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종료 후 글로벌 공급망 교란이 벌어지는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승을 부리며 미국 등 서방의 관심사는 인플레이션 대응과 러시아 문제 해결로 좁혀지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든 종료되면 이후 시작될 빅매치는 미중 패권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두 슈퍼파워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상태에서 시장은 화웨이의 대응 방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켄 후 화웨이 순환회장. 출처=화웨이
켄 후 화웨이 순환회장. 출처=화웨이

강력해지는 규제
블룸버그 등 외신은 19일(현지시간) 캐나다 정부가 ZTE와 함께 화웨이를 자국의 5G 사업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수아 필립 샴페인 캐나다 혁신과학산업부 장관은 "심각한 안보 우려가 있다"면서 "우리의 통신 인프라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캐나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앞으로 현지 통신사들은 ZTE와 화웨이의 장비를 새로 구입할 수 없다. 기존 장비도 2027년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받을 수 없다.

캐나다 정부의 이번 방침으로 파이브 아이즈 5개국(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은 모두 화웨이 장비 배제에 동참하게 됐다. 

캐나다 정부가 화웨이 배제 방침을 내린 것은 미국 정부가 주장하는 화웨이 백도어'설'과 관련이 있다.

백도어'설'은 화웨이가 중국 공산당의 지배 아래에 있기 때문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언제든 백도어를 통해 국가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논리며 이를 캐나다가 전격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주장하는 화웨이 백도어'설'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한 때 영국의 보다폰이 화웨이 백도어설을 강하게 주장했으나 현 상황으로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시장에서는 미국의 화웨이 백도어'설'과 더불어 캐나다를 마지막으로 파이브 아이즈가 화웨이 장비를 배제한 것은 미중 패권전쟁의 연장으로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으나 미중 패권전쟁의 신경전은 이미 재개된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미중 패권전쟁의 최전선에서 강력한 압박을 받았던 화웨이 입장에서는 대응할 카드가 필요한 상황이다.

연례 간담회. 사진=최진홍 기자
연례 간담회. 사진=최진홍 기자

4개의 카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델오로에 따르면 화웨이의 지난해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28.7%로 여전히 1위다. 아직은 경쟁자들을 너끈히 제압하고 있으나 방심할 수 없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미국의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사업 다각화 카드로 위기를 넘길 전망이다. 통신 장비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전기차, 기업 대상 엔터프라이즈 사업에 힘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 네트워크의 비전으로 저탄소 그린 성장에도 집중한다. 청사진은 나왔다. 데이터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어디서든 모니터링과 원격제어가 가능한 화웨이 ‘퓨전솔라(FusionSolar)’ 제품군의 스마트 스트링 인버터 SUN2000 시리즈(SUN2000-36KTL-M3, SUN2000-215KTL-H0) 와 옵티마이저(optimizer) 솔루션을 연이어 공개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산업군에 친환경 라인업을 대폭 강화하는 중이다.

켄 후(Ken Hu) 화웨이 순환 회장은 중국 선전에서 제19회 글로벌 애널리스트 서밋을 열어 “화웨이는 혁신에 대한 접근 방식을 강화하고, 모든 산업계의 디지털화를 위해 필요한 도구와 지식을 제공하며, 저탄소 세상 구축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는 곧 화웨이의 미래 성장의 열쇠”라고 말했다.

다양한 협력 로드맵도 대응 카드 중 하나다. 중동을 대표하는 다국적 통신사업자 자인그룹(Zain Group)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한편 화웨이와 아세안재단(Asean Foundation)이 공동 주최한 화웨이 APAC 디지털 혁신 콩그레스(Huawei APAC Digital Innovation Congress)가 지난 19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도 했다. 디지털 전환 '전문가' 화웨이의 비전을 각 지역과 나누면서 일종의 우군 만들기에도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화웨이는 기부에도 열정적이다. 지난 2019년 강원도 산불이나 태풍 사태 당시에도 팔을 걷고 나서 이재민 구호를 위한 성금을 냈으며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19가 막 기승을 부리며 전국적인 마스크 부족 현상이 논란이 되자 한국 화웨이는 2억원의 성금을 기부하는 한편 20만장의 마스크를 기부한 바 있다.

최근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등지에서 대형 화재가 벌어졌을 당시에도 한국화웨이 손루원 CEO는 “예상하지 못한 대형 산불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재민들께서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구호 성금 1억원을 내기도 했다. 애플과 페이스북 등 다른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진심이며, 이러한 행보 하나하나가 한국 시장의 밑바닥 정서를 효과적으로 보다듬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강력한 연구개발이 히든카드가 될 전망이다. 

화웨이는 지난해 매출 6369억위안(약 122조1319억원), 순이익 1137억위안(약 21조8031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매출의 22.4%를 연구개발에만 사용했다. 칼송 사장은 "화웨이는 초창기부터 연구개발에 집중하며 수익의 10% 이상을 연구개발 비용으로 쓰도록 사규로 정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화웨이 총 직원은 19만명인데 그 중 50% 이상이 연구개발 인력이다.

화웨이의 강력한 연구개발은 미국의 제재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다. 칼송 사장은 "내적요인으로는 디지털 전환을 위해, 외적요인으로는 (미국 제재 등)외부의 불가항력적 요인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