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희 기자] 최근 주식시장을 흔드는 가장 큰 이슈는 인플레이션이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심해지자 각국 중앙은행은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등을 통해 물가잡기에 나섰고, 이러한 통화정책 정상화는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를 크게 위축시키며 증시 하락의 단초가 되고 있다.

물가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실제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이 공개되자 뉴욕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이날에만 3.34% 떨어진 바 있다. FOMC 정례회의 의사록을 통해 금리 인상 이후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대차대조표 축소가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대차대조표 축소는 양적긴축(QT)를 말하는 것으로, 금리 인상보다 더 직접적으로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정책이다.

원자재 가격 인상, 공급망 대란으로 인한 물가 상승은 현재 모든 중앙은행들의 골치거리가 됐고, 물가를 잡기 위한 통화정책 정상화가 예상보다 급진적으로 이뤄지면서 시장 참가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시장 참가자들은 물가지표가 높을 것은 당연하지만, 예상치를 벗어나는지 여부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예상치에 부합한 정도의 결과만 나오더라도 시장이 안도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12월 물가지수가 예상 범위 내에서 상승했다는 소식에 뉴욕증시는 안도 랠리를 시현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7%로 블룸버그 집계 예상치(7.1%)보다는 소폭 낮게, 인베스팅 어플 집계 예상치(7.0%)에 부합하는 수준이었다.

시장에서는 12월 CPI가 올들어 가격 조정을 크게 받았던 주식시장에 심폐소생술을 했다고도 평가했다.

미국 증시가 한국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내 시장도 미국의 경제지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특히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통화정책 향방에 증시가 출렁이는 현 시점에서는 12월 미국 물가지수 결과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전년 대비 7% 상승은 1982년 6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지만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수준이며, 전월 대비로도 0.5% 상승해 지난달(0.8%)보다 상승폭이 줄었다는 점에 시장 관계자들은 주목했다. 상승폭이 2개월 연속 둔화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가격변동성이 큰 에너지 및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PCE)도 5.5%로, 블룸버그 집계 예상치(5.4%)와 인베스팅어플 집계 예상치(5.4%)보다 소폭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높은 인플레이션 현상이 한동안 이어지겠지만 인플레이션이 추가 급등세를 이어갈 여지는 크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됐고, 해당 지표 발표 후 나스닥 지수는 '피크 아웃' 기대에 상승하기도 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CPI 앞자리가 7%대로 바뀐 것은 1982년 이후 처음이기에 숫자 자체에 압도당할 법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 입장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얼마나 높거나 낮게 나왔는지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미시간대학교 12개월, 5년 기대인플레이션 모두 전월 대비 소폭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긍정적이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대인플레이션이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고치를 경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인플레이션이 조금씩 안정되고 있는 배경에는 물가가 고점에 근접한 조짐들이 점차 나타나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물가지표가 중요한 이유

미국은 '소비자물가(CPI)'와 '개인소비지출(PCE)' 등 두 가지 물가지표를 사용한다. CPI는 미국 노동통계국에서 매월 미국 내 75개 도시지역에서 8만여 품목의 가격 데이터를 수집해 작성된다. PCE는 매월 미 경제분석국에서 미국의 실제 개인소비지출을 바탕으로 산출한다. 포괄범위의 경우 CPI는 소비자가 직접 구매한 상품과 서비스만을 대상으로 하며, PCE는 정부가 가계를 대신해 구매한 상품 및 서비스 등도 포함된다.

CPI는 품목별 가중치가 일정기간 동안 고정되는 반면 PCE는 소비지출 변동을 반영해 가중치가 분기마다 수정되기 때문에 PCE가 CPI보다 가격변화에 따른 대체 효과와 산업 및 소비구조 변화를 잘 반영하며, CPI는 PCE에 비해 물가상승률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 이에 연준도 PCE 물가가 경제 전반의 물가 수준을 보다 잘 나타낸다고 판단해 통화정책의 참고자료로 활용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소비자물가를 헤드라인 물가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물가지수에는 헤드라인 물가 외에도 근원(핵심)물가도 있다. 이는 물가지수 품목 중 변동성이 높은 에너지, 식품 등의 항목을 제외하고 물가지수를 산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헤드라인 물가지수보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더 잘 나타내며, 연준이 헤드라인 PCE 물가보다 근원 PCE 물가에 더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자물가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가가 급격히 상승할 경우 가계는 구매력이 약화되며 기업은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 미래 인플레이션은 금리 상승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도 고려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대부분 중앙은행들의 최우선 정책목표가 물가안정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기본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에 각국 중앙은행이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 원인이다. 미국의 통화량과 재정적자 규모가 급증했고,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으로 가계들이 막대한 초과저축을 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신 접종 확대로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는 움직임을 나타냈지만, 원자재 수급이 이러한 회복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화물 운임 급등에 따른 공급망 차질 문제까지 생겼다.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모두 나타난 것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지난 1970년대 두 번의 인플레이션에 앞서 통화공급과 재정적자가 크게 확대됐고 이후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통화공급을 축소하고 정책금리를 매우 높게 인상한 바 있다"며 "최근 다소 스탠스의 변화를 보이긴 했으나 연준은 현재의 물가상승이 일시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만약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지 않으며 연준이 정책 실수를 범하는 중이라면 어느 순간 연준은 굉장히 빠르게 정책금리를 인상해야 할 수도 있고, 이때 금융시장은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