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전성기 때만 해도 국내 술시장의 70%를 장악했던 막걸리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때 시장점유율이 2%대까지 밀려 사양사업으로 취급받았지만 최근 젊은 여성층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화려한 부활을 준비하고 있는 것. 특히 막걸리의 두 번째 전성기는 국내 시장을 넘어 일본 시장으로까지 퍼지고 있다.

국세청이 발표한 ‘2008 주류 출고량’을 보면 막걸리의 지난해 수출량은 총 5457㎘로 전년도 4312㎘에 비해 26.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일본에 수출되는 양이 압도적이다. 막걸리는 현재 전 세계 13개국으로 수출되고 있지만 그중 지난해 일본에 수출된 물량이 4892㎘로 전체 막걸리 수출량의 89.6%에 달한다. 일본이 막걸리에 취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

지난 1993년, 국내 막걸리 제조업체 중 처음으로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선 이동주조의 한명희 이사는 “1995년 살균 막걸리가 개발되면서 막걸리 수출 시장이 획기적으로 열렸다.

살균을 하지 않은 생막걸리의 경우 유효기간이 짧기 때문에 수출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막걸리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2003년 이후로 한류 열풍이 크게 한몫한 것으로 한 이사는 분석하고 있다.

이동막걸리가 일본 시장 80% 점유
‘이동막걸리’로 유명한 이동주조는 일본 시장을 일찌감치 선점한 탓에 한때 일본 막걸리 시장점유율이 90%를 넘어서기도 했다.

현재는 일본에서의 막걸리 붐을 타고 경쟁업체들인 서울탁주와 국순당, 배상면주가 등이 속속 일본에 진출해 점유율이 80%대로 떨어진 상황.

하지만 한 이사는 “올해 4월까지의 일본 수출량이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22%나 늘었다. 수출액 기준으로 400만달러 수출이 올해 목표인데 현재 추세대로라면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동주조의 경우 후발 경쟁업체들과의 차별화 전략의 일환으로 보리막걸리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한 이사는 “최근 과일막걸리 인기는 조금씩 시들고 있다.

일본인들이 현재 몸에 좋은 곡류에 대해 관심이 많은 만큼 보리막걸리가 출시되면 인기를 끌 것”으로 내다봤다.

국순당의 경우 고급화 전략과 스타마케팅을 택했다. 전체 물량으로는 이동주조가 선점한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배우 배용준이 일본에 차린 한식당인 ‘고시레(高矢禮)’와 연계해 내놓은 ‘고시레 막걸리’는 일명 ‘욘사마 막걸리’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고시레 막걸리’는 야후 재팬 인터넷 쇼핑몰에서 6병을 묶은 한정판 패키지 300세트가 8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그 기간 야후 재팬 통신판매 상품 중 고시레 막걸리는 주류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순당의 고봉환 팀장은 고시레 막걸리의 경우 320ml 용량이 480엔으로 다른 막걸리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맛을 부드럽게 하고 디자인을 고급화한 것, 특히 배용준을 활용한 스타마케팅 등을 성공의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웰빙주로 알려진 것이 인기 비결
일본인들은 대체로 알콜 도수가 높은 술보다 낮은 술을 선호한다. 서울탁주연구실의 성기욱 전무는 “일본인들은 한국의 소주를 마실 때도 술을 반만 따르고 나머지 반 잔에는 따뜻한 물을 타 마실 정도”라며, 약한 술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음주 습성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일본의 전통술 사케도 발효주이기 때문에 같은 발효주인 막걸리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는 점도 막걸리 인기의 비결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일본인들에게 막걸리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막걸리는 웰빙주’라는 개념이 널리 퍼졌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막걸리는 실제로 쌀이 효모에 의해 발효되는 과정에서 1.9%의 단백질과 10가지 이상의 필수아미노산이 생성되는 등 건강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막걸리를 그냥 두면 하얗게 가라앉는 고형분(지게미)에는 고혈압 유발 효소를 억제하고 항암 효과까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리고 막걸리에는 섬유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변비가 있는 여성들에게 특히 좋다는 얘기도 있다.

백화점에도 입성한 마코리
일본인들의 막걸리 사랑은 국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엔고 바람을 타고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이 부쩍 늘자 여행사마다 ‘마코리(막걸리의 일본어 발음) 탐방 코스’를 개발하고 있으며,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명동 일대 편의점들에선 막걸리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막걸리가 호텔에도 입점해 그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지난해 11월부터 와인매장 내 주류 코너에서 ‘국순당 쌀막걸리’(캔, 240ml)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첫 달 판매량은 72캔에 불과했지만 다음 달 바로 260%의 신장률을 기록하며 259캔이 팔렸고, 올해 4월부터는 ‘막걸리백주’, ‘배혜정 누룩 부자10도 (375ml/500ml)’ 상품 등 총 3종을 추가로 판매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총 1393개가 판매되어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막걸리는 타 주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특유의 맛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특히 일본인들이 몰렸던 골든위크 기간에만 600개 이상이 팔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일본인들에게 한국 막걸리의 인기가 높아지자 일본의 막걸리 제조사들이 한국 막걸리 제조 현장을 탐방하는 일도 늘고 있다.

서울탁주의 박상태 부장은 “일본의 제조사나 판매사에서 서울탁주의 막걸리 제조장에 몇 번 찾아왔다. 그들이 먼저 ‘장수막걸리’를 수출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 막걸리를 좋아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일본인들은 생막걸리를 사케에 섞어 마시기도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