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클래식 음악에서 위안을 얻다

발문
"듣고 싶은 곡이 생기면 옷을 입고 나가 CD 몇 장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가벼운 산책길도 흥겨운 기쁨으로 가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느 날 점심을 먹는데, 두 사람의 오디오 마니아가 나를 꼬드겼다. “클래식을 들으시지요.” 난 대답했다. “듣고 있소.” 이윽고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좋은 오디오로 들으셔야지요.”
“지금도 충분히 좋소. 나는 행복하오.”
“오디오 맛을 알면 지금까지의 행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집요한 꼬임에 넘어가 나는 언젠가 그들의 대단한 행복의 세계로 들어가 커다란 진공관 오디오로 음악을 감상해 보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좋은 음악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누구나 이미 음악의 맛을 조금씩은 알고 있으니까. 그들처럼 특별히 미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요즘, 좋은 음악에 대한 좋은 해설이 있고, 이름만 알던 음악가들에 대한 이런저런 재미있는 뒷이야기들과 에피소드들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해외여행 못지않은 호사가 아닐까 한다. 그리하여 주섬주섬 책을 좀 챙겨 보다 걸려든 책이 이 바로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이다.
우선 이 책은 가볍다. 클래식을 가요나 팝송처럼 아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해 준다. 초보에게 딱 맞는 재미있는 입문서다.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을 때, 집 안에 있는 구식 오디오에 굴러다니는 CD를 하나 넣어 들어보자. 혹시 그 CD가 이 책 속에 소개된 아무개의 무슨 곡이라면 더없이 좋다. 아니어도 좋다. 이 책을 읽다 저자의 ‘구라’에 빠져, 듣고 싶은 곡이 생기면 재킷을 걸치고 잠시 시내로 나가 CD 몇 장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가벼운 산책길도 흥겨운 기쁨으로 가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원래 음악은 어디에고 있는 것이고, 귀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지 않던가!
그럼 책 속으로 조금 들어가보자. 역시 이 책도 바흐와 헨델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어렸을 때의 한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선생이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이고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라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누구일까?
아이들은 저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외쳐댄다. 그러나 정답은 ‘음악’이었다. 썰렁한 답이다. 그러나 서양의 음악은 바로 그들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마흔이 넘어 가끔 불면의 밤을 보낼 때가 있었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불면은 괴롭다. 내가 찾아낸 불면을 이겨내는 방법 중에 가장 괜찮은 것이 바흐였다. 특히 ‘G선상의 아리아’나 ‘골드베르크 변주곡’ 혹은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하는 ‘무반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을 듣다 보면 스르르 잠들곤 한다. 좋은 곡에는 늘 따라다니는 에피소드가 있다. 예를 들어 ‘4개의 관현악 모음곡’ 안에 들어있는 ‘G선상의 아리아’에는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사연이 전해진다.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마을에 전쟁이 터지자 아끼던 바이올린을 들고 도주한다. 그러나 적군에게 잡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고통과 두려움이 엄습했을 때 그는 바이올린을 켜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악기의 케이스를 여는 순간 실망했다. 전쟁 중에 악기를 들고 뛰는 동안 바이올린 네 개의 줄 중에서 세 개가 끊어지고 G선 하나만 남아있었다. 그는 남아 있는 G선만으로 ‘4개의 관현악 모음곡’중 3번 아리아를 켜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G선상의 아리아’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빌 헬미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G선만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음악 역시 이야기를 좋아하고 우리는 가슴 뭉클한 거짓말을 선호한다. 지루한 인생은 이야기를 필요로 하고 음악가들은 이야기에 곡을 붙이고 악기를 들어 연주함으로서 인생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놓곤 한다. 이 책 속에는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조금 더 해보자. 밀로스 포먼이 감독한 영화 〈아마데우스〉를 아마 다 보았을 것이다. 그 영화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절망한 비운의 음악가 살리에르로 하여금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라고 외치게 한다. 영화는 마지막을 향해 치달리고 드디어 ‘음악에 의한 살인’ 장면에 이르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신사가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한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이라는 꺼림칙한 제목에 마음 내켜하지 않지만 모차르트는 거절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낭비벽과 도박벽은 그의 유명세로도 따르지 못할 빚을 만들어내고 모차르트는 돈에 쪼들렸기 때문이다.
이 곡을 작곡하면서 모차르트는 점점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자신을 위한 장송곡 같았다. 영화 속에서는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르가 이 곡을 의뢰한 것으로 되어있다. 모차르트가 자신을 파괴해가는 것을 도중에서 그만두지 않도록 살리에르가 직접 나서서 도왔기 때문에 결국 모차르트는 죽고 만다. 이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그러나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의 천재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성공을 방해 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 속에서처럼 음악에 의한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레퀴엠을 부탁한 사람은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었다. 그는 자신의 젊은 아내가 죽었을 때 당시 최고의 작곡가였던 모차르트의 장송곡을 아내를 위한 선물로 주고 싶었기에 그 곡을 모차르트에게 의뢰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이윽고 베토벤으로 넘어간다. 음악의 성인 베토벤은 그의 인생이 바로 베스트셀러다. 만년에 그의 귀는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음악은 점점 더 위대해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현악 사중주 곡인 16번 Op. 135의 악보에는 가사가 붙어 있다. 기악곡에 붙은 가사에는 하나의 질문과 답이 쓰여 있다. “꼭 그래야 하나? 꼭 그래야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어찌하여 기악곡에 가사가 붙어있을까? 이것은 오랫동안 불가사의한 의문이었다. 영화 〈불멸의 연인〉속에서 베토벤이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한 여인이 그를 찾아온다. 베토벤에게 아들 카를 베토벤의 양육권을 빼앗긴 제수 요한나였다.
베토벤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조카 카를 베토벤의 양육권을 생모에게 돌려준다’라는 내용의 서류에 사인을 한다. 그리고 무언가 말을 하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메모할 곳을 찾다가 그는 들고 있던 악보 위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한다. “꼭 그래야겠지?” 그러자 메모를 읽은 요한나가 답을 쓴다. “꼭 그래야 합니다.” 저자는 그 장면에서 이 악보 속의 질문과 대답에 대한 오랫동안의 의문에 대한 그럴듯한 대답을 찾았다고 좋아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거쳐 한없이 이어지다, 씻기 싫어하는 더러운 슈베르트의 어려운 곡에 이른다. 그리고 또 흘러 동성연애자 차이코프스키와 평생의 스폰서였던 폰 메크 부인의 이야기를 거쳐 또 마냥 흘러간다. 이윽고 한국의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에 이르러 끝이 난다. 군사독재의 시대 당시 세계적 음악가로 커가고 있던 윤이상은 유명한 ‘동백림 사건’으로 끌려와 온갖 고문을 당해 몸도 마음도 다 피폐해졌다. 그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그의 뛰어난 음악성을 알아준 그의 동료들이었다. 수많은 세계적인 예술인들이 탄원서를 보내 한국의 독재정부를 압박했다.
윤이상은 1969년 석방되어 서독으로 추방 되었다. 그 후 수차례 시도된 그의 입국은 거부되었고, 그는 타국에서 음악을 계속해야했다. 1980년대에 그는 거대한 교향곡을 5개나 남기게 된다. 그가 제의한 남북합동음악회는 번번이 무산되었지만 1990년 드디어 ‘범민족 통일음악회’가 개최되기에 이른다.
그의 음악은 한국적 선율을 사용한다. 그에 의해 서양 악기로 연주된 한국의 음악은 세계적인 보편성 안으로 끌어들여져 세계인의 동의와 박수를 얻어내게 된다. 그의 음악가로서의 일생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전개되었다. 혹자는 음악가는 음악에 전념하면 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가 음악 없이 살 수 없듯이 음악도 그 사회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동의한다. 그래서 이 책은 가볍고 흥미진진하게 쓰여지기도 했지만 속없는 개그와 만담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겨울의 초입에서 더없이 재미있게 읽었고 저자의 ‘구라’에 마음이 동해 책 속에 등장하는 몇 개의 CD를 찾아 들으며 책장을 넘겼다. 즐거운 독서였고 괜찮은 음악 감상이었다. 그대들도 어느 멋진 하루를 갖고 싶다면 부디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 그 선율에 몸을 맡겨보기 바란다. 바람에 낙엽이 날리듯 인생을 스쳐간 무수한 날들이 소리쳐 흐르고 문득 잘살아봐야겠다는 각성에 이른다.

구본형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장
■ 인문학과 경영분야를 접목시킨 상생의 작업으로 항상 독자들에게 신선한 비전을 제시하는 경영전문가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IBM에서 근무하면서 경영혁신의 기획과 실무를 총괄했다. 현재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으로 강연과 칼럼,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쪾조윤범 지음 쪾살림 펴냄 쪾1만8000원

이형구 기자 lhg0544@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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