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멜로·SF·코미디
- 상영시간 103분
- 개봉일 2009.05.14
- 감독 곽재용
- 출연 아야세 하루카, 코이데 케이스케
-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언제부터인가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은 한국보다는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에서 더 ‘통’하는 감독이 되었다.

이는 <엽기적인 그녀>의, 아시아를 아우르는 메가 히트의 힘이다. 통통 튀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당시 트렌드를 적극 차용한 이야기, 거기에 전지현과 차태현이라는 신세대 배우의 최고의 궁합까지 <엽기적인 그녀>는 ‘한물 갔다’란 평가를 받던 1990년대 감독 곽재용에게 제2의 전성기를 열어준 화제작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후 <클래식>,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무림여대생> 등을 연출하는 동시에 곽재용은 유위강의 <데이지(Daisy)>나 서극의 <여인불괴(All About Women)> 등 홍콩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쓰며 활동 범위를 점차 아시아지역으로 넓혔다.

특히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이 수상한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린 일본에서의 그를 향한 러브 콜은 실로 대단했던 모양. 한국 감독이 일본 배우, 스태프들과 작업한 일본 영화 <싸이보그 그녀(Cyborg Girl)>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졌다.


<싸이보그 그녀>는 그 제목에서 SF의 향기를 사정없이 내뿜고 있지만 정작 그 안을 관통하는 정서는 여전히 <엽기적인 그녀>의 그것과 동일하다.

영화의 주인공인 지로(코이데 케이스케 분)는 성인이 되는 스무 살 생일에 이상한 복장과 엽기적인 행동의 그녀(아야세 하루카 분)를 만난다.

변변한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생일을 보내던 그에게 우연히 다가온 그녀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로부터 1년의 시간이 흐른 지로의 스물한 번째 생일, 그녀가 다시 그 앞에 나타난다. 기쁨을 숨기지 않는 지로에게 그녀는 자신이 미래의 늙은 지로가 과거의 자신을 구하기 위해 보낸 싸이보그라고 털어놓는다.

공교롭게도 그때부터 크고 작은 위험에 처하는 지로를 그녀는 물불 가리지 않고 구해준다. 지로가 이런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쯤 되면 가히 판박이다. 극 중 온갖 좌충우돌을 벌이는 순둥이 지로와 그녀의 모습에서는 자연스레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와 그녀가 떠오른다.

특히 <백야행>, <호타루의 빛>으로 국내에서도 지명도가 높은 아야세 하루카가 연기한 그녀는 누가 뭐라 해도 전지현이 연기한 엽기녀의 ‘어나더 버전’이다.

백화점에서 옷을 슬쩍하거나 식당에서의 무전취식 정도는 우스우며, 우락부락한 남자 깡패들은 그녀의 주먹에 사정없이 나가떨어진다.

지로도 이런 단순 무식한 그녀 덕분에 가끔 곤경에 처하지만 이런 그녀가 지로는 싫지 않다.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가 그랬듯 이 엽기녀는 그 앞에 떨어진 전 세계에 유일무이한 이상형이기 때문이다.

가만 있자, 캐릭터 설정을 넘어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엽기적인 그녀> 세상이다.


<싸이보그 그녀>에서 <엽기적인 그녀>와 달라진 점을 찾을 수는 있다. 통상 일본 상업 영화 제작비의 두 배인 1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답게 <싸이보그 그녀>는 시간 여행이나 일본 대지진 등 제법 스케일이 큰 화려한 액션 시퀀스를 선보인다.

영화의 내적인 완성도는 나쁘지 않다. 아야세 하루카, 코이데 케이스케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청춘 스타들의 연기는 볼 만하며, 로맨틱 코미디를 기본으로 공상과학, 액션,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적인 요소가 잘 섞여 있다.

일본에서의 <싸이보그 그녀>에 대한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최악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올 초 TBS에서 드라마 버전이 방영되는 등 여전히 <엽기적인 그녀>의 약발이 일본에서 통하는 덕분이다.

그러나 <엽기적인 그녀> 붐이 철저히 ‘과거의 유산’인 한국에서는 어떨까? 정답은 이미 나왔다.

태상준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