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민단비 기자]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법정 공방이 2차전에 돌입했다. 1심에서 패소한 넷플릭스는 상호무정산 원칙인 ‘빌앤킵(Bill and keep)’을 새롭게 앞세웠고, SK브로드밴드는 망 제공은 이용대가가 따르는 ‘유상의 역무’임을 재차 강조했다.

넷플릭스 “빌앤킵은 인터넷 원칙... 자사 기술 OCA로 트래픽 절감 가능”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6일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2심과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 반환 소송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1심에서 망중립성을 주요 쟁점으로 내세웠던 넷플릭스는 법원으로부터 관련이 없다는 판결을 받자 입장을 바꿨다. 2심에선 빌앤킵 원칙을 들고 나와 망 이용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 측 대변인은 “빌앤킵은 통신사업자(ISP)가 자신의 인터넷서비스 이용자로부터 접속료를 받으면 다른 ISP는 전송비용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원칙”이라며 “콘텐츠사업자(CP)와 ISP가 피어링(상호접속)할때도 마찬가지로 각자가 자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인터넷 세계의 본질이 그렇다”고 말했다.

또 SK브로드밴드의 이용약관을 들며 망을 이용한 콘텐츠 전송의 의무는 ISP에게 있다며 망 이용대가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 약관엔 “다운로드 속도가 미달할 경우 이용요금을 감면해준다”고 적혀있다. 넷플릭스 측 대리인은 이를 “콘텐츠를 전송할 의무가 피고에게 있기 때문에 최대 속도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라며 “피고는 이용자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콘텐츠를 전송하는 것이지 넷플릭스에 역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해석했다.

자체 개발한 기술인 OCA로 트래픽을 절감할 수 있다며 망 사용료를 지불할 수 없다는 입장도 강조했다. OCA는 넷플릭스의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로, 콘텐츠 제공자의 중앙서버와 이용자의 물리적 거리가 멀 때 여러 곳으로 분산해 트래픽 효율을 높인다. 넷플릭스는 현재 세계 7,200개가 넘는 ISP들과 OCA가 연결돼있으며, OCA 설치를 통해 그들의 트래픽 부담을 줄여왔다고 주장해왔다.

넷플릭스 측 대리인은 “소비자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SK브로드밴드를 거쳐야 하는 현 상황에서 SK브로드밴드는 이른바 문지기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통행세'를 받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SKB, “망 제공은 영업 내 행위... 빌앤킵은 ISP간 트래픽 양 대등할 경우 이뤄져”

SK브로드밴드는 ‘상인의 보수청구권’를 내세워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를 지급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권리가 명시된 상법 제 61조에 따르면 상인은 그 영업범위 내에서 타인을 위해 행위를 한 때에는 이에 대해 상당한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

SK브로드밴드 측 대리인은 "피고는 상인이고 넷플릭스를 위해 기간통신 역무(인터넷 전용회선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타인을 위한 행위에 해당하며, 기간통신사업자로서 부가통신사업자에게 기간통신 역무를 제공하는 것은 영업 범위 내의 행위에 해당한다"면서 "따라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에 상법 제61조에 따른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가 내세운 빌앤킵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인터넷 기본 원칙이라는 넷플릭스의 주장과 달리 ISP들 사이 여러 정산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SK브로드밴드 측은 “빌앤킵은 ”빌앤킵은 ISP 간 교환되는 트래핑 양이 대등한 경우, 또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효익이 비슷한 경우 상호무정산하자는 의미“라며 ”ISP들 사이에서도 각자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와 교환되는 트래픽의 양에 따라 비용 정산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가 정의한 ISP의 콘텐츠 전송 의무에 대해서도 반론을 펼쳤다. SK브로드밴드도 마찬가지로 넷플릭스의 약관을 들며 콘텐츠 전송 의무는 SK브로드밴드가 아닌 넷플릭스에 있으니 망 이용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K브로드밴드에 따르면 넷플릭스 약관 1조에는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회원에게 영화 및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 측 대리인은 “(콘텐츠를) 넷플릭스가 제공해야 된다는 의무를 약관 첫 부분에서 밝히고 있다”며 “그 부분을 외면한 채 상대방의 약관을 들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OCA 설치 또한 콘텐츠 전송 의무가 넷플릭스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SK브로드밴드 측 대리인은 “원고들이 스스로 비용을 투자해 OCA를 설치와 유지,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데이터 송신의무가 원고들에게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OCA를 설치하게 되더라도 망 이용에 있어 국내 CP와 동일한 지위에 있게 되므로 망 이용대가 지급 의무가 면제될 수 없다고도 했다. SK브로드밴드 측에 따르면 네이버, 카카오, 아프리카TV 등 국내 CP들은 모두 ISP들에게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 CP들인 페이스북, 디즈니플러스, 애플티비플러스 등도 직접적 또는 CDN 네트워크를 통해 간접적으로 국내 ISP들에게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고 있다.

앞서 1심은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인터넷망 연결·유지 등 비용 일부를 부담하는 채무를 진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 채무 범위는 확정하지 않았다.

2차 변론은 오는 5월 18일 열린다. 양측이 상대 주장에 대한 반박 등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