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서상 제사는 장자나 장손이 모시는 게 정설이다. 장자나 장손이 유고시에는 차남이나 다른 손자가 모시는 게 마땅하지만 보통은 장자의 집안에서 제사를 지낸다.

추석이나 설날에도 장자나 장손의 집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같이 제삿밥을 나눈다. 아무리 의가 상한 형제끼리도 조상의 제사는 함께 참석하여 그동안 소원해진 의를 다시 돈독케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피를 나눈 사람끼리 조상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함께 나누며 서먹해진 사이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계는 이런 모습이 낯설다. 재계 맏형인 삼성이나 둘째형인 현대차나 모두 마찬가지다. 국민들에게도 화목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부를 나눈 사이에서는 그렇지 못 하다.

앞서 고(故) 정주영 회장 사후에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건설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제사는 함께 참석하기도 했지만 선영 참배는 따로 했다. 현 회장은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의원과도 한때 관계가 소원했었다. 이런 소원했던 관계가 정몽구 회장의 부인인 고 변중석 여사의 기일을 맞아 화해 분위기로 변했다. 한때 대립각을 세우며 설전을 벌이던 현정은 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제사라는 ‘가족행사’를 통해 화해를 했다. 평생 안 보고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제사나 선영 참배 등에서 마주치게 되면 웃는 얼굴에는 침을 뱉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삼성그룹과 CJ그룹간 형제간 소송을 지켜보면서 다시 또 형제간의 갈등을 보게 됐다.

선영참배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삼성과 CJ는 장손이 선영참배에 불참하면서 또다른 확전양상을 보여줬다. 장손이 할아버지의 땅을 밟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이병철 전 회장의 25주기 추모식이 열린 19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할아버지의 묘소 참배를 포기했다. 삼촌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쪽에서 “선영으로 통하는 정문과 한옥 이용을 막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재현 회장은 “24년간 다닌 정문을 두고 다른 입구로 들어가기에는 장손으로서 낯을 들 수 없는 일이며 그런 선례를 남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반쪽짜리 선영 참배행사였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고 할아버지를 모신 곳에는 장자와 장손이 들어가지 못했다.

이재현 회장은 이날 밤 ‘제주’자격으로 제사를 관장했다. 지난해부터 서울 장충동 이병철 회장 생전 자택에서 CJ인재원으로 제사를 모셔왔다. 장충동 집은 이건희 회장의 소유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홍 관장을 비롯한 한솔·신세계 등 범삼성가 친인척들이 제상에 둘러섰다.

성경을 보면 야곱이 형과의 화해를 위해 아내와 자녀, 여종을 얍복강에서 먼저 보냈다. 형인 에서가 자신을 ‘위협하지나 않을까’라는 두려움에서였다. 그러나 형인 에서는 야곱을 위협하기는커녕 멀리서 달려와 입맞추고 끓어 안으며 울었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자신의 소유나 부를 빼앗아갈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관계다.

글로벌기업 삼성과 CJ가 어서 빨리 형제의 우애를 다시 다지고 미래를 함께 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두 그룹이 경쟁관계가 아닌 상생협력의 관계로 속히 재설정될 수 있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편이 기업의 이미지에도 좋고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떠나 인륜의 이치에 맞는다. “회장님 빨리 화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