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수익형 부동산을 찾는 강남부자들이 늘고 있다. 그 중 가장 선호한다는 강남주변 빌딩들.(위)

머지않은 인플레에 대비해 원유동 실물에 투자하는 강남부자들이 늘고 있다.(아래)

현금 자산만 200억원 보유하고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박정태(가명·63) 씨. 투자에는 잔뼈가 굵었던 박 씨지만 지난 2006년부터 가입했던 펀드로 날려버린 손실을 만회하기란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투자처를 찾으며 기회를 노리던 박 씨가 ‘때가 왔다’라고 판단한 건 바로 지난 2월10일. 이날 배럴당 40달러를 웃돌던 국제유가가 30달러대로 곤두박칠치는 것을 확인한 박 씨는 그 길로 대치동 A은행 담당 PB를 찾았다.

그는 “배럴당 35달러에 투자할 상품이 있느냐”라며 “이 가격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 (상품이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고 다그쳤다.

당장 입맛에 맞는 상품이 없었지만 이 은행에서 지난 3월말 내놓은 서부텍사스중질유(WTI)가격 연동 국제 유가상품에 10억원을 일단 묻어놨다.

그의 예상은 바로 적중했다. 단 2개월동안 수익률이 50%에 달하고 있는 것. 본래 장기투자를 고려했지만 곧 환매할 심산이다. 변동성이 큰 상품인만큼 크게 욕심내지 말라는 전담 PB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단다.

박 씨가 실물투자에 나선 것은 결국 ‘인플레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섰기 때문. 지난 2월 한은이 2%까지 기준금리를 낮춘 이상 인플레이션이 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예산 조기집행을 통한 재정 확대정책을 펼치고 있는 데다 내달부터 선보일 5만원권 지폐도 인플레 가속화에 일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개포주공 30채 살 돈 10년 뒤 9채밖에 못 사
그래서 그가 또 준비하는 것이 바로 부동산투자. 인플레 시대에 땅이나 아파트 등 부동산만큼 확실한 투자처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 지금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는 박 씨의 논리는 이렇다. 외환위기 당시 개포동 주공아파트 한 채 가격은 3억원 정도. 당시 100억원 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그는 30채 정도 구입해서 부동산 임대업을 크게 할 생각이었다.

합법적으로 할 수 있었지만 웬지 부담스러워 생각을 접었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막급이다. 3억원짜리 개포주공이 지금 10억원을 호가하고 있는 것.

당시 90억원이면 30채를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돈이라면 9채밖에 사들일 수 없다. 이런 ‘인플레 효과’를 몸소 체험한 그가 닥쳐올 인플레에 부동산을 찾지 않는 게 이상한 것. 그는 요즘 강남 테헤란로에 주변 100억원대 오피스빌딩을 찾아다니고 있다.

“주가 바닥이다”…ELF에 100억원 이상 묻어두기도
요즘 강남 큰손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몇 달 전까지 자금을 단기로만 운용하던 이들이 최근 들어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것.

실제 800조원에 달하는 유동성 장세에다 저금리 정책이 이어지고 있어 경기가 조금만 살아나도 인플레가 올 것이라고 판단, 실물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손해가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다시짜겠다는 소리다. 다만 지금껏 자산을 불려온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방식에 따라 톡톡 튀는 투자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500억원 대 자산가인 임달호(가명·55) 씨가 ‘이거다’ 싶은 생각을 한 것은 지난 2월경.
지난해 말 1000선을 돌파한 코스피지수가 1000~1100을 오르락내리락할 무렵 임 씨는 적어도 앞으로 주가가 500~600 선까지 밀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주가지수 연계펀드(ELF). 상품구조상 주가가 50%까지 밀리지 않으면 25% 수익률을 주는 상품 구성에 그는 주저 없이 1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지금 주가가 1400을 넘나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변이 없는 한 안정적이면서 확실한 수익을 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박기섭 신한은행 강남PB센터 팀장은 “ELF 역시 지난해 큰 손해를 본 분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바닥을 먼저 인식한 분들이 최근 선호하는 상품”이라며 “금융권 전체적으로 잘 팔리고 있으며 자본이 쏠리고 있다고 봐도 된다”라고 말했다.

갖고 있던 달러자산 던지고 주식 사들여
펀드투자에 제대로 물린 강남부자들이 많다 보니 본인이 직접 투자에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 굴지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박원태(가명·48) 씨도 그런 케이스.

그는 최근 달러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던 200만달러(약 30억원)를 모두 내던지고 국내 중소형주를 사들였다. 지난해 10월 환율이 1300원 아래로 폭락하던 때 그는 달러를 대거 매입했었다.

그 뒤 원화가 폭등세를 보이며 1500원 이상으로 올라 박 씨에게 돈을 벌어다준 것. 최근 환율이 내려갈 것으로 예상한 그는 5억원 정도 차익을 내고 달러를 원화로 바꿔뒀다. 때마침 주식시장이 불타오르자 이번에는 평소에 눈여겨봐두었던 회사 주식을 잡아 또 한번 대박을 꿈꾸고 있다.

강남부자들의 경우 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80%까지 이를 정도로 비중이 높다.

하지만 일부 금융자산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20억~30억원 정도 하는 강남 아파트 한 채 있는 사례도 많은 것이 사실. 이런 부자들 가운데선 최근 부동산 비중을 늘리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천안신도시 상가 구매한 100억원대 자산가
연봉 5억원을 받고 있는 대기업 중역 류탁수(가명·55) 씨는 30억원 육박하는 방배동 고급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현금성 자산을 100억원 이상 가지고 있지만 보유한 부동산이라고는 빌라 한 채가 전부였던 것.

그래서 그는 최근 거래하던 B은행에서 2억원을 인출했다. 천안신도시 주변 상가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계약금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지방 부동산이긴 하지만 발품을 팔아본 결과, 장기적 포석으로 볼 때 수익이 확실하다고 봤다. 여기서 그치치 않고 그는 부동산을 좀 더 사둘 계획이다.

일단 미국에 주택 하나를 구매할 결심이다. 이는 미국으로 유학 보낸 아들을 위한 것. 어차피 미국에서 살아야 할 아들에게 집하나 사주는 셈 칠 수 있는 데다 해외부동산 투자도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 때문.

게다가 달러가치가 좋아지면 다시 팔아 환차익도 노려볼 수 있다. 반대로 최근 원화 약세를 틈타 압구정 현대 등 강남 아파트를 사들이기도 한다.

H부동산 컨설팅 대표는 “최근에 수십억 원 현금을 들고 와 부동산을 사달라고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며 “이는 인플레 방어수단으로 부동산을 사들이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