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머금은 산 구릉 초원이 뽀얀 새벽안개 속에 잠겼다. 안개바람을 타고 코끝을 전해오는 초지의 향기가 맑고 싱그럽다.

물기를 듬뿍 머금은 안개 속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뽀얀 속살을 내보이듯 초원이 안개를 헤치며 윤곽을 드러낸다.

목초지엔 부지런한 얼룩배기 젖소와 앙증맞은 아기 양들이 이른 아침을 맞는다. 언덕 너머 오두막에선 금방이라도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목동이 뛰어나올 것만 같다.

알프스의 동화 속의 마을 풍경이 아니다. 강원도 평창의 대관령목장의 소박하면서도 이국적인 아침 풍경이다.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대관령 고원은 대관령 정상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경계로 서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연둣빛 초원에서 양떼와 소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은 영락없는 달력 그림이다.

민들레, 양지꽃, 현호색 등 형형색색의 들꽃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초지 사이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앙증맞다.

산 아래는 30도를 육박하는 기온에 초여름으로 들어간 지 한참이 되었지만 하늘 아래 첫 초원인 대관령목장은 아직 봄이 한창이다. 더 넓은 초원에서 불어오는 향긋하고 달콤한 꽃내음과 싱그러움은 봄이 아직 진행형임을 말해 준다.

하늘 아래 첫 초원 삼양대관령목장
삼양대관령목장은 인체리듬상 가장 행복을 느낀다는 해발 700m 이상의 고도에 자리 잡고 있다. 백두대간의 허리, 오대산을 낀 동양 최대의 목장, 한국의 알프스 등 화려한 수식어가 결코 무색하지 않다.

영동고속도로 횡계IC를 나오면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횡계 시내를 지나 비포장 산길을 달려 목장에 도착했다.

목장은 우선 규모에서부터 관광객을 놀라게 한다. 1000만평에 초지면적만 450만평, 여기에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만 30km가 넘는다.

매표소(해발 850m)에서 동해전망대(1149m)를 돌아오는 목장투어 버스에 올랐다. 완만한 구릉으로 이뤄져 있는 곳을 벗어나자 광활한 연초록 융단 위로 젖소무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젖소들 뒤로 구릉을 따라 목장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눈에 들어온다. 200m 간격으로 세워진 총 53기의 풍차는 높이 40m, 날개 반지름이 25m에 이른다. 동해의 세찬 바람에 쉼 없이 전기를 만들어낸다.

풍력발전기는 멀리서 보면 바람개비처럼 앙증맞지만 80m 높이의 기둥 아래 서면 직경 90m인 날개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전율을 느끼게 한다.

동해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은 초대형 야외세트장이다. 드라마 〈가을동화〉 이후 단골 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연애소설>에서 차태현, 손예진, 이은주가 팥배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던 장면,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장혁과 전지현이 지프를 타고 달리던 장면,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군용트럭이 줄지어 달리던 장면이 모두 이곳에서 촬영됐다. 지금까지 대관령목장에서 촬영된 영화, 드라마, CF는 어림잡아 150여편이 넘는다.

해발 1140m의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동해전망대에 올랐다. 동해 해맞이 장소로도 유명한 이곳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강릉시내와 푸른 동해바다가 선명하다.

서쪽으로는 드넓은 초지와 함께 황병산, 소황병산, 발왕산, 선자령 등이 손에 잡힐 듯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청정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세상시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하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양떼목장
삼양목장에서 나와 456번 도로를 따라 옛 대관령휴게소로 향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구비구비 이어지는 대관령길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휴게소 뒤쪽 선자령 갈림길에서 좌회전해 한 500m 오르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로 양떼목장이다.

총 6만2000평의 초원은 양들의 천국이다. 삼양목장처럼 광활하지는 않지만 고원 언덕에 펼쳐진 초지와 양떼, 숲 등은 알프스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산자락 구릉에 조성한 초록빛 목초지에서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한창 자라난 목초로 온통 초록빛을 이룬 양떼목장은 연중 어느 때보다도 싱그럽고 생기가 넘쳐난다.

양들은 뉴질랜드 원산의 코리데일종으로 털과 고기 생산용으로 암수 모두 뿔이 없고 하얀 양털이 탐스럽기만 하다. 목장은 입장료 대신 건초를 사서 양들에게 먹이는 이색체험을 할 수 있다.

양들에게 직접 건초(3000원)를 먹여주는 관람객들의 해맑은 모습과 겁 없이 건초를 받아먹는 순진한 양들의 모습이 정겹다.

서울에서 온 최용호(44) 씨는 “대관령의 가장 큰 매력은 맑고 깨끗한 청정지역”이라면서 “이곳에 서면 세상 시름에 쌓인 스트레스는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건초 먹이기가 끝나면 양떼목장의 백미인 산책에 나선다.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세트장을 거치는 1.5km의 산책길은 유유자적 여유 있게 둘러보기 좋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초록풀과 알록달록한 꽃, 초지를 누비는 양떼, 숲을 헤치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다 보면 이곳을 찾은 보람을 만끽할 수 있다. 목장은 대관령 정상과 맞먹는 높이에 조성돼 있다.

정상부(해발 950m)에 서면 대관령 주변이 한눈에 들어와 가슴이 후련하다.

여행정보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횡계IC를 나와 우회전, 횡계리 못 미쳐 좌회전 후 5~10분 정도 가면 대관령 옛 휴게소(상행선) 주차장이다. 삼양목장033-335-5044~5. 양떼목장033-335-1966

먹을거리
황태요리와 오징어불고기로 유명하다. 대관령에서 생산된 황태로 만든 구이, 찜, 불고기, 전골 등 다양하다. 전문집으로 황태회관(033-335-5795) 등이 있다.

묵을 곳
인근 용평리조트(1588-0009)에는 호텔, 빌라, 콘도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스키곤도라를 이용해 발왕산 정상에 서면 백두대간의 웅장한 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 또 용평리조트 부근에는 근사한 룸과 레포츠를 겸한 펜션들도 많다.

볼거리
횡계리에서 30분가량 차를 몰면 오대산 월정사에 이른다. 상원사와 함께 신라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절이다.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전나무숲길이 아름답다.

경내 적광전 앞 팔각구층석탑(국보)이 볼 만하다. 상원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는 국내 5대 사찰 중 한 곳이다.

국보인 신라 동종도 보존돼 있다. 또 인근에 위치한 봉평허브나라도 한번 들러볼 만하다.

대관령(평창)=글ㆍ사진 아시아경제신문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