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슈퍼앱 전쟁> 고영경 지음, 페이지2북스 펴냄.

이 책은 아세안에 초점을 맞춘다. 아세안(ASEAN)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말한다. 1967년 창설되어 현재 회원국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10개국이다. 인구수 6억 7000만 명의 거대 소비시장이다.

아세안은 디지털과는 거리가 먼 곳처럼 보인다.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 비율은 91.9%(2020년 기준)이고, 선진국 평균이 78%다. 아세안은 26%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고, 인구 중 젊은 층 비중이 타 지역보다 높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이미 디지털 경제의 새 판이 짜여지고 있다. 작은 스타트업들이 모바일 기반의 혁신을 통해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데카콘(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하며 시장의 지형을 바꾸는 중이다.

◇인터넷 낙후 지역서 ‘슈퍼앱5’ 탄생…동남아 디지털 경제 견인중

이런 배경 속에서 모바일 기반의 테크 기업들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하나 둘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 가운데 SEA, 그랩(Grab), VNG, 고젝(Gojek) ,라인(Line) 등 5곳은 동남아 디지털 경제를 견인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모은다.

이들은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다. 한국의 카카오와 네이버 처럼 하나의 아이디로 여러 서비스와 기능을 제공한다. 온 종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머스트 해브 앱(Must Have App)'이다. 이를 슈퍼앱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슈퍼앱5’에 대한 이해없이는 동남아 시장의 중요성과 미래를 읽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책에는 아세안 디지털 경제를 견인하는 ‘슈퍼앱5’의 면모가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SEA, 아세안 최대 기업 등극…쿠팡 시총의 4배

SEA 창업자 샤오동 리(Xiaodong Li, 李小冬) 출처: 포레스트 리 CEO 페이스북
SEA 창업자 샤오동 리(Xiaodong Li, 李小冬) 출처: 포레스트 리 CEO 페이스북

SEA는 한국인에겐 낯설다. SEA는 바다와는 무관하다. South East Asia(동남아시아)의 머리글자다.

동남아를 무대로 활동한다는 기업의 정체성을 부각하려고 원래 회사명 ‘가레나’를 ‘SEA’로 개명했다. 간혹 Sea Limited로 표기하기도 한다. 우리 말로는 ‘씨’ 또는 ‘씨 리미티드’라고 읽는다.

창업자는 샤오동 리(Xiaodong Li, 李小冬)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감명받아 본명을 놔두고 ‘포레스트 리(Forrest Li)’라는 이름을 쓴다.

중국 톈진 출신으로 상하이 자오퉁대학을 나온 뒤 미국 스탠퍼드대 MBA 과정을 이수했다.

2005년 6월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갈망하고, 항상 자만하지 말라)”라는 유명한 축사를 했다.

포레스트 리는 캠퍼스 커플이던 아내의 졸업식장에 갔다가 그 연설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포레스트 리는 그 자리에서 창업을 결심하고는 졸업 후 싱가포르로 이주하여 싱글플레이어 게임 제품을 개발하는 ‘GG게임’을 설립했다.

엔젤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만든 첫 회사는 금방 문을 닫았다. 재도전한 것이 2009년에 출범한 ‘가레나’였다.

가레나는 첫 실패를 교훈으로 삼았다. 자체 게임을 제작하는 제작사가 아닌 퍼블리셔로 시작했다. 가레나는 미국 게임개발사 라이엇 게임즈와 동남아 배급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리그 오브 레전드’를 출시했다.

LOL은 대박을 터뜨렸다. 덕분에 출범 2년 만에 가레나는 흑자를 냈고, 라이엇 게임즈의 주주 텐센트의 눈에 띄어 투자를 받고 동남아 시장 파트너가 됐다.

가레나의 경쟁력은 ‘가레나 플러스’라는 독자적인 플랫폼에 있었다. 여기를 통하면 아세안 6개국과 대만시장에 동시다발적으로 게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용자들도 어디서나 접속해 게임과 메신저를 즐기고 게임 아이템을 살 수 있었다. 가레나는 2017년 자체 게임 ‘프리 파이어’를 개발해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쇼피, 모바일 최적화로 ‘선두’ 라자다 제쳐

가레나는 2015년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쇼피(Shopee)를 오픈했다. 당시 아세안 이커머스 1위 업체는 2012년 설립된 ‘라자다’였다. 라자다의 최대주주는 독일 로켓인터넷이었는데, 2016년 중국 알리바바로 바뀌었다.

한국과 달리 아세안은 ‘PC시대’를 건너뛰어 곧바로 ‘모바일시대’로 점프했다. 모바일로의 립프로깅(leap-frogging, 단번의 도약)이 일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아세안 이용자들은 PC 기반 화면보다는 모바일앱 기반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더 수월하다고 느낀다.

쇼피는 뒤늦게 시장에 진출했지만 기존 업체들이 놓치고 있던 바로 이 지점을 공략했다.

쇼피는 로딩 속도, 화면 크기, 한 눈에 보여주는 상품의 개수, 결제 등을 철저하게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췄다. 그 결과, 현재 쇼피 전체 주문 건의 95%가 모바일 앱에서 이뤄진다.

SEA는 딜리버리 마켓에도 뛰어들었다. 2020년 12월에는 싱가포르 금융당국으로부터 디지털 뱅킹라이선스를 받았다.

쇼피 플랫폼 고객에게 디지털 신용카드 발급하는 것부터 판매자와 중소기업 상대 대출까지 모든 뱅킹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인도네시아에선 현지 은행을 직접 인수하기도 했다.

수익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확대경영으로 마케팅과 프로모션 비용이 계속 증가하면서 손실액도 커지고 있다.

순손실은 2019년 8억 9000만 달러에서 2020년 연말 기준 13억 달러로 늘어났다.

지난 10월13일(현지시간) 현재 뉴욕증시에 상장된 씨 리미티드(Sea Limited)의 주가는 349달러였다. 시가 총액은 1927.02억 달러에 달했다. 한화로는 229조 원에 육박한다.

이는 쿠팡의 4배가 넘는 규모다. 같은 날, 쿠팡 주가는 26.44달러, 시가총액 458.80억 달러였다.

◇ 그랩, ‘골리앗’ 우버 꺾다…‘현지화’ 전략 주효

그랩을 공동설립한 안소니 탄 CEO(우측)와 후이링 탄 COO.  출처:안소니 탄 트위터
그랩을 공동설립한 안소니 탄 CEO(우측)와 후이링 탄 COO. 출처:안소니 탄 트위터

2012년 6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다니던 안소니 탄(Anthony Tan)과 후이링 탄(Hooi Ling Tan)이 택시 호출〮예약서비스 ‘마이택시’를 공동 설립했다.

당초 두 사람은 고향 말레이시아의 열악한 택시 서비스를 혁신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이택시가 급속하게 성장세를 타자 그랩은 전광석화처럼 해외진출을 감행했다. 대상은 아세안 국가들이었다. 그랩은 대중교통 문제는 동남아의 공통적 ‘페인 포인트(Pain Point)’라고 판단했다.

그랩은 2013년 8월 필리핀으로, 그해 10월 싱가포르와 태국으로 나아갔다. 2014년 베트남 호치민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2017년 캄보디아와 미얀마까지 진격하여 아세안 8개국 ‘호출형 승차공유(ride sharing)’ 시장의 70%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해외시장 진출을 통한 스케일업 전략이 완벽하게 통한 것이다.

그랩은 2014년 유니콘 대열에 올랐고, 2018년에는 동남아 최초로 데카콘 자리를 차지했다. 그랩의 기업가치는 400억 달러로 추산되며, 2021년 말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그랩의 경영은 기본적으로 공세적이다. 단순한 택시앱이던 그랩은 2014년 우버와 비슷한 ‘그랩카’를 론칭했다.

이어 공유자전거 서비스 ‘그랩바이크’, 기업을 상대로 한 카풀 ‘그랩셰어’, 밴과 미니버스를 예약할 수 있는 ‘그랩코치’를 내놓았다.

2016년에는 페이먼트를 플랫폼에 포함시킨 ‘그랩페이’를 선보였다. 핀테크 기업으로의 확장이었다. 이후 ‘그랩푸드’, ‘그랩마트’, ‘그랩익스프레스’ 등 딜리버리 서비스를 플랫폼에 올렸다.

◇그랩 안소니 탄 CEO, “겸손해야 성공합니다”

안소니 탄은 “겸손하기(Being Humble)”를 강조한다. 항상 현장의 소리, 이용자의 목소리를 경청하자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지역에 진출할 때마다 ‘현지화 그 이상’을 추구한다. 하이퍼 로컬리제이션(hyper-localization) 전략이다.

그 결과물이 현금 결제, 현지어 번역서비스, 전화 상담, 운전자 직접 대면 등록 등 다양한 서비스다. 예를 들면, 그랩은 전화번호 노출을 불안해 하는 여성 고객이나 여성 운전자를 배려하여 그랩 앱 안에 자체 메신저와 통화 기능을 넣었다.

반면 2013년 동남아에 진출한 시장 지배자 우버는 글로벌 시각에서만 동남아를 바라봤다. 현지 이용자들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서비스 접근성이 낮았다.

우버는 후발주자 그랩의 거친 도전에 시달린 끝에 2018년 3월 동남아 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당시 세계 언론은 골리앗이 다윗 앞에 무릎 꿇었다고 비유했다.

◇베트남 최초의 유니콘 VNG…국민 메신저 ‘잘로’ 보유

VNG 창업자이자 CEO 리홍민 출처:VNG 홈페이지
VNG 창업자이자 CEO 리홍민 출처:VNG 홈페이지

동남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는 왓츠앱이다. 태국에서는 라인이 1등이다.

베트남에서는 잘로(Zalo)가 압도적 1위다. 점유율이 80%나 된다. 유저가 1억 명이다.

잘로를 만든 곳은 인터넷 기업 VNG다. VNG는 콘텐츠, 페이먼트, 커머스를 아우르는 플랫폼을 만들어 베트남의 디지털 지형을 바꾸고 있다.

현재 기업가치는 29억 달러를 넘어섰다. 조만간 기업공개가 이뤄질 전망이다.

창업자는 1978년 생 리홍민이다. 15세때 닌텐도를 처음 만나 게임에 깊게 빠져들었다.

2002년 게이머로서 월드사이버 게임대회에 출전했던 그는 한국 게임산업의 발전상을 보고는 귀국하자마자 인터넷 카페 ‘게임존’을 열었다. 더 빠른 인터넷이 필요했던 이용자들은 랜선이 깔린 게임존에 몰려들었다.

리홍민은 2004년 ‘비나게임’이라는 게임 퍼블리싱 업체를 세운 다음 게임업체 라이선스를 받기 위해 한국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는 지체없이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스워드맨 온라인’으로 유명한 중국 킹소프트사 CEO 레이쥔(샤오미 창업자)을 직접 찾아가 라이선스를 따냈다.

2005년 첫 게임이 출시됐다. 베트남판 스워드맨 온라인은 베트남 게임사에 길이 남을 빅히트를 기록했다. 게임 론칭 직후 비나게임은 순식간에 100만 유저를 모았고, 창사 1년 만에 흑자를 냈다.

이후 최초의 베트남 브랜드 MMO 게임을 포함하여 다수의 게임을 론칭했다. 온라인 포털과 소셜 네트워크도 만들었다. 2009년에는 사명을 VNG로 바꿨다. 게임 위주 기업이 아님을 드러내려고 했다.

VNG의 포트폴리오는 게임 플랫폼 ‘징 플레이’, 음악 서비스 ‘징 엠피쓰리’, ‘징뉴스’, 채팅을 할 수 있는 ‘징챗’, 온라인 소셜 웹 게임 플랫폼 ‘징미’ 등이 있다.

VNG는 2014년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베트남 최초의 유니콘 기업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