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 원자재 고가구매, 엔진부품 과다구매 등 방만한 경영으로 재무구조가 좋아지지 않은 조선사들을 워크아웃하는 것은 금융사의 역할입니다.

●● 보험사 특허 7개를 가졌고, 3만2000t급 선박을 7개월 만에 만들어낸 조선사를 그대로 버릴 수는 없잖습니까.

신한은행과 메리츠화재가 선수금 환급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진세조선은 워크아웃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신한은행은 진세조선의 선수금 환급을 놓고 메리츠화재에 소송을 걸었다.

송사에 휘말린 진세조선은 현재 워크아웃이 중단된 상황이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제2의 C&중공업’ 될 위기에 처했다. C&중공업은 우리은행과 메리츠화재가 신경전을 벌여 워크아웃이 무산된바 있다.

“보증해 줄 곳 찾다 보니…”

RG보험은 은행의 ‘선수금 환급 보증(RG, Refund Guarantee)’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RG는 선주가 조선사에 준 선수금을 보증하는 일종의 보증서이다. 통상 선주는 선박을 주문한 후 선박가격의 70~80% 정도 해당하는 선수금을 몇 차례 나눠 조선사에 지급한다. 조선사는 은행에게 수수료를 지불하고 RG를 발급한다. 선주는 발급된 조선사의 RG를 받고 완성된 선박을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중소형 조선사는 여기서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보험사의 RG보험을 통해 보증을 받아야 은행의 RG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중소형 조선사는 대형 조선사보다 신용등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은행이 수수료를 내고 보험사의 RG보험을 가입한다. 결국 은행의 보증과 보험사의 보증, 이중 보증을 받아야 한다.

일단 조선사가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만 선박을 만들어주면 RG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증서가 된다. 조선사는 RG 한 장으로 선박값의 일부를 미리 받아 좋고, 은행과 보험사도 수수료 수익을 짭짤하게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사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RG는 무서운 연대 증서로 돌변한다. 선주가 계약 위반을 이유로 조선사에 선수금 환급을 요청했는데 조선사가 갚을 능력이 없다면 보증을 선 은행이 고스란히 책임져야 한다.

은행은 다시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해 환급금을 보상받을 수 있지만, 은행과 보험사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법적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RG보험을 둘러싼 은행과 보험사 간의 대립은 C&중공업 워크아웃부터 시작됐다.

C&중공업의 워크아웃은 끝내 무산됐고, 그 당시의 과정이 진세조선에서 다시금 재현되고 있다. 지난 5월26일 신한은행이 서울중앙지법에 메리츠화재를 대상으로 보험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지난해 11월 진세조선이 선박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면서 비롯됐다.

노르웨이 선주사인 송가는 RG를 발급한 신한은행에 선수금 환급을 요청, 신한은행은 송가에 선수금을 반환했고 메리츠화재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지만 메리츠화재가 지급을 거부했다. 신한은행 측은 선수금을 당연히 환급해야 했고, 그에 대한 보험금 지급 요구는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달리 메리츠화재는 현재 송가와 진세조선이 분쟁 조정 기간에 들어가 있어 선수금을 환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진세조선과 맺었던 계약 약관에서 비롯됐다. 은행 입장에서 RG는 ‘대출’의 개념이기 때문에 선수금 환급 상황이 벌어질 경우 무조건적인 환급 의무가 발생될 수밖에 없다.

계약 약관에 대한 해석 분분

보험사는 RG가 ‘보험’의 개념이다. 보험금 지급은 분쟁 결과가 나온 후에 지급해도 늦지 않다. 보험사와 맺은 계약 약관에는 “조선소 또는 은행이 선주로부터 선급금 반환을 청구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이에 관해 중재가 제기된 사실을 통지받는 경우, 중재가 종료할 때까지 당사는 보증한 금액을 지급하지 않아도 됨”이라고 적혀 있다. 메리츠화재가 진세조선에 대한 RG보험금은 아직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사 관계자에 따르면 RG 계약은 선박건조 계약에 귀속된다. 선박건조 계약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선수금의 환급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분쟁 조정을 우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분쟁 조정은 지난 2월에 신청됐으나, 한 달 뒤 신한은행은 선주인 송가에게 선수금을 환급했다. 진세조선 관계자는 “선박건조계약 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금을 환급하는 바람에 문제가 복잡해졌다”며 “송가 측에서도 환급은 이미 됐는데 분쟁 조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협의를 신청해 왔다”고 말했다.

보험사, 해외 재보험 사기당했다?

하지만 금융업계에서는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미루는 이유에 대해서 해외 재보험사의 사기 문제도 포함돼 있다고 보고 있다. 해외 재보험사의 사기로 인해 환급해야 할 보험금이 많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보험사는 RG보험을 받을 경우 해외 재보험사를 통해 재보험을 가입한다. 이 과정에서 개입한 재보험 브로커가 재보험료와 수수료 등만 챙기고 진짜 보험을 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몇몇 보험사들은 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채로 RG보험을 받아놓은 상황이 된 셈이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경험이 부족한 보험사들이 손쉽게 선박금융에 손을 댔다 큰 코 다친 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험사의 RG보험이 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면 보험사마저 휘청거릴 수 있다.

은행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에는 일부 조선사와 보험사의 동반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며 “현재 금융감독기관에서 계속 사건 진상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사 관계자의 울분 토로

“은행들이 RG 조건으로 키코 가입 강요했다”

“선주가 선수금을 환급해 주지 않을 경우 유럽 시장에 국내 은행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했대요. 신용등급이 좋지 않으니 거래하지 말라는 등의 소문을 말이죠. 결국 유럽 시장에 대한 영업활동에 제동이 걸릴 것을 우려해 서둘러 선수금을 환급해 줬다고 하더군요. 해당 은행 관계자들이 자기들 입장도 좀 생각해 달라고 하는데, 도산 위기 직전에 온 조선사에게 할 말입니까.”

전화기를 너머 한숨 섞인 소리가 들려온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조선사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은행이 보증 조건으로 가입하라고 했던 키코상품이 원망스럽다”는 말을 먼저 했다. 은행에 따르면 조선사들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이유는 원자재 고가구매와 부품의 다량구매 등에 따른 방만한 경영이라고 했다.

조선사 관계자들은 수십 척의 배를 수주받은 상황에서 원자재와 부품을 미리 구입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며 반박하고 있다.

조선사 관계자는 “방만한 경영에 대해서도 인정하겠지만 재무구조 악화에 대한 절반의 책임은 키코상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은 RG보험과 함께 키코 가입도 RG 조건으로 내세웠다”고 덧붙였다.

한 조선사가 가입한 키코는 2007년 환율이 930~950원이었으며, 녹 인(Knock In)이 900원, 녹 아웃(Knock Out)이 960원이었다. 현재 환율은 1200원대이며, 해당 조선사는 300원대의 환차손을 입고 계약금액의 2배를 물어줄 상황인 셈이다.

당시 은행에서 키코 홍보를 대대적으로 시행했으며, 조선사들도 달러 강세를 예상치 못하고 내부적으로 키코 가입을 결정했다. 선수금 보증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김현희 기자 wooang1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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