는지 감시하는 것은 정부와 법원이다. 그리고 사법부는 자기 마음대로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만든 법과 조례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 이렇게 세 기관은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데, 만약 어느 한 기관의 힘이 세지고 다른 기관의 힘이 약해져서 균형이 깨진다면 독재나 부정부패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세 기관이 균형을 이루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이 이상해져 가고 있다. 삼권분립이 잘 지켜지고 있기나 한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법원이 국회와 행정부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문제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경제민주화’ 때문이다. 정치권이 주창하는 경제민주화에 사법부가 올바른 판단을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법의 위반 여부보다 기소된 인물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닌지도 궁금하다.

지난해 같은 법정에 섰던 김승연 한화 회장과 이호진 태광 회장은 요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호진 회장은 병보석으로 이미 자유의 몸이 된 반면 김승연 회장은 아파도 별거 아니라는 재판부의 판단에 병세가 더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건강이 악화돼 서울남부구치소의 교도관들과 함께 병원을 찾는 횟수가 잦아졌다고 한다. 김 회장의 정신과 주치의는 “김 회장이 재발성 우울증이 있어 정기적인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회장의 보석신청은 기각됐다. 김 회장의 경우 50억원의 이상의 횡령·배임에 해당돼 일반 형법이 아닌 특경가법이 적용돼 이번 보석 불가 사유에 형소법 95조 1호가 적용됐다. 형사소송법 제95조1호에서는 보석청구 불허 사유 중 하나로 ‘사형, 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한 죄를 범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김 회장의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폐허탈로 인해 폐기능이 정상인의 절반으로 줄어들어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체내에 이산화탄소가 축적되는 고탄산혈증이 지속돼 집중치료가 필요한 위급한 상황에까지 빠졌다. 호흡부전이 악화되어 무호흡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로 폐렴과 패혈증 등 돌연사의 응급성에 대비해야 하는 등 집중치료가 시급이 요구되는 상황이라 한다.

이에 구치소까지 나서 구속집행정지를 재판부에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중죄인이라고 할지라도 병세가 심각하다면 수술이나 장기간 치료를 통해 병을 고쳐서 재수감하면 된다. 살인죄 같은 중대범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치료목적의 보석은 허가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형사재판에서 피의자도 방어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알고 있다. 법도 사람이 만들었고 사람이 집행한다.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법 앞에 환자도 평등해야 하는 것인가. 병세가 더욱 악화돼 만약에 피의자가 사망에 이르면 그때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처벌을 하려면 환자에게도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먼저 제공하고 그 이후에 법의 심판이 이뤄져도 늦지 않는다. 왜 재판부가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환자도 굽어살피시면 더욱 평등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재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