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극한 경제 시나리오> 리처드 데이비스 지음, 고기탁 옮김, 부키 펴냄.

저자는 향후 10년간 가장 중요한 추세로 고령화, 디지털화, 불평등화 등 3가지를 꼽는다.

이 추세는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해 10년 쯤 지나면 ‘극한 경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에 저자는 극한 경제 시나리오를 그려 보면서 거기에 맞설 선명한 생존 지도를 제시한다. 생존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저자는 4대륙 9개국 16만 km를 가로지르는 극한 경제 여행을 떠난다.

저자가 선정한 극한 여행지는 최선의 성공을 거둔 3곳(아체, 자타리, 루이지애나), 최악의 실패를 겪은 3곳(다리엔, 킨샤사, 글래스고), 최첨단의 미래를 달리는 3곳(아키타, 탈린, 산티아고)이다.

◇3가지 극한 경제 시나리오 : 초고령화, 초디지털화, 초불평등화

일본 아키타, 에스토니아 탈린, 칠레 산티아고는 인구, 과학기술, 부의 문제에서 조만간 전 세계가 맞닥뜨릴 극한의 미래를 보여준다.

일본 아키타는 평균 연령 53세에 65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 중 3분의 1이 넘는 초고령화 사회다. 고령화는 극심한 정부 재정 압박, 세대 간 불평등으로 인한 노소 갈등 심화, 막대한 돌봄과 간병 비용과 인력 등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에스토니아는 소련 치하의 가난한 나라에서 ‘발트해의 호랑이’로 급성장하며 새로운 디지털 국가로 거듭났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세금, 투표, 행정 법률 문서 등 대부분의 공공 업무가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된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전자 거주증을 발급해 138개국 3만 5000명의 전자 주민을 보유하고 있다.

수도 탈린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정부(전자 정부)와 완전한 디지털 시민권(전자 신분증)을 구축한 도시이자, 창업률 세계 최고인 스타트업 천국이다.

그러나 탈린이 선도하는 초디지털화에는 우려와 두려움이 공존한다. 자동화(인공 지능 로봇과 기계)로 인한 대량 실업의 가능성, 디지털 격차(정보 격차)라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 개인 정보 보호, 빅 브라더 감시 사회 등이 그것이다.

급속한 성장과 빈곤 퇴치를 이룩한 칠레는 1인당 국민 소득이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남미  최초로 OECD에 가입했다.

그러나 칠레에서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 중 50% 이상을 가져간다. 칠레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불평등하다. 하지만 “불평등의 급격한 증가를 동반한 빠른 성장”이라는 이 모델이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발전 경로가 되고 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가 선도하는 ‘초불평등화’는 전 세계 모든 국가와 도시에 사회적 분열과 갈등, 분쟁을 더욱 증폭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생존하는가

인도네시아 아체, 요르단 자타리 난민수용소,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교도소는 자연재해, 전쟁, 감금이란 비극을 딛고 일어서 극한의 생존을 이루어냈다.

2004년 12월 26일 사상 최악의 지진해일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서부 아체 지역을 덮쳤다. 진도 9.1의 초거대 지진이 일으킨 27m 높이 파도에 14개국 약 23만 명이 사망하고 주택 500만 채가 파괴되었다.

아체의 주도 반다아체는 주민의 55%인 17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주변 마을인 람푹과 록응아에서는 90%가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처럼 끔찍한 재앙을 겪고도 아체 사람들은 금방 삶을 재건하고 심지어 더욱 번창하기까지 했다.

아체 사례는 진정한 회복탄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한다. 아체 사람들도 물리적 자산을 잃었다. 하지만 기술과 지식은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고 덕분에 지진해일 이후 빠르게 재건에 성공했다.

요르단의 자타리(Zaatari)난민수용소는 시리아내전을 피해 도망친 시리아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2012년 건설되었다. 난민수용소인만큼 경제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으며 제품이나 서비스도 현금이 아닌 전자 카드로 정해진 품목만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타리는 3000개에 가까운 상점 수, 프랑스보다 높은 65%의 고용률, 1400만 달러의 월 매출, 그리고 미국의 연간 창업률 20~25%를 크게 웃도는 42%의 창업률을 달성했다.

난민수용소가 생긴 지 불과 2년 만인 2014년에는 이런 가게들이 1400개가 넘었다. 성인 6명 중 1명꼴로 사업체를 운영한 까닭에 자타리에서는 영국보다 흔하게 가게를 만날 수 있었다.

매점은 계속해서 놀라운 속도로 늘어났다. 오늘날에는 3000개에 육박한다.

자타리는 하나의 경제 주체로서 잘해 나가고 있다. 혼란했던 초기에도 프랑스보다 높은 65%의 고용률을 달성했다. 2015년 초 매달 1000만 디나르(1400만 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외부인들이 도움을 준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난민수용소 내 사업가들을 수시로 방해했다. 한밤중에 등에 업은 아이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것도 없이 난민수용소에 온 사람들이 스스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루이지애나주는 미국에서 최고의 빈곤율과 비만율과 살인율, 최고의 수감율을 기록 중이다. 루이지애나주립교도소는 미국 최대 규모, 평균 92년이라는 최장 형기를 자랑한다.

교도소에서는 당연히 경제 활동이 극도로 통제되며 현금(통화)은 사용 불가다. 그래서 담배를 대신 화폐로 사용해 왔는데 금연 정책으로 이마저 금지 물품이 되었다.

그러자 재소자들은 이에 대응해 ‘도트’라는 14자리 숫자로 된 경이로운 새 화폐를 발명해 냈다. 좋은 화폐의 모든 요건을 갖춘 동시에 주고받은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아 추적이 아예 불가능한 최첨단 화폐였다.

◇최고의 조건에서도 실패 

반면에 중앙아메리카 다리엔, 콩고 킨샤사, 영국 글래스고는 천혜의 자연과 전략적 요지, 풍요로운 천연자원, 최고의 혁신과 발전에도 극한의 실패를 겪었다.

파나마와 콜롬비아에 걸쳐 있는 중앙아메리카의 다리엔은 금부터 값비싼 목재까지 엄청난 가치를 지닌 천연자원이 원시 열대우림을 가득 채우고 있다. 또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가교로서 탁월한 전략적 위치를 지녔다.

하지만 오늘날 다리엔은 전혀 발전하지 못한 채 잊힌 지역이 되어 버렸다. 기껏해야 원주민 부족, 마약 밀수꾼, 자유의 투사, 도망자가 우글거리는 위험천만한 무법 지대라는 악명만 얻고 있을 뿐이다.

콩고의 수도 킨샤사는 사탕수수와 팜유와 담배와 고무나무, 석탄과 구리와 황금과 다이아몬드와 주석,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열대우림과 두 번째로 수량 많은 강 등 막대한 자원과 강점을 지녔다.

하지만 이런 잠재력에도 킨샤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다. 1인당 국민 소득은 1997년 360달러 밑으로 떨어졌으며 콩고인 중 77%가 국제 빈곤선인 하루 1.90달러보다 적은 돈으로 살아간다.

영국의 글래스고는 19세기부터 조선업으로 대표되는 제조업뿐 아니라 미술, 과학, 공학, 문학, 문화에 이르기까지 혁신의 원조로서 ‘현대의 로마’라 불릴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한 세기 만에 산업이 파탄 나고 실업률이 치솟고 남성 평균 수명이 54세까지 떨어지며 유럽 최고 도시에서 최악의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