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 중 불법정치자금 안 받고, 정치 자금법 개정해 정경유착 고리 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공적

살아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가장 많이 쏟아진 비판은 ‘반기업적’이고 ‘좌파정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그의 재임기간 5년 동안 특별히 반기업적이고 좌파적이라고 할 만한 정책이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참여정부가 규제를 양산했던 것도 아니고, 노조를 특별히 우대하지도 않았다. ‘분배’ 얘기를 좀 했지만, 기업에 실질적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일부 대기업 관련 제한조치들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과거 정권에서도 얼마든지 있었던 일이다. 더구나 지지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직접 한미 FTA까지 추진했던 그를 ‘기업에 적대적이었다’고 평하는 것은 별로 합리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기업하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돈 문제로 정치인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일은 없어졌기 때문이다’는 한 기업인의 말대로라면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쏟아지는 ‘반기업적’이라거나 ‘좌파적’이라는 비판은 상당 부분 근거 없는 것이 된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64) 서울시립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의 정책이 일방적인 음해와 왜곡, 폄하 없이 사실에 근거해 재평가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참여정부의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전반기 3년간 기업 및 시장정책을 총괄했던 강철규 교수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재벌 금융계열사 의결권 축소 당시 ‘삼성전자 해외자본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 걱정… 반시장주의자 낙인 어불성설"

Q 재임 시절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반기업적’,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정확히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관은 무엇이었나.

2003년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되고 첫 국무회의에 참석한 후 노 전 대통령과 단 둘이 점심식사를 했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이 경제계에서 참여정부에 어떤 점을 걱정하는지 물었다.

그래서 재계에서는 시장경제를 믿지 않는 반시장적인 정부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노 전 대통령이 한 말이 “나 스스로 시장주의자인가 아닌가 몇 번을 되물어봐도 나는 시장주의자가 맞다”며 “재계에서 가진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애써 달라”고 말하더라.

실제로 참여정부 5년간의 경제정책을 사실에 근거해 냉정히 평가해도 반시장적이라거나 좌파적이라는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다.

Q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반시장주의’라는 비판을 받은 원인이 무엇인가.

시장주의라는 말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두자는 ‘시장중심주의’도 있을 수 있고,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시정주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은 시장경쟁은 인정하지만 시장에서의 패자를 정부가 구제해 줘야 한다는 ‘복지주의자’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답게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서민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둬야 한다는 일부 시장중심주의들이 그에게 ‘반시장주의자’라는 굴레를 씌운 것 같다.

Q 공정거래법 개정 등 참여정부가 대기업 규제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이 그런 오해를 만든 것은 아닌가.

참여정부 출범 이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순환출자와 상호출자로써 작은 지분으로 많은 권리를 행사하는 재벌의 소유구조를 바꾸고, 재벌 금융계열사들의 의결권을 축소하는 등 몇 가지 정책이 대기업들의 반발을 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문제들을 바로잡자는 것이지 재벌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정거래법의 출총제 같은 경우는 재벌들이 좀 더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완화해 주기도 했다.

Q 평소 대기업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나.
그것과 관련해 재밌는 일화가 있다. 2004년 국무회의에서 재벌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축소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논의 할 때였다.

당시 고건 총리 주재로 한참 회의가 진행 중인데 난데없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더니 대뜸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삼성전자가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전화로 한참 동안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안심을 시켰지만, 결국 이 문제를 가지고 따로 청와대로 찾아가 보고를 해야 했다.

대기업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관심이 이 정도인데 그가 반기업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일방적인 음해와 왜곡 없이 사실에 근거한 참여정부 재평가 이뤄져야"

Q 개인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해방 이후 30년간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은 것이다. 스스로 재임 시에 재계에 일체의 정치후원금을 요구하지 않았고, 2004년에는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정치인들이 불법정치자금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정치자금법 개정은 금융실명제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 정경유착이라는 ‘큰 부패’를 없애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본다.

Q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살아생전에 그분이 내렸던 여러 가지 정치적 결단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 같다.

살아서 온갖 음해와 왜곡에 시달리느니 죽음으로 정치적 명예를 회복하려 한 것으로 보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와 참여정부의 정책이 일방적인 폄하와 왜곡에서 벗어나 실재 사실에 근거해 정당하게 평가받기를 바란다.

이형구 기자 lhg054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