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소비자 소비 트렌드

불황의 그림자가 우리 일상을 짙게 드리운 가운데 알뜰하고 합리적인 소비성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는 일반 제품 대비 20~30% 정도 저렴한 PB(Private Brand)·PL(Private Label) 상품이 잘 팔려나가고 홈쇼핑과 오픈마켓 등 다른 유통업계에서도 가격대비 품질이 좋은 이른바 '알뜰·실속·저렴한 PB·PL·중고 상품'이 강세다.

온통 ‘불황’이라는 말이 판을 친다. 시장에 가면 불황이라 장사가 안 되고 식당에 가도 불황이라서 손님이 없다고 한다. 거리엔 불황이라 빈 택시가 돌아다니고 불황이라 사람들은 살기가 팍팍하다며 더 싼 것을 먹고 더 싼 것을 찾아 헤맨다. 불황은 우리의 소비패턴과 일상을 변화시키며 산업지형도 바꿔놓고 있다.

평균소비성향 감소하고 엥겔지수는 상승

소비의 측면에서 우리가 불황이라고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은 가계수지와 엥겔지수 통계에서 잘 나타난다. 지난달 16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2년 3/4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한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 중에서 얼마만큼을 소비지출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인 평균소비성향이 올해에도 계속 감소하면서 2분기 연속 최저치로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평균소비성향은 소비지출액을 가처분소득으로 나눠 백분율로 계산한다. 가처분소득은 개인이 직접 처분할 수 있는 소득으로 전체소득에서 세금 등 비소비지출을 뺀 것을 말한다. 결국 평균소비성향의 수치가 높으면 소비지출이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만큼 사람들이 지갑을 많이 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올해 우리나라 가구 평균소비성향은 73.6%로 전년동기(77.9%) 대비 3.9%p가 감소했다. 좀처럼 지갑이 열리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국의 2인 이상 가구당 월평균 명목소득은 414만 2000원으로 작년 3분기보다 6.3% 늘었다. 반면 명목 소비지출은 246만7000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1%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지난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증가율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소득은 고용개선 등의 이유로 증가했지만, 소비지출은 심리 위축과 함께 저조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불황의 불길한 징후는 엥겔지수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달 2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엥겔지수는 13.6%로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지난 2000년 하반기 엥겔지수 1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엥겔지수는 가계가 지출한 총액에서 식료품비로 지출한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로 이 수치가 높은 경우는 생활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엥겔지수가 낮다면 생활이 풍족하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이처럼 불황이 단순히 엄살이 아닌 현실적인 수치로 다가오자 실제 소비시장에서는 더욱 지출이 줄어들고 절약이 미덕으로 떠오르면서 소비가 이뤄지더라도 가격이 품질대비 저렴한 ‘불황형 상품’들이 잘 팔리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경제가 어렵더라도 생활 속에서 필수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식품과 생활용품 분야에서 그 같은 특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유통업체로는 대형마트와 편의점, 오픈마켓과 홈쇼핑 등에서 저렴한 상품들의 인기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대형마트 1만개 이상 다양한 PB제품 선보여

대형마트에서는 중간마진과 브랜드 로열티가 제거돼 기존 제품보다 20~30% 저렴한 PB(Private Brand)·PL(Private Label) 제품들의 매출 또는 제품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이마트는 지난 2007년 10월 신선 및 가공식품과 일상, 주방용품 등을 중심으로 5개 브랜드 3000여개 PL상품을 선보인 이후 현재까지 약 19개 브랜드 1만8000여개의 품목을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는 웰빙 식품 PL인 ‘스마트 이팅’ 애완용품 PL인 ‘m&m dogs’와 ‘이마트 키즈’ 가정간편식 ‘HMR’ 등을 차례로 선보이면서 지속적으로 PL라인을 확대해왔다.

2009년 대대적인 리뉴얼을 통해 ‘베스트(best)’ ‘이마트(E-Mart)’ ‘세이브(save)’로 재편했으며 이 중에서 세이브는 대용량 상품이나 패키지 간소화를 통한 가격 메리트를 높인 저가의 실속형 PL로 알려졌다. 잘 팔리는 PL상품으론 이맛쌀 20kg, 이마트 1등급 우유, 이마트 엠보싱 화장지, 러빙홈 알뜰 종이컵, 이마트 봉평샘물 2L 등의 제품이 있다.

이마트 PL제품 비중은 2006년 7%, 2007년 9%로 한자리 수준이었으나 2008년부터 19%, 2009년 23%, 2010년 24%, 2011년 25%로 증가했으며 오는 2014년까지 35~40%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홈플러스도 취급하는 PB상품 아이템만 해도 1만3000여개에 달한다. 최근 매출신장율은 매년 약 20%대를 기록하고 있다. 매출비중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5년 15.4%였던 것이 역시 평균 20%씩 증가하면서 지난해는 26.5% 정도 비중을 차지했다.

홈플러스의 PB는 Good, Better, Best 세 가지 라인으로 브랜드를 차별화했다. 이중에서 Good라인은 ‘알뜰상품’들로 구성돼 있다.

이중에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홈플러스 좋은상품’들로 대표상품은 샘물, 소문난라면, 콜라·사이다, 테스코 파이니스트 와인(Tesco Finest Wine), 우유 등이다.

특히 홈플러스 좋은상품 샘물은 2L기준 540원으로 타사 제품보다 약 절반 가격에 판매되면서 2005년 출시이후 연평균 120%의 매출신장률을 보이는 인기제품이다. 라면의 경우 판매종류만 80여가지에 달해 매출비중이 눈에 띠게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2002년 출시 당시 1%에 못 미쳤던 것이 현재는 5%로 늘어났다. 일화에서 제조하는 홈플러스좋은상품 콜라·사이다는 기존 타사제품보다 약 55% 가격이 저렴해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사이다는 매출비중이 30%, 콜라는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브랜드 선호도가 뚜렷한 청량음료 시장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테스코 파이니스트 와인은 최고 절반까지 저렴한 가격과 50여가지의 다양한 와인을 선보이면서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홈플러스 좋은상품 우유(1L)는 연세우유와 함께 만들고 있으며 연간 100억원의 매출, 연판매량 600만개의 밀리언셀러 상품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4월 8년간 사용해오던 대표 PB 브랜드 와이즐렉(WISELECT)을 ‘초이스엘(CHOICE L)’로 전면 교체하면서 실속형 PB 상품을 대폭 강화했다.

롯데마트의 PB제품들도 매출 신장률에 있어 지난해보다 약 13.5%나 신장하며 2%대의 마트 매출 전체 신장률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상품군내에서 1등상품으로 꼽히는 것들 중에 PB상품이 지난해 약 5개였던 것이 올해는 10개로 두배 가량 늘었다.

프리미엄급 상품(프라임엘), 일반상품(초이스엘), 실속형상품(세이브엘)으로 구분한 브랜드별 매출 구성비를 살펴보면 프리미엄급 상품의 매출비중은 11%p 줄어든 반면, 초이스엘이나 세이브엘의 매출 비중은 각각 6.5%p. 4.7%p가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상품군이 더 인기를 끌고 있다는 증거다. 이 같은 현상은 식품의 경우 소비자들이 가격 외에도 품질 등을 따져보고 구매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화장지나 주방용품 등 비식품의 경우는 일회성 소비가 높은 상품류가 많아 가격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마트는 또한 지난해부터 ‘통큰’ ‘손큰’ 등의 PB상품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에게 가격인하 효과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상품은 평균적으로 36% 가량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말 30여개 상품이 현재 60여개로 종류가 늘어났다. 인기 제품으로는 통큰카레·짜장, 통큰 주방용품 등이 있다. 통큰카레·짜장은 기존 제품보다 용량은 1.5배 늘렸고 가격은 40% 정도 저렴하게 팔면서 현재 일평균 3000여개 가량이 판매되고 있다. 통큰 주방용품은 지퍼백, 위생백, 랩, 위생장갑 등 주방용품 4종을 시중가보다 20~30%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편의점 불황기 소비자 알뜰 구매성향 그대로 반영

불황기 PB상품의 매출은 편의점에서도 강세를 띤다. CU(씨유)가 최근 3년간 PB상품 매출을 분석한 결과 2010년 대비 2011년 매출이 67%가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대비 무려 87%나 상승하며 불황속 소비자들의 알뜰 구매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게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 상반기 CU는 약 170가지의 새로운 PB상품을 선보였다. 상품수가 늘자 매출도 늘어 1분기 대비 3분기 PB상품 매출이 65%나 상승하기도 했다.

잘 팔리는 상품은 무엇보다 도시락이다. ‘더블 BIC요일정식 도시락’은 저렴한 가격으로 든든한 한끼 식사를 해결하려는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으로 11월말 현재 도시락 판매량이 전년대비 32.7%나 증가했다. 우유도 인기다. 최근 이 업체는 1000ml PB우유를 출시했다. 2009년 커피우유를 PB로 첫 출시한 후 현재 4가지 종류의 우유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최근 알뜰 소비가 대세를 이루자 이에 맞춰 나온 제품이다.

정승욱 CU 음용식품팀 MD는 “최근 악화된 경기상황으로 소비자들이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상황”이라며 “PB가공유의 성공은 기존 제품 대비 가격과 품질면에서 차별화된 제품이라고 인식된 것이 가장 큰 성장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1000콘바닐라’ 아이스크림, ‘1000칩 오리지널/어니언’ 감자스낵 등도 인기가 높다.

세븐일레븐 역시 PB상품의 매출이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은 올해 처음으로 전체 매출의 30% 이상이 PB상품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의 대표 PB상품은 ‘와라아이스바’로 전년 대비 27.2% 매출이 증가하며 메로나에 이은 아이스크림 부문 2위를 차지했다. 500원짜리 PB생수 ‘깊은산속옹달샘(500ml)’도 전년대비 43.0% 매출이 증가했고 대용량PB흰우유(930ml)는 74.2%나 매출이 증가했다. 500원짜리 과자류 7종도 전년대비 39.1% 매출이 늘었다.

GS25도 PB상품 개발을 꾸준히 해온 결과 매년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면서 최대 35%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함박웃음은 GS리테일의 전통적인 PB상품으로 지속적인 리뉴얼을 통한 브랜드 개선을 추구했다. 함박웃음 맑은샘물 2L은 대표적인 상품이다.

위대한 피자로 시작된 위대한 시리즈는 가격대비 맛과 품질 만족도가 높은 먹거리 상품을 컨셉으로 고객인지도와 고객유입 효과를 보이고 있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엄마의 밥상 콘셉트의 김혜자 도시락은 전년보다 36.6%의 매출 신장을 보이고 있으며 공화춘 자장을 시작으로 삼선짬뽕, 봉지면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제품들이다.

공승준 GS25 MD개발팀 차장은 “PB상품을 통해 고객은 고품질 상품을 합리적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좋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손을 잡고 만들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홈쇼핑·온라인 업계는 ‘실속’이 대세

한편 홈쇼핑과 오픈마켓 업계에서는 올해 ‘실속’ 제품들이 톡톡한 매출 효과를 올렸다. GS샵은 올해 가격은 10만원대이지만 높은 품질과 디자인을 앞세운 글로벌 패션브랜드인 ‘모르간’의 잡화를 50만개 가까이 판매했다. 또한 ‘시슬리 핸드백’과 여성속옷 ‘원더브라’ 역시 품질 대비 합리적 가격으로 20대부터 40대까지 폭넓은 여성 고객들의 선택을 받아 각각 32만개, 27만 세트가 판매되면서 소비자들이 불황기 ‘실속’을 챙겼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광연 GS샵 미디어홍보부문장 상무는 “장기 불황에 지친 고객들이 실속 있는 소비가 가능한 홈쇼핑으로 많이 몰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롯데홈쇼핑은 올 한해 히트상품을 집계한 결과 ‘퍼실’ 세택 세제가 1위를 차지했고 ‘아이오페’ ‘이자녹스’ ‘마스꼴로지 립스틱’ 등 화장품이 인기를 끈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는 경기 불황이 장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질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하려는 고객들에게 홈쇼핑의 ‘실속형 착한 구성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 퍼실 세제외에도 ‘바디피트’ ‘려’ 등 실속 구성의 생활용품들이 10위권안에 들며 불황, 고물가 등으로 인한 알뜰 쇼핑 트렌드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들 상품들은 오랫동안 보관이 용이하고 무료체험 실시 및 시즌별 사은품 등 프로모션 등의 영향으로 알뜰족들의 지갑을 열게했다는 것이다.

온라인 쇼핑과 오픈 마켓 등에서도 불황형 소비트렌드가 그대로 반영됐다. 구매가격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필요한 물건을 빌려쓰는 ‘렌트테크’가 전방위로 나타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 썼던 물건을 구매하는 중고품 시장도 영역이 확대되면 인기를 끌었다.

G마켓은 최근 한달(11/7~12/6)간 중고용품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46%나 급증했다. 판매비중이 높은 제품군은 중고폰으로 지난해보다 207%나 판매가 급증했고 디카와 MP3의 판매도 286% 증가했다. 옥션 역시 중고제품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했다. 중고가전 위주로 거래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의류, 잡화까지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높은 할인율을 적용시키는 반값제품도 인기다. G마켓은 올초부터 ‘굿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생필품 등 다양한 품목의 제품을 선보여왔다. 유통마진을 줄인 신제품, 기존 상품에 파격적인 할인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42인치 LED ‘Good TV’와 3인용 가죽 쇼파인 ‘Good 쇼파’가 인기를 끌었다. 옥션의 경우 에이뷰TV를 비롯한 중소기업 TV들이 디지털TV교체와 맞물려 판매됐다.

2012 소비트렌드 ‘칩시크’란

올해는 불황으로 인해 알뜰 소비가 대세를 이루긴 했지만 종전보다 새로운 부가가치가 덧붙거나 고가품 대체상품 수요가 높은 한해였다. 옥션이 올 한해 쇼핑화두가 히트상품을 분석한 결과 저렴하지만 소비할만한 가치가 있는 ‘칩시크(Cheap chic)’상품이 온라인몰의 소비트렌드를 이끌었다. 칩시크는 싸고(cheap), 힐링(Healing)이 되며 불황에도 끄떡없는 유아용품(Enfant)이거나 이상기후로 인해 갑작스럽게 수요가 높아진 기후상품(Abnomal climate), 또는 경제적인 복고상품(Past), 1인가구 증가에 따른 간편식 및 멀티상품(Individual) 등이 해당된다.

특히 불황으로 인한 상품으로 저렴하지만 최근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소비가 트렌드를 주도했다. 올 한해 90만매가 팔려나가며 1위를 차지한 ‘한줌견과’는 이상 기후로 과일작황이 좋지않아 대체 추석선물로 각광을 받았으며 kg단위의 기존 포장에서 벗어나 1회용 개별 포장을 통해 견과류 선물로 격상시킨 대표적인 칩시크 상품이었다. 그 외에 리필타입상품, 미투화장품도 불황형 상품으로 떠올랐다.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구스다운 점퍼의 기능을 대체하면서 가격은 50~70% 가량 저렴한 웰론패딩도 불황기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인기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