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돈을 어떻게 쓸까. 얼마 전 중견그룹 회장의 아들인 Y교수와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그의 말이 시사적이었다.

“운전기사가 있는데도 아버님이 가끔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실 때가 있어요. 그리고선 너무나 흐뭇해하시는 거예요.

(경로석 전철승차권 덕분에) 공짜로 전철 타고 와 차비를 절약했다면서요. 그런 분이 도자기를 사실 때는 몇 억씩도 아낌없이 주시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죠, 하하.”

흔히들 부자들은 “그까이꺼” 하며 돈을 물 쓰듯 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L은행 지점장 역시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 그룹의 회장님과 커피를 마실 때 일이었습니다. 1만원이 넘는 커피값에 바들바들 떠시더군요.

떠는 것을 넘어 아가씨(웨이트리스)에게 왜 이렇게 비싸냐며 깎아달라고 흥정(?)까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목돈은 쾌척할지라도 푼돈은 아끼는 게 바로 부자의 돈 쓰는 생리이기도 합니다.”

P출판사 대표의 습관은 며칠에 한 번씩 돈을 판판하게 펴는 것이라고 한다. 물건을 사거나 택시를 타고 거슬러 받은 지폐를 판판하게 펴고 지갑에 넣을 때도 각을 맞춰 예쁘게 넣는 것.

다리가 불편한 개도 자신을 아껴주던 주인의 기억을 찾아가는 것이 이치이듯, 돈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겐 돈도 멀리 도망간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습관이라고 한다.

자고로 돈은 다루는 것이나, 쓰는 것이나 “그까이꺼” 하는 순간, 돈도 그 사람을 “그까이꺼” 하며 멀어진다는 점을 시사하는 이야기다.

몇 년 전, 일본의 저명한 머니 컨설턴트 혼다 켄이 강의하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혼다 켄이 참석자에게 ‘돈의 정의’에 대해 쓰라고 했다.

마침 필자 옆에 한 중소기업 창업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가 내린 돈에 대한 정의는 매우 명료하고 간단했다.

“돈은 피다!”
그 이유가 궁금해 살짝 커닝했다는 것도 잊고선, 체면 불구하고 이유를 물어보았다.
“돈이 피라는 것은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인체에 피가 없으면 못 살듯이 사람이 생활하는 데도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들잖아요.”
여기까지는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이어지는 답변이 걸작이었다.

“이처럼 소중하다는 것 외에 유통시켜야 한다는 의미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피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순환하지 않고 딱딱하게 굳으면 죽지 않습니까.

그래서 돈을 피처럼 유통시키고 나눠야 하는 것이지요.”
부자들은 돈을 피같이 아깝게 쓰지만, 가두기보다는 피처럼 유통시키고자 한다.

1만원에는 바들바들 떨면서 수억 원은 쾌척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돈의 액수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다.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 이들은 액수를 따지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이들이 웬만한 돈을 흘리고 다닐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부자가 제일 경계하는 것은 ‘돈을 뺏긴다’는 박탈감이다. 이들은 몇 억원을 베풀망정 몇 푼조차 뺏기기는 싫어한다.

공짜는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게 부자들의 돈거래 법칙이다. 왜?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것을 몰랐다면 결코 부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자들은 돈을 칼처럼 엄정하게 쓰고, 피처럼 소중하게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