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SK하이닉스
출처= SK하이닉스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현재 전 세계에는 반도체가 부족하다. 기업들이 생산시설을 온종일 멈추지 않고 가동해 반도체를 만들어도 시장의 수요를 충분하게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업계 상위 기업들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에는 반도체 업계에 관심을 보이고 새롭게 진입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행보가 이어져 이목이 집중된다.   

고도의 기술력과 대규모 자본의 집약으로 높은 진입장벽을 자랑하는 반도체 사업에 새롭게 진입하려는 도전자들은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SKT, 한화, 두산 “반도체로 간다” 

SK그룹 계열의 통신기업 SK텔레콤(이하 SKT)은 첨단 기술의 결정체로 불리는 AI(인공지능)반도체의 개발과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AI 반도체는 AI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의 구현에 필요한 초고속 연산을 고효율의 저전력으로 실행할 수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의미한다.  

지난 2020년 SKT는 “자체 경쟁력을 통해 제작한 데이터센터용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출시함으로 미래 첨단 기술 산업의 핵심이 될 AI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그해 11월 25일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인공지능을 만나다> 행사에서 SKT는 AI 반도체 ‘사피온 X220’을 출시했다. 이후 지난 1월 SKT와 SK이노베이션과 함께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제품 전시회 CES 2022에서 국내 최초로 개발된 AI 반도체 사피온을 선보이기도 했다. 

SK하이닉스가 존재함에도 통신사인 SKT가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SKT가 2020년에 선보인 AI반도체 '사피온'. 출처= SK텔레콤
SKT가 2020년에 출시한 AI반도체 '사피온'. 출처= SK텔레콤

오랫동안 통신으로 국한돼있던 사업의 반경을 미래 첨단 산업으로 확장하기 위한 SKT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모바일 기술 박람회 MWC22에서 SKT 유영상 사장은 “이르면 올해 말 혹은 2023년 초에 AI 반도체 차세대 후속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라면서 “매년 44%의 성장으로 2025년에 그 규모가 약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톱티어(Top Tier)’의 사업자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화그룹 역시 최근 행보에서 반도체 사업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화의 에너지 및 소재부문 자회사인 한화임팩트는 지난 2월 사내벤처 형태의 기업 ‘뉴블라’(Neubla)를 설립했다. 뉴블라는 한화임팩트 내에 구성된 신경망처리장치(NPU) 태스크포스(TF) 팀이 주요 인력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NPU는 사람의 뇌 신경망과 유사한 체계로 구동되는 AI 반도체다. 이에 관련업계에서는 “한화가 시스템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화임팩트 측은 “뉴블라를 통해 어떤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가는 검토 중에 있으며, NPU 등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현재 고려하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편, 두산그룹(이하 두산)은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지난 8일 두산의 지주회사인 ㈜두산은 “국내 반도체 테스트 기업 테스나(TESNA)의 인수를 결정하고 테스나의 최대주주인 ‘에이아이트리 유한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테스나의 보통주·우선주·BW(Bond with Warrant, 발행회사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를 포함한 지분 전량(38.7%)을 4,6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출처= 테스나
출처= 테스나

테스나는 반도체의 원자재인 실리콘 소재의 판인 ‘웨이퍼(Wafer)’의 조립 및 테스트와 반도체패키징(Packaging, 반도체와 기기를 연결하기 위해 전기적으로 포장하는 공정)을 주력으로 하는 후공정(OSAT, 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 Test) 전문 기업이다. 

두산에 따르면, 테스나는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투자 확대 및 후공정의 외주 증가 추세로 그 성장성에 대해 호평을 받고 있다. 이는 실적으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테스나는 매출(별도기준) 2,075억원, 영업이익 540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2020년 대비 각각 56.6%, 76.8% 성장한 수치다. 

두산 관계자는 “인공지능, 5G, 전기자동차, 자율주행, AR/VR, 빅데이터 등으로 확장되고 있는 글로벌 첨단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진입을 오랜 시간 고려해왔다”라면서 “적극적 투자를 통해 테스나를 한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후공정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더 많은 도전 사례 나올 것” 

이와 같은 기업들의 반도체 사업 신규 진출 및 영역 확장에는 현재 지속되고 있는 반도체 수요 증가세와 시장 규모의 증가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2021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규모를 2020년의 4,404억달러(약 543조4,536억원) 대비 25.1% 증가한 5,509억달러(약 679조5,350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이는 같은 통계에서 기록된 역대 최대 규모의 수치다. WSTS는 현재 반도체 업계의 성장세를 고려할 때 2022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규모는 6,065억달러(약 748조4,210억원)에 이르러 1년 만에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WSTS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규모 추이. 출처= 대신증권 
WSTS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규모 추이. 출처= 대신증권 

반도체 업계의 전문가들은 반도체의 제조 및 설계 공정 혹은 그와 인접한 사업에 대한 기업들의 신규 진출이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강성철 선임연구위원은 “시장 수요의 증가가 곧 새로운 참여자들의 증가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최근에는 반도체 업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라면서 “아울러 많은 기업들은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들을 첨단 산업의 핵심소재인 반도체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규모의 경제’적 관점에서 이는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강 연구위원은 “특히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장비 산업’과 관련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대기업들의 활발한 진출이 필요하다”라면서 “한화, 두산 등의 진출 이후에도 더 많은 국내 기업들의 반도체 시장 도전 사례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