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들이 신음하고 있다.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떠나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 이에 따라 최근 자산관리서비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실효성 의혹과 회의론이 많았지만 최근들어 증권사들은 이 서비스에 다시금 집중하고 있다.

위기 속 기회로 떠오른 증권사 '자산관리 서비스'

 

어렵다는 건 말 뿐만이 아니다. 수치와 데이터도 위기를 말한다. 국내 증권가 얘기다. 그렇다고 똑 부러지는 수는 없다. 구조조정, 수익 다변화와  위기를 맞은 기업이 으레 듣는 권고 정도다. 업계 내부적인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신상품 개발 노력에 소홀했던 것이 시장 변동에 병약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국내 증권가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브로커리지’ 형태로 벌어들인다. 최근 ‘자산관리 서비스’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사실 증권사에게 있어 새로운 비즈니스는 아니다. 하지만 유명무실했다. 실효성 의혹도, 회의론도 많았던 분야다. 현재 국내 증권가는 ‘기로’에 서 있다. 타성 속에서 주저앉느냐, 재편 의지와 함께 일어서느냐다. 수익다변화, 그 중에서도 ‘자산관리 서비스’가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이제 발 빼려고요.” 서울 송파구에 사는 주부 이모씨(56)는 최근 가지고 있던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갈팡질팡하는 증시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 증권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장에서 도는 돈의 규모가 이를 말해준다. 최근 주식시장 일평균 거래대금은 4조원 내외로, 지난해에 비해 그야 말로 반 토막이다. 손님이 뜸해지면 가게는 어려워지기 마련. 증권사들의 이익도 자연스레 급감했다. 2007년 4조가 넘었던 당기순이익은 올해(2011년 4월∼2012년 3월) 2조원 2000억원 수준이다. 전체 62개 증권사 중 21곳이 적자다. 셋 중 하나는 간판을 내려야 할 판이다. 인수합병 시장에서 증권사 매물을 찾는 게 어렵지 않은 이유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한계에 직면했다”고 입을 모으며, “위기를 만든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증권사 수익구조에서 위탁매매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보니, 증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 금투협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순익 중 위탁매매는 49.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2.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업계는 위기 극복을 위해 자산관리 업무 강화, 투자은행 업무 선진화, 해외영업 확대 등을 강조한다. 특히 저금리 기조 속 자산관리시장의 성장세가 대두함에 따라 자산관리 상품과 서비스를 차별화 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밑천 많고, 수요 높은 ‘자산관리 비즈니스’에 주목하라

‘자산관리’가 증권가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추려진다. 첫째는 풍부한 금융자산. 장사 밑천이 많아졌단 의미다. ‘World Wealth Report 2012’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전 세계의 부유층(금융자산 100만달러 이상 개인)이 가진 전체 금융자산 규모는 42조1000억 달러로 집계 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이 3000억 달러 수준임을 고려하면,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으로 분류되는 아시아와 중동 지역 금융자산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05년에 23%였던 아시아의 금융자산 규모는 지난 해 27%까지 올랐다. 딜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20년 후 전 세계 부유층의 총 보유자산은 202조 달러로 2011년 대비 119% 높아질 것이며 특히 이머징마켓의 경우 260%의 높은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동우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위축되었던 글로벌 프라이빗 뱅킹 시장이 빠르게 회복 중”이라며 “고액자산가들의 투자자산 증가 속도는 더디지만, 프라이빗 뱅킹 분야의 운용자산은 빠르게 증가하여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말했다.

둘째는 금융 상품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전문가를 통한 자문서비스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유럽발 금융위기 이후, 시장불안이 커진 점은 이러한 경향을 부추겼다. 금융투자협회의 ‘글로벌 자산관리 비즈니스 동향 및 시사점’ 연구에 따르면, “향후 6개월 이내에 금융자문서비스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이 전체의 59.5% 차지했을 정도로 저축․투자 상품, 은퇴계획, 모기지, 보험상품, 세금, 대출 등 자문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영역의 수요는 높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외부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고령화 이슈가 대표적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 이에 대한 대비는 미흡한 편이다. 이에 향후 은퇴자산에 대한 관리 수요 증가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산관리서비스 관심영역인 자산포트폴리오 구성, 은퇴․노후설계 시장의 전망이 밝은 이유다. 온라인과 IT가 발전함에 따라 보다 다양한 채널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기회요소다. ‘악사 에퀴터블컴퍼니(AXA Equitable Company)’에서 은퇴 후 생활을 지원하는 금융상품, 건강, 여행 등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My Retirement Shop’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증권사가 자산관리 비즈니스 영역에 뛰어든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1977년 세계 최대의 증권사 ‘메릴린치(Merrill Lynch)’가 업계 최초로 ‘CMA(Cash Management Account․종합자산관리계좌)’ 상품을 출시한 이후부터 자산관리는 증권사의 중요한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 현재 세계 자산관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 역시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제이피모건(JPMorgan) 등 대형증권사들이다. 이들은 전문 투자은행상품 및 자문서비스, 글로벌 네트워크 등의 강점을 기반으로 전 세계 고객자산의 39%(2009)을 담당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자산관리시장이 발달된 미국의 경우, 부유층(자산규모 100만 달러 이상) 자산관리는 주로 대형증권사, 은행의 프라이빗 뱅킹(PB), 증권사 등의 독립투자자문사(RIA․registered investment advisor)들이 맡고 있으며, 대중부유층(5만 달러 이상)은 독립․할인증권사 등 중소형 증권사들이 수행한다.

국내에서도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자산관리 분야의 시장성에 주목해왔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경쟁적으로 자사의 철학이 담긴 자산관리 상품을 선보이며 시장 개척에 나섰다.

우리투자증권은 일대일 맞춤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고 자산재조정을 할 수 있는 첨단 종합자산관리시스템인 ‘옥토폴리오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으며, 대우증권에서는 투자자가 보유펀드를 스스로 진단하고 자신의 투자성향에 맞는 대안 포트폴리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대우 ‘X-RAY’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고액자산가를 위한 세무, 부동산, 재무 등의 맞춤형 컨설팅 서비스도 진행해왔다. 미래에셋증권은 고객에게 포괄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자사의 종합자산관리 서비스 브랜드인 ‘미래에셋어카운트’를 갖추고 있다. 동양종금증권은 자산관리 솔루션인 ‘동양WMS(Wealth Management System)’를 적극 활용하면서, 다양한 고객정보를 기초로 교육, 결혼, 은퇴 등 생애 전반에 관한 자산관리를 시스템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밖에 삼성증권은 POP(Platform Of Private banking service) 중심의 서비스로 고액 투자자들에게만 제공되었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대중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신한금융투자도 펀드 케어서비스를 포함한 종합자산관리서비스 시스템 구축으로 고객 투자성향을 고려한 컨설팅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위기에서 기회로, 국내 자산관리 서비스 환경의 변화

국내 증권사들이 10년 전부터 주목해왔던 자산관리서비스. 수익 구조 다변화와 부자 고객 유치를 위해 꼭 필요한 영역이지만, 회의론도 적지 않았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들 수익 중 자산관리 부문의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위탁매매 중심의 사업 구조의  원인이자 결과다. 무형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데 인색한 국내 정서도 문제다. 전문 자산관리 상담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점은 이 분야의 활성화를 저해한 요인이 됐다. 금융 선진국에서 월 10∼100달러 수준의 대가를 받고 제공하는 증권사 리서치서비스가 국내에서는 무료로 제공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생사의 기로에 놓인 증권사들 입장에서, 자산관리 서비스의 강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이 문제가 됐다. 다행히 펼쳐진 판이 나쁘지는 않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금융자산이 확대됐고, 전 세계 유례없는 고령화를 진행하면서, 노후대비 수요도 증가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도 국내 가계 금융자산은 지난 5년간 1.7배 증가했으며, 부유층 수 기준으로는 세계 12위 자산관리 시장으로 성장했다.

눈여겨볼 점은 타깃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자산관리 분야의 고객이 확대된 것. 특히 젊은 층의 편입이 가파르다. 지난 2011년에 실시된 ‘NICE R&C’의 설문조사 결과, 자산관리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 중 향후 자산관리서비스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 35.3%이며 이중 47.2%가 20∼30대다. 증권사의 자산관리브랜드 인지도(73.7%) 또한 은행(58.9%)을 크게 앞선다. 전문적인 상담ㆍ자산관리서비스의 우수성에 있어서는 증권사가 은행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자산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이들로부터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증권사 자산관리 비즈니스의 기회요소다.

고객 세분화와 차별화된 사업 전략, ‘맞춤이 경쟁력’

수요가 있는 곳에 경쟁도 있다. 경쟁은 자산관리 서비스 분야에서도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제 살 깎아먹기’식의 지나친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밀한 고객세분화 전략과 그에 맞춰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기존의 대동소이한 서비스 제공 방식을 벗어나, 집단 별 고객특성 분석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전략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특히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직업, 라이프사이클, 성별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고객이 세분화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신진 기업가나, 여성 등 구매력이 높거나 성장세가 높은 고객 군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전담부서를 갖춰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고객 데이터에 대한 체계적인 축적과 관리가 필요하다.

타깃에 맞춰 각 증권사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그 다음 과정이다. 대형사는 투자은행 부문과의 연계 상품 및 서비스 제공, VIP 지점 확대 등을 통해 부유층 자산관리에, 중소형 증권사는 온라인 채널 강화 등을 통해 대중~대중부유층 영업에 주력할 수 있다. 타깃 고객군 특성별로 상품, 마케팅, 채널 등에 대해 차별화된 사업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전문인력 양성이다. 스위스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국제경영개발원)는 우리나라의 금융전문인력 순위를 세계 46위로 평가했는데, 이는 홍콩(10위), 싱가폴(25위) 등에 크게 뒤진 수치다. 통합자산관리서비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을 위해 중장기적인 관점의 투자 역시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