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도다솔 기자] 대한항공(003490)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한지 300일이 지났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로 나타할 수 있는 독과점을 막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지만 이는 과도한 시장 규제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1일 항공업계와 공정위에 따르면 최근 공정위는 두 항공사의 신속한 결합 심사 진행과 시정방안 마련을 위해 국토부와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심사에서 운수권과 슬롯 재배분 등을 조건으로 하는 조건부승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말 조성욱 공정위 위원장은 이번 M&A에 경쟁 제한성이 있다며 시정 조치를 예고했다. 사실상 조건부 승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운수권이란 타국과 협의를 통해 항공기 운항 횟수를 정하고 그 안에서 운항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며 슬롯은 항공사가 공항에서 특정 시간대에 운항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을 말한다.

국제항공운수권과 슬롯 배분은 현재 국토부가 한국공항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에 위임해 국적 항공사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운수권과 슬롯은 어디까지나 항공 감독 주무부처인 국토부의 의중에 달린 일인 만큼 항공사들은 노선을 기업 자산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공정위의 판단에 대해 항공업계 안팎으로 우려가 크다. 통합항공사가 가진 운수권이나 슬롯을 제한하는 것은 기업의 영업권 침해이자 과도한 시장규제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운송업에서 운수권이나 슬롯은 일종의 기업의 영업권이자 무형의 자산”이라며 “운수권은 주어지더라도 수요와 이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유지가 힘들다. 항공사가 오랜 기간 공들여 수요를 만들어내고 이익을 내왔는데 이것을 규제한다는 것은 과도한 시장 규제 내지는 재산권 침해로 보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승인 조건으로 특정 노선의 운항 편수를 감축 내지 철수하라는 조건을 달 경우 결과적으로는 중간에서 외국 항공사만 이득을 볼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그 노선을 노려왔거나 운항 편수 확대를 꿈꿔온 경쟁 항공사 쪽에서는 손 안대고 코 풀기 격이 되는 셈이다.

두 항공사의 최대 매출원은 국제 중장거리 노선인데 현재 인천발 미주·유럽·싱가포르 등 중장거리 국제노선을 다니는 국적기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유일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한 저비용항공사(LCC) 대부분이 국제 단거리 노선과 국내선에 치우쳐있기 때문에 애 먼 알짜 노선만 외항사에 빼앗길 우려가 있다.

2017년 한진해운 파산 당시 현대상선(現 HMM)이 한진해운의 네트워크를 이어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재 한진해운 물동량 대부분이 외국 선사로 넘어가 우리 해운산업 매출은 10조원 이상 줄었다. 한국의 선복량 점유율은 한진해운 파산을 계기로 하락해 아직 2016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으며 주요 노선 운임마저 급등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공정위의 경쟁제한성 우려는 단순 항공사의 점유율만을 따져 제한하기보다는 항공업 특수성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해외의 경우 1국 1항공사 체제를 갖추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은 규모가 커 각각 델타·아메리칸· 유나이티드항공과 남방·동방·국제항공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도 ANA·JAL 두 항공사 체제이며 그 외 영국(브리티시에어), 독일(루프트한자), 프랑스(에어프랑스), 호주(콴타스), 캐나다(에어캐나다) 등은 1국 1사 체제다. 한국은 규모면에서 1사가 적합했지만 1988년부터 예외적으로 양사체제로 자리 잡은 케이스다.

허희영 교수는 “우리 시각에서는 통합 항공사가 굉장히 커 보이지만 인천공항에서 나가는 순간 두 항공사 합쳐서 슬롯이 40%밖에 안 된다. 전체 100대가 드나든다면 두 항공사를 합쳐도 40% 점유율밖에 안다는 얘기”라며 “외국의 주요공항들을 보면 50~60%로 많은 데는 70%를 넘어선다. 이것을 가지고 독과점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대한항공은 규모면에서 델타의 5분의 1 수준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면 아직 멀었다. 지금 델타나 유나이티드하고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이 없다. 규모를 키워야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통합항공사는 300대 이상의 비행기를 보유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비행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좌석 값이 내려갈 수 있다. 요즘 소비자들은 클릭 몇 번하면 가장 저렴한 티켓을 찾아낼 수 있지 않느냐. 일부에서 말하는 독과점이나 소비자 편익 감소 주장은 산업에 대한 이해도 낮은 사람들의 얘기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인천공항에서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슬롯 점유율은 40% 수준으로 글로벌 항공사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 애틀란타공항에서 델타항공의 슬롯 점유율은 79%, 댈러스공항에서 아메리칸항공은 88% 점유율을 보였으며 두바이공항에서 에미레이트항공은 68%의 슬롯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성명을 통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 검토를 전면 철회해야 한다”며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운수권을 타 항공사, 특히 외항사에 배분한다는 것은 항공 주권을 외국에 넘기는 것이고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올해 1월 공정위와 미국, 유럽연합(EU) 등 필수 신고 국가 9개국의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했으며 터키와 대만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했다. 현재 남은 곳은 공정위,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베트남 등 6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