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정보
- 장르 범죄, 드라마
- 상영시간 115분
- 개봉일 2009.05.28
- 감독 김영남
- 출연 하정우, 츠마부키 사토시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어릴 적 어머니와 헤어져 혈혈단신 성장한 형구(하정우 분)는 한국 부산과 일본을 작은 보트로 오가며 밀수품 심부름을 하는 날건달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보살펴준 일본의 사업가 보경 아저씨(이대연 분)를 위해 한국의 김치를 그에게 배달하며 충성을 다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토오루(츠마부키 사토시 분)는 형구의 이 김칫독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는데, 그 이유인즉슨 김치 밑에 마약이 숨겨져 있었던 것. 설상가상으로 형구는 보경이 납치한 여자를 일본으로 배달하는 명령을 받게 된다.

<보트>는 <용서받지 못한 자>와 〈추격자> 등의 영화로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하정우와 일본의 대표적 꽃미남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를 짝으로 붙인 영화다.

한국과 일본의 두 걸출한 스타의 얼굴을 내세운 포스터와 영화의 줄거리는 흡사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대형 액션 블록버스터의 외양을 닮아 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마약 심부름을 하는 주인공과 속을 절대 알 수 없는 또 다른 남자 주인공, 그리고 폭력조직 사이의 암투로 인해 납치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해, 당장이라도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동’적인 분위기다.

그러나 여자의 몸값을 노린 토오루의 계략으로 형구가 보경의 명령을 어기고 함께 도주하면서 <보트>는 형구와 토오루의 ‘정’적인 버디 무비로 성격을 바꾼다.

엄마의 부재로 항상 괴로워했던 형구와 지긋지긋한 가족 때문에 한 발자국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는 토오루가 서로에게 묘한 동정심을 느끼며 우정을 나누는 것이 <보트>의 후반부다.

문제는 영화의 전반과 후반이 잘 섞이지 않고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액션으로 문을 연 영화는 철저히 드라마로 문을 닫는다.

게다가 처음에 급박하게 제시된 사건들은 극 말미 터무니없이 해결되며 두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은 극 중반 이후 이야기 전개에서 철저히 사라진다.

호쾌한 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충분히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보트>를 만든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왜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보트>를 연출한 김영남은 그에게 ‘리틀 홍상수’라는 닉네임을 안겨준 <내 청춘에게 고함>으로 장편 데뷔한 감독이며, 영화의 각본은 국내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Josee, the Tiger and the Fish)>의 와타나베 아야의 솜씨다.

공교롭게도 두 명 모두 극적인 사건과 극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벌이는 일상의 영화에서 장기를 발휘했던 사람들이다. <보트>에서 중요한 것은 마약과 돈, 폭력조직 등 극적인 설정이 아니다.

높은 현실의 벽에 막혀 그로기 상태에 빠진 두 주인공이 서로와의 교감을 통해 비로소 한 단계 성장해 가는 중반 이후의 전개가 바로 감독과 각본가의 관심사다.

결국 <보트>는 두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극적인 소재의 영화였던 것은 아닐까? 영화의 구조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의 연기에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보트>에서 하정우의 ‘루저’ 연기는 이제 일정 수준에 올랐다.

어깨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고 특별한 기교도 없는 연기지만 형구의 일거수일투족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절로 연민을 느끼게 할 자연스러움 그 자체로, 〈비스티 보이즈>와 <멋진 하루>를 거쳐 하정우는 마침내 생활인 연기의 달인이 된 것처럼 보인다. 하정우의 카운터파트인 츠마부키 사토시의 연기 호흡도 좋다.

한국 관객들에게 제대로 의사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결점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그는 극 중 절반 이상의 대사를 한국어로 소화해내는 열성을 발휘했다.

태상준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