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의 신재생에너지 인증 활용 구조도. 출처= Shell
RE100의 신재생에너지 인증 활용 구조도. 출처= Shell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기업들이 추구하는 ESG 실현의 ‘친환경(E) 경영’과 관련된 주요 이슈들이 최근에는 정치의 영역과도 연결되고 있다. 지난주에 열린 대선 TV토론회에서 주요 정당의 후보들이 그와 관련된 키워드들을 언급하면서 많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이 키워드들은 기업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RE100과 그린 택소노미

최근 가장 뜨거운 논의가 되고 있는 친환경 키워드는 ‘RE100’과 ‘그린 택소노미’다. 지난 2월 3일 개최된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후보들의 발언을 통해 알려진 이후 공론화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의 줄임말로 기업들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태양열, 수력, 풍력, 바이오를 활용한 발전(發電)에서 발생하는 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일종의 다자간 협의다. 

영국의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이 지난 2014년 발족한 협의로, 글로벌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발전과 ESG 실현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그 가치가 주목을 받게 됐다. ‘100%’라는 수치의 표기로 인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이나 목표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RE100에는 어떤 강제성이나 구속력은 없다. 특정 국가의 정부나 국제기구가 설정한 기준의 달성이나 미달을 평가하는 아닌, 각 기업들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캠페인이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용 인증 샘플. 출처= 온라인 갈무리
신재생에너지 사용 인증 샘플. 출처= 온라인 갈무리

RE100에 대한 동참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생산의 주체가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직접 운영하거나, 외부의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에서만 전력을 구입해 공급받거나 혹은 재생에너지 생산기업들이 발행하는 전력 거래 인증(Certificate 혹은 Credit)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린 택소노미는 친환경을 의미하는 ‘Green’과 분류학을 의미하는 ‘Taxonomy’가 합쳐진 합성어다. 이는 어떤 범주까지를 친환경 산업으로 볼 수 있는가를 분류하는 일종의 기준으로, 여기에서 정해진 범주에 입각해 글로벌 투자 주체들은 특정 기업 혹은 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검토한다. 최근 EU는 천연가스 개발과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까지 그린 택소노미의 범주에 포함하는 안을 확정했다.

RE100, 비용의 문제와 논쟁의 여지  

현재 RE100에는 애플·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과 SK하이닉스·SK텔레콤·한화큐셀·LG화학 등 국내 기업을 포함해 전 세계 284개 기업이 동참하고 있다.

RE100의 동참에 있어 기업들에게 쟁점이 되는 이슈는 바로 ‘비용’이다. 현실적으로 기존의 화석연료를 사용해 생산된 전력 대비 재생에너지 전력은 아직까지 생산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거래 가격이 비싸다. 그렇기에 RE100의 조건을 맞추는 것은 곧, 기업의 입장에서 생산시설 운영의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다. 제조업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국내 주요 기업들의 RE100 동참이 쉽지 않은 여유도 여기에 있다. 

제조업에 투입되는 막대한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확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를 기업들의 자본만으로 감당한다면 수출 시장에서 국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기업계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RE100 참여 확대를 추진한다면, 각 기업들의 역량만으로는 무리가 있기에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뒷받침 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논란의 여지도 남아있다. 바로 ‘그린 프리미엄’이다. 그린 프리미엄은 기존의 화석연료 발전으로 생산된 에너지를 사용한 기업들이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고 RE100인증을 받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글로벌 기업들은 “기존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도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친환경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며, 결론적으로 에너지 생산 업체들만 배불리는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적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탈원전 기조와 대치되는 ‘그린 택소노미’ 

전 세계의 ‘탄소중립’ 실현 의제를 가장 앞장서서 주도하고 있는 주체는 EU(유럽연합)이다. 기존의 그린 택소노미에는 천연가스 개발과 원자력 발전을 범주에 포함하지 않았다. 각자가 내포하고 있는 안전사고의 위험성 측면을 고려한 관점이었다. 그런데, 최근 EU는 그린 택소노미의 범주에 천연가스 개발과 원자력 발전을 포함시켰다. 

이는 현 정부의 집권 기간 동안 일관적으로 추진돼 온 탈(脫)원전의 기조와 대조되는 관점이기에, 국내에서는 관련된 문제가 에너지 발전 기업들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민감하게 다뤄야 할 사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7일 ‘에너지전환 정책이 초래한 한전의 위기와 전기요금 인상 압박’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현 정부가 추진한 원전 가동 중단, 수극적 원전 가동 등의 탈원전 기조로 지난 5년 동안 한국전력의 부채는 약 10조원이 늘었으며, 이로 인해 전기요금은 최대 44%까지 인상될 것”이라는 내용의 연구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 정당 진영에서는 “탈원전·감원전 등의 정책은 장기적 관점에서 지향해야 할 방안이며 친환경의 관점에서 절대 퇴행적인 정책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보수 정당의 진영에서는 “현 정부에서 추진된 탈원전의 백지화를 통해, 효율적인 에너지 운영의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경제계는 원전 활용의 확대에 무게를 싣고 있다. 7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EU의 녹색분류체계 규정(Taxonomy Regulation) 최종안 발표에 대한 공식 입장으로 “이는 2021년 재생에너지(풍력)와 천연가스 공급 불안정으로 에너지 대란을 겪은 EU가 경제적이고 안정적이며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의 중요성을 체감한 결과”라면서 “미국, 중국에 이어 EU도 원전을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으로 삼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탈원전 기조를 강조함으로 글로벌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향후 정부는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을 재검토하여 원자력 발전을 녹색기술에 포함시킬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