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본점. 출처=신한은행
신한은행 본점. 출처=신한은행

[이코노믹리뷰=박창민 기자] 담보 대신 기술력을 평가해 대출하는 은행권의 기술신용대출이 1년새 50조원 가까이 늘었다. 은행권은 부동산 담보로 쏠린 기업대출 정책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기술신용대출을 강화하고 있다. 가계대출 규제로 대출 확대가 어려운 은행들이 기업금융에서 활로 찾으려는 움직임도 기술신용대출 공급 확대로 이어졌다.

취급 규모는 '신한', 증가 속도는 '농협'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17개 특수·시중·지방은행이 중소기업에 빌려준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316조3,615억원이다. 이는 전년 말 대비 18.6%(49조5,114억원) 늘어난 규모다.

기술신용대출은 담보나 신용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이들이 보유한 기술력을 담보로 보증·대출·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일반 기업신용대출 보다 금리가 낮고 대출 한도는 많아 기업에게 실질적 금융 지원을 제공한다.

지난해 말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공급 규모는 187조3,972억원으로 전년 동기(153조2,288억원) 대비 22.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은행의 공급 규모 중 5대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57%에서 59%로 2%포인트 늘었다. 주요 은행 중심으로 기술신용대출 확대가 이뤄진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은행별 공급 규모에선 순위 변동이 있었다. 2020년 말 두 번째로 공급 규모가 컸던 신한은행은 당초 1위였던 국민은행보다 기술신용대출 규모를 더 큰 폭으로 늘리며 최다 공급 은행에 올랐다. 신한은행의 지난해 말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46조2,430억원으로, 전년 동기(37조2,006억원)보다 26.2% 늘었다. 이어 국민은행(44조4,234억원), 우리은행(42조2,585억원), 하나은행(37조1,480억원), 농협은행(17조3,243억원) 순이었다.

같은 기간 연간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은행은 농협은행이다. 농협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년새 37.7%(12조5,807억원→17조3,243억원) 증가했다. 신한은행(26.2%), 우리은행(25.2%), 하나은행(17.8%), 국민은행(14.7%)이 뒤를 이었다.

자료=은행연합회 자료 참고
자료=은행연합회 자료 참고

“전문인력·기술력 늘었다…코로나로 지원 규모 확대”

2014년 기술신용대출 제도 도입 초기에는 기업의 기술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 보니 정부의 독려에도 은행들은 기술신용대출을 쉽사리 늘리기 못해 왔다. 그간 전문인력을 늘리고 기술평가 역량과 노하우를 쌓은 은행들이 공급을 크게 늘리는 추세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2020년부터 IP·자체개발기계 등의 담보력을 평가할 수 있는 전담인력을 대폭 늘려오고 있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기술금융 담당 조직을 팀에서 단으로 격상했다. 기술금융팀은 지난 2014년 출범해 지난해까지 여신기획부 소속이었다. 농협은행 변리사, 공학박사 등 기술 평가 관련 인력을 기존 10명에서 20명으로 2배 확대하고, 각 직원의 성과를 측정하는 핵심성과지표(KPI)에서 기술신용평가 관련 가중치를 높였다.

우리은행도 지난해 기술신용평가서(TCB)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며 신청기업에 대한 기술금융 지원 속도를 높였다. 이에 우리은행은 지난해 연간 순증 목표였던 잔액 6조원을 초과 달성했다.

5대 은행 중 한 은행의 관계자는 “기술신용평가사에 평가를 의뢰하지 않고도 내부에서 진행한 기술력 평가로 공급할 수 있는 규모도 커지면서 은행들의 전반적인 공급량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반기별로 금융당국으로부터 기술 신용평가 역량을 심사받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최고 수준은 레벨 4를 받은 곳에 5대 은행 모두 포함돼 있다. 레벨이 오를수록 은행 자체평가에 기반한 기술신용대출 가능 금액이 늘어난다. 레벨1은 예비실시단계, 레벨2는 직전 반기 기술금융대출의 20% 이내, 레벨3은 50% 이내, 레벨4는 금액 제한이 사라진다.

앞선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를 감안해 신용평가 심사 과정에서 지원 규모를 늘린 점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격한 증가세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