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잘나갈 때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다음과 같은 경향을 보인다. 첫째, 더욱 매출 신장을 위한 공장 등 생산 규모를 증설한다. 둘째, 다른 신규 사업에 진출한다. 셋째, 종업원에 성과급을 주는 등 임금을 올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대단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기업 경영이란 것은 잘 나갈 때를 지난 다음에는 반드시 처지는 국면이 뒤따라 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설비를 증설하거나 신규 사업에 진출한다든지 직원들의 임금을 지나치게 올려주는 행위는 불황이 찾아올 때 과도한 고정비요,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설사 불황이 오지 않더라도 예견치 못한 돌발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경영자는 호황으로 여유자금이 생겼을 때 먼저 ‘굴’을 파놓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예금, 주식채권, 부동산, 외환, 국제 원자재 투자 등 기업 사정이 갑자기 어려워졌을 때 위기를 회피하는 최후의 수단을 확보해 두면 기업이 어려워질 때 생각지도 않은 의외의 보험금이 될 수 있다.

일례로 필자가 상담한 B기업의 경우 정상영업의 영업이익보다 이런 재테크에 의한 영업외 수익이 더 많다. 미리 사놓은 외환으로 외환위기와 최근의 경기침체 시에 환율폭등으로 큰 이익을 남겨 회사를 지탱해 나갔다.

파놓은 굴에서 큰 이익을 남긴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경우고, 본업보다 부업이 더 좋은 경우다. 이게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이젠 기업도 재테크의 바람을 피해갈 수가 없다.

교토삼굴(狡兎三窟)에 얽힌 고사

전국시대 제나라 재상 맹상군은 식객 중 풍훤에게 설(薛) 땅에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빌려준 돈을 거두어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곳에 간 풍훤은 맹상군의 지시와는 거꾸로 빚진 사람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해서 모든 차용증서를 불태워버리곤 “맹상군은 나에게 모든 채무를 면제해 주라고 분부했소”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설의 백성들은 환호하며 좋아했다.
그러나 풍훤의 이야기를 들은 맹상군은 자기의 심부름을 멋대로 한 데 대해 화를 냈다. 어이가 없어하는 맹상군에게 풍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리, 그렇다고 제가 공짜로 손해만 보고 온 것은 아닙니다.”
맹상군은 풍훤에게 그 대가로 무엇을 가져왔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풍훤은 “빚을 면제해 주는 대신 저는 나리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을 그 백성들로부터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은의입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맹상군은 풍훤의 말을 매우 마뜩잖아했다.

1년 뒤 맹상군이 새로 즉위한 제나라의 왕 민왕의 미움을 받아 재상 자리에서 밀려나게 됐다. 몸을 의탁할 곳이 없게 된 맹상군에게 풍훤은 잠시 설 땅에 가서 살라고 말했다.

맹상군이 설 땅에 당도하자 그곳 백성들은 떼를 지어 환호하며 따뜻이 맞이했다. 설 땅 백성들의 환대에 감격한 맹상군은 풍훤에게 “선생이 전에 은의를 샀다고 한 뜻을 이제야 알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풍훤은 “슬기로운 토끼는 재앙을 피할 굴을 세 개 파놓고 있습니다. 경은 이제 하나를 만들어둔 셈이니 앞으로 두 개를 더 만들어야 합니다”고 답했다.

김우일 우송대 경영학과 교수·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wikimokg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