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보배 기자] 정유사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복합정제마진(complex margin)이 세달 만에 다시 이익 구간을 벗어났다. ‘위드 코로나’ 체제에서 수요 회복과 함께 강세가 지속될 것이란 시장 전망을 벗어난 결과로, 정유사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분간 고점” 시장 예상 뒤엎고 한 달 만에 반토막

26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전일보다 배럴당 0.9달러 오른 3.8달러를 기록했다. 정제마진은 전날 2.9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손실 구간에 머물러 있다.

출처=정유업계
출처=정유업계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수송·운송비 등을 뺀 것으로, 정유사의 수익성을 결정짓는 핵심지표 중 하나다. 정제마진은 통상 배럴당 4달러가 돼야 정유사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손익분기점(BEP)으로 본다.

정제마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작년 3월 셋째 주 –1.9달러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바 있다. 이후에도 정제마진이 약세를 지속하면서 정유 4사는 지난해 합산 영업손실액이 5조1,804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실현하기도 했다.

올 들어서도 정제마진은 6월 평균 배럴당 1.4달러에 그치며 부진했다. 하반기 들어서야 7월 2.6달러, 8월 3.2달러로 서서히 올라 9월에는 첫째 주와 둘째 주 2주 연속 5.2달러를 기록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2년 만에 되찾은 확실한 수익 구간이다.

정제마진의 9월 평균 5.3달러, 10월 7.5달러, 11월 6달러로 강세를 이어가며 정유업의 부활을 알렸다. 특히 10월 셋째 주에는 7.9달러, 넷째 주에는 8달러를 기록하며 4년 내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에 힘입어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등 정유 4사는 3분기 누적 합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4.4% 증가한 89조7,483억원을 달성했고 영업이익은 5조6,384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연간 합산 영업이익은 2017년 이후 4년 만에 7조원대 달성을 예고하고 있다.

정제마진은 이를 최고점으로 다시 하락 전환, 현재 4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단 4주 만에 반토막난 것으로, 업계의 예상을 빗겨간 결과다. 전문가들은 10월 말 당시 글로벌 수요 회복세에 힘입어 정제마진이 7~8달러 수준을 상당기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 바 있다.

◆국제유가 하락 리스크 불구, 업계 “수요 회복세 기대”

정유업계는 현재까지는 정제마진이 일시적인 조정국면에 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정제마진은 국제유가 하락세,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확대 등 리스크로 약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여전히 공급이 부족한 상황으로 다시 반등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국제유가는 최근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11월 26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일 대비 5%대 급락해 75달러 아래서 거래되고 있다. 국제유가가 75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9월 이후 석 달 만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델타 변이보다 강력한 ‘누 변이’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국제유가는 주요국 증시와 함께 급락세를 보였다. 앞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소비국이 전략비축유 방출로 유가 안정을 꾀한 데에 코로나19의 새 변이 소식이 더해지며 낙폭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11월 둘째 주 중국이 석유제품 수출 쿼터량을 확대한 것도 정제마진 하락에 영향을 줬다. 중국은 신규로 가동되는 정유사의 석유제품 판매를 위해 연말까지 연료유 100만톤을 추가로 수출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정유업계는 국제유가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유사가 원유를 들여와 정제 과정을 거쳐 제품으로 판매하기까지는 통상 2~3개월이 걸린다. 이 사이 유가와 함께 제품가격이 오르면 마진(차익)이 커지지만, 반대로 유가가 하락하면 재고평가손실로 수익성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무조건 연동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유가격 약세가 장기화할 시 정제마진 회복도 더딜 수 있다”며 “그러나 글로벌 실물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여전하고 등유와 경유 중심 재고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돼 정제마진이 상승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