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글로벌 뉴스를 보면, 요즘같이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러울 때가 또 있을까 싶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의 트렌드를 휩쓸면서 외국인들이 '달고나' 만들기에 열중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나 '딱지치기'를 하는 등 한국인들이 보기에도 "이게 실화인가"라고 생각될 정도의 장면들을 거의 매일같이 볼 수 있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오징어 게임 체험관에 입장하기 위해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갔다고 하니.  

이로 인해 한국 콘텐츠 산업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넷플릭스의 CEO는 공식석상에서 한국 콘텐츠 업계를 최고의 파트너로 인정했다. 콘텐츠 왕국 월트 디즈니는 자사 OTT의 한국 서비스 시작에 앞서 한국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가하면 일본 콘텐츠 업계의 자존심과 같은 기업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한국의 CJ ENM과 콘텐츠 공동 제작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글로벌 플랫폼과의 제휴, 그들을 통한 한국 콘텐츠의 확산과 전파는 어떤 면으로 생각해도 긍정적이다. 

차오르는 ‘자부심’을 한껏 즐겨도 좋은 시기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되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국내 콘텐츠 업계의 제작 환경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자본 투자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제작사들이 우수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안정적 수익구조를 지원하는 것이나 적절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에 국내 업계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큰 문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콘텐츠 제작사와 유통 플랫폼 간 프로그램 사용료 계약 관련 분쟁이다. 콘텐츠 제작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제작사들은 다음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가 직면한 문제점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방송사 등 대형 스폰서와 모든 의사결정의 정점인 제작위원회 그리고 2차 콘텐츠 제작사들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일본 애니메이션의 수익구조는 제작 현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살아남지 못하게 했다.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혼신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수많은 실력 있는 애니메이터들은 박봉과 생활고에 시달려 업계를 떠났다.

이러한 악순환의 반복으로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어떤 작품을 봐도 비슷비슷한 내용인 ‘장르의 획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돈이 될 만한 자극적 소재의 작품들이 양산됐기 때문이다. 이에,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제작사들이 자국 기업 대신 일정수준 이상의 수익에 창작의 자유까지 보장하는 넷플릭스 등 해외 플랫폼 기업에 줄을 서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해외 자본의 투자로 국내 콘텐츠가 제작되는 것이 당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필요 이상으로 커진 제작의 기반은 장기적으로 국내 업계에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의 콘텐츠 업계에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제작자들에게 불리한 산업의 구조도 개선돼야 한다. <오징어 게임>에 환호하는 전 세계 미디어들을 보면서 차오르는 감격을 즐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콘텐츠 업계의 생존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잠시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