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 워치독, 자국엔 '관대' 외국엔 '혹평'

美 연비인증시스템 문제 노출… 사후인증제 고쳐야

미국에서 가장 급진적인 진보·소비자 운동단체로 알려져 있는 ‘컨슈머 워치독’이 지난 1월 처음 제기했다. 이후 7월엔 소송까지 제기했다. 블랙컨슈머다. 소비자의 권익을 앞세운 컨슈머 워치독은 그간 유독 일본 과 한국 자동차 메이커를 겨냥해 연비 효율 논란을 제기해 현대·기아차에 앞서 일본의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의 효율도 과장됐다는 주장을 펼쳐 결국 배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현대차가 오바마의 재선을 위한 ‘희생양’이 아니었겠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현대·기아차의 발목을 잡은 연비과장 논란은  10개월동안 계속돼 왔지만 가장 민감한 시기에 자국이익을 위해 결정됐다. 대통령 선거투표일을 불과 닷새를 앞두고 미국환경보호청(EPA)이 발표한 것은 오바마가 오하이오의 자동차벨트 지원책을 놓고 ‘절치부심’하던 중에 나와 더욱 주목을 받았다. 결국 재선을 위해 동력이 필요했던 오바마에게  컨슈머워치독과 미국 환경보호청이 오하이오의 민심을 자극해 오바마가 재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꼴이 됐다. 컨슈머 워치독은 소비자 보호라는 본래의 목적 보다는 자국산업을 대변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는 견해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외국차에 유독 민감하게 굴었던 컨슈머 워치독은 지난 2009년 미국자동차회사인 제네럴모터스(GM)가 파산했을 때 미국차 구매를 적극 주장한 바 있다.

GM 회생을 위해 미국인의 세금이 투입된 만큼 GM차를 많이 사는 게 곧 '미국을 위한 일'이라는 논리였다. 반면 컨슈머 워치독은 미국 자동차업체에는 유독 관대했다. 컨슈머 워치독은 지난 2009년 제너럴모터스가 의욕적으로 선보인 차세대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의 연료 효율논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미국에서는 컨슈머리포트가 환경보호청(EPA)의 측정 방식을 활용해 볼트의 연비가 1갤런당 230마일(ℓ당 98㎞)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세기(世紀)의 과장"일 수 있다고 혹평한 바 있다. 플러그인 전기차는 일정 거리까지는 배터리를 동력으로 갈 수 있지만 배터리가 소진되면 연비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때문에 거리와 운전 방식에 따라 연비 효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컨슈머 리포트의 설명이다. 같은 소비자 조사기관이지만 컨슈머 워치독은 함구한 사실에 대해 컨슈머 리포트가 보다 진실에 가까운 리포트를 내놔 주목을 받았다. 수입차업체 고위관계자는 "국가마다 기준이 많이 바뀌어서 연비측정 기준 차이로 발생된 문제 같다"며 "미국이나 한국으로 수출되는 차량의 연비측정 방식은 각 나라에 맞춰 측정되기 때문에 어떤 오해로 인해 문제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자국산업의 보호라는 입장이)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국이라는 국가가 특정한 기업에 대해 공격을 한다는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원론적인 입장도 내놨다.

미국, 도로조건 저항값 달라

미국 정부의 자동차 연비인증시스템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미국의 사후인증제가 우리나라의 검증방식과 차이가 있어 현지 시장에 진출한 해외 자동차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사후인증제는 현지 시장에 자동차를 출시하려는 개별 업체가 현지 도로조건과 기후를 모두 감안한 각종 저항값을 산출해 자체적으로 연비 테스트를 하도록 한 뒤 추후 검증대상 차종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사전 인증제는 개별 업체의 연비 테스트 단계부터 해당 정부가 직접 나서 연비를 측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사후인증제를 관장하는 환경보호청(EPA)이 제시한 저항값 가이드라인도 매우 포괄적이어서 개별 업체가 자체 저항값을 반영하기는 더욱 어렵다. EPA가 제시한 노면저항 가이드라인은 단순히 '편평로'로 돼 있어 해당 업체는 시험 단계에서 아스팔트 도로나 시멘트 도로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EPA의 사후테스트 단계에서는 시멘트 도로를 가정한 저항값을 설정하기 때문에 아스팔트 저항값을 반영한 업체는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차량을 EPA에서 사후인증을 받게되면 메이커가 자체 테스트한 연비와 EPA 테스트 연비 사이에 10% 이상 차이가 있을 경우 해당 업체는 표시 연비를 즉각 수정해야 한다.  EPA 규정상 해당 업체가 저항값을 다시 계산하고 반영하는 기간 동안 저항값 수정을 받는 제품은 모두 판매가 중단된다. 이 때문에 미국에 진출한 해외 브랜드들은 규정상 ‘10% 룰’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판매중단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즉각 연비를 수정해야 한다.

현대·기아, 선제적 대응으로 파장 축소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합계 점유율 10%를 넘어서며 연간 100만대 이상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에서 ‘연비가 좋으면서도 가격은 합리적인 차’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제이디파워 등으로부터 높은 품질을 갖춘 자동차로 평가받아왔다. 현대·기아차로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보상을 약속한 정직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EPA 발표에 이어 즉각 오류를 인정하고 소비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 약속까지 했다.

평균 3%의 연비차이를 보인 현대·기아차의 제품은 표시 연비를 수정해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말이다. 이번에 EPA가 지적한 부분도 표시 연비를 수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저항값을 재 반영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차는 표시연비를 즉각적으로 수정하고 사과문을 공지했다. 선제적 대응이었다. 이로 인해 현대차의 연비과장 논란은 앞서 도요타의 리콜문제 처럼 안전과 관련이 아니어서 파장이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안전과 관련된 리콜이 아닌데다 두 회사에 대한 대규모 리콜 루머로 주가가 급락해 이미 반영됐다”며 “미국시장과 달리 유럽과 중국, 한국에서는 정부에서 인증한 연비를 표기하고 있어 이번 사태가 다른 지역으로 퍼질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김연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도요타의 경우 안전문제와 직결되는 결함이었으며 인명피해까지 발생한 상황이었다"며 "현대차의 경우 연비 표시 오류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덜하고, 도요타 사례와 비슷한 수준으로 확대될 가능성 또한 현재로서는 낮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