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출처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출처 : 연합뉴스

미국의 긴축기조가 강화되고 국내외 물가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미국이 연내 추가 인상을 시사한 만큼 우리나라 역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연말경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3.00%’에 도달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시장 일각에선 3.5~4.0%까지 오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인플레 해결카드 ‘금리 인상’ 외엔 안보여”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고 원화 가치를 떠받치기 위해 오는 7월 13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준금리가 주요 정책 수단으로 자리 잡은 1999년 이래 한은이 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린 적은 없으나, 인플레이션을 마주한 만큼 물가 단속 필요성이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0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은 기대인플레이션 영향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지난 6월 29일 한은이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1년간 예상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의미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이 전월 대비 0.6%포인트 오른 3.9%로 집계됐다.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자 상승 폭은 2008년 통계 시작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신영증권은 이날 한은의 소비자동향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금통위가 7월 빅스텝에 나서고 연말 기준금리는 최대 3.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7월 0.75%포인트, 9월 0.50%포인트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당분간 주요국의 가파른 긴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7월 한은 금통위의 0.5%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투자은행과 매체들도 한은의 빅스텝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블룸버그는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 금융시장 금리 등을 바탕으로 추산한 결과 6개월 이후 우리나라의 정책금리가 약 3.0%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보며 한은이 7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씨티그룹과 JP모건체이스앤컴퍼니 등 월가 기관도 한은이 빅스텝에 나설 것으로 봤다.

한은 내부에서도 “6월 물가가 ‘6%대’를 기록할 경우 한은이 빅스텝에 나설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유가 및 식량 가격 상승을 이끌어낸 주요 요인이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중국 봉쇄·글로벌 공급 병목 현상 등 대외 공급 변수에 따른 것임을 감안했을 때 물가 상승을 저지할 만한 마땅한 카드는 금리 인상 외에 마땅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6개월물은 이미 역전…미국보다 기준금리 높아야”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을 막고 외국 투자 자본을 우리나라에 묶어 놓기 위해서라도 금리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연준이 자이언트스텝을 연이어 밟을 것으로 예고한 만큼 한은의 빅스텝 단행 필요성이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7월 한은 금통위에서 빅스텝이 결정되더라도 연준이 같은 달 자이언트스텝을 밟게 되면 한미 금리는 역전되기 때문이다.

이에 한은은 더욱 공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선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연말경 3%대 중반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1.75%로 동일하지만 시장금리인 한국통안채 6개월물과 미국의 리보금리 6개월물로 봤을 땐 이미 역전돼 1% 이상 차이가 난다”며 “이것을 계속 용인하게 되면 원화 약세를 피할 수가 없고, 미국이 0.75%포인트 또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은 최소 빅스텝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같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굳이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지고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갈 경우엔 국내 경제위기가 더 커지기에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1%포인트 높은 것이 관례였다”며 “미국이 올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3.5%로 올린다고 한 만큼 한은은 올해 남은 4번의 모든 금통위 회의서 추가 인상을 결단할 것으로 보이고 연말경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4.0%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초인플레이션 상황 고착화를 막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지금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경고에 나섰다. BIS는 지난 6월 26일 보고서를 통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제 성장을 해치더라도 금리를 더 빠르게 올려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전세계가 과거 1970년대처럼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상황)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이 몰고 올 파장에 유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연준의 금리인상 충격은 일차적으로 국고채 금리를 상승시키고 회사채와 코픽스(COFIX), 은행채 금리 등 시중금리에도 상승 압력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회사채 금리가 상승하고 은행의 자금조달비용이 증가하면서 가계 및 기업대출 금리도 상승 압력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경우 경제 주체들의 자금조달에 애로와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필요시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통해 동 충격을 완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금리가 금융·경제 여건에 비해 과도하게 상승하거나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국고채 매입이나 유동성 공급 등을 통해 시장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금융시장의 잠재적인 불안 요소를 점검하고 실물 부문으로 전이될 가능성에 유의하면서 대응 방안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