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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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박창민 기자] 올해 3분기 주요 시중은행들의 현금 유동성커버리지 비율(LCR)이 4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종전보다 대출 여력이 줄어들고, 일시적으로 뭉칫 돈이 빠져나갈 경우 유연하게 대처할 준비가 다소 미진한 상태라는 의미다.

4대 시중은행 평균 LCR 89.6%

출처=각사 공시, 금융감독원 자료 참고
출처=각사 공시, 금융감독원 자료 참고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 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올해 3분기 말 유동성 커버리지비율(LCR)은 평균 89.6%다. 지난 2017년 7월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에 따라 영업적예금 분류 요건이 강화된 이후 최저치다. 올 3분기 말 기준 4대 시중은행 가운데 LCR이 가장 높은 곳은 국민은행(90.69%)다. 이어 하나은행(90.64%), 신한은행(88.76%), 우리은행(88.33%) 순으로 낮다.

단기 유동성 지표인 LCR(통합 LCR)은 앞으로 30일간 예상되는 순현금 유출액 대비 고(高)유동성 자산(현금화가 쉬운 자산) 비율이다. LCR이 100%면 뱅크런과 같은 대규모 자금인출 사태 등 심각한 스테레스 상황에서도 한달 간 정책 지원 없이 견딜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단기 유동성이 단기 유동성 위기에 취약해졌다고 본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5년 1월 LCR 규제 하한선을 80%로 도입한 이후 2019년까지 매년 5%포인트(p)씩 높여왔다.

2017년 7월 금융당국은 예금 해약이 최소 한달 이상 이전에 통지가 가능한 예금만 영업적예금으로 인정하도록 해 영업적예금 요건을 강화했다. 당시 영업적예금 허들이 높아지며 은행들의 LCR이 낮아질 것이라 봤지만, 관련 세칙 개정 직후인 2017년 3분기 말 4대 시중은행의 평균 LCR은 98.8%를 기록한 이후 우상향하며 지난해 1분기까지 105%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다 코로나19 펜데믹이 확산하면서 은행권의 LCR은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분기 말 105.8%였던 LCR은 연말까지 100.3%, 93.3%, 90.9%로 하락했다. 올 1분기에는 91.3%, 2분기 90.3%를 기록하다 3분기 89.6%로 내려앉았다.

은행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중·소상공인의 대출만기 및 이자상환 유예 등 금융지원에 나서며 순현금 유출액이 대폭 늘어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분기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의 순현금유출액 규모는 255조4,468억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말(216조9,033억원) 대비 17.8%(38조5,344억원)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은행들이 LCR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고유동성자산은 작년 말 231조356억원에서 지난 2분기 말 234조9,720억원으로 1.7%(3조9,364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순현금유출 규모가 고유동성자산보다 10배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다만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적극적인 금융지원을 독려하고자 두 차례 기한 연장을 거쳐 내년 3월 말까지 LCR 규제 수위를 85%로 낮춘 상황이다.

"기준금리 인상, LCR 제고에 도움"…"채권시장 영향 제한적" 관측도

사실상 내년 3월에는 규제 완화가 정상화 수순을 밟을 예정인 만큼, 은행들도 LCR를 내년 3월에 맞춰 단계적으로 높여간다는 전략이다. 그간 은행들은 LCR 비율이 규제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 같으면 정기예금 특판 등으로 정기성예금 조달 비중을 늘리거나 은행채를 발행 해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코로나19 이전 원래 규제 수준인 100%보다 5%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화 조치에 따른 하한선인) 85%보다 5% 높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라면서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예금금리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수신 확보를 통한 방법도 LCR를 높이는 데 이전보다 더욱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은행채 발행에 적극 나설 가능성도 높다. 은행채 발행은 LCR 제고 효과를 즉각적으로 볼 수 있고, 상승 폭을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은행들은 마련한 은행채로 국공채나 우량 회사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고유동성자산 규모를 늘려 LCR를 높인다. 다만 은행채 발행은 은행의 조달비용을 높이며 이는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등에도 반영돼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채권시장에서는 향후 은행들의 LCR 제고를 위한 은행채 발행이 시장에 제한적인 영향만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증권 김은기 연구위원은 “LCR 규제 완화 조치가 지속되면서 은행채 순발행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4분기 가계대출 규제 강화가 예상되면서 은행들의 자금조달 부담이 크게 완화된 상황”이라면서 “내년 3월 은행채 발행은 (내년) 2분기에 집중될 가능성이 있지만, 대출 규제로 은행의 자금 소요가 크지 않은 점과 단계별 규제 정상화를 감안할 때 은행채 발행 규모가 채권 시장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