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취업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와 나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을 때 나는 <섹스 앤더 시티>의 캐리가 될 줄 알았다. 잘나가는 전문직 여성, 비싼 하이힐을 신고 젊은 남자들과의 자유연애를 즐기는 나!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전셋값을 800만원이나 올려달라는 집주인 양반에게 ‘다른 집을 구할 때 까지 봐 달라’고 사정한 뒤 마주칠까 싶어 피해 다닌지 한 달 째다.

서울시 사당동에 위치한 약 12평의 전세 4000만원 옥탑방이 R양(29세·패션MD)의 보금자리다. 사회생활 4년차이지만 학자금 대출 갚고, 펀드에서 손실을 조금 봤더니 전셋값 800만원 낼 돈이 없다. 고민은 집어치우고 잠자리를 청한다. 그래도 여자는 피부가 생명이니까 1000원짜리 팩을 붙이고 열두시가 되기 전 눈을 붙인다.

AM 7:00
“자기야 일어나~ 자기야 일어나~” 얼마 전 구입한 싱글용 시계 알람이 R양을 깨운다. 일어나자마자 최근 홈쇼핑에서 구입한 1인용 전기매트의 전원을 끈다. 요즘 같은 쌀쌀한 날씨에 보일러를 틀자니 아깝고 잠자리에만 사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 추운 겨울 옆구리까지 시린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파트너, 남자친구 보다 낫다.

샤워를 하기 전 로봇 청소기와 미니 공기 청정기를 켠다. 집안 청소가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는데 로봇 청소기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출근 준비를 하는 한 시간 동안 켜 놓으면 12평 공간을 청소하기에 딱 맞는다. 젖은 머리를 말리면서 최근 구입한 정수기에서 물 한잔을 먹는다. 전에는 편의점에서 물을 사먹었는데 그것마저도 귀찮아하던 차에 미니 사이즈 정수기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이어 지난밤 마트 세일 시간에 사 둔 한 끼 분량 과일과 270g 낱개로 포장된 씨리얼을 뜯는다. 사실 R양은 아침을 꼭 챙겨먹는 스타일이다. 최근 15분 만에 취사가 가능한 1인용 밥솥을 구입해 아침을 잘 챙겨먹었는데, 오늘은 반찬이 없어 패스했다. 저녁에는 마트에서 장 좀 봐야겠다.

AM 11:30
점심시간, R양은 보험사 컨설턴드와 만났다. “암 진단·치료·사망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형 상품이예요. R고객님 나이에 싱글이라면 더욱 필요하죠. 나이가 들어도 보험료 인상이 없기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최적이예요.”

이 컨설턴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상품 설명에 여념이 없다. R양은 요즘 감기도 자주 걸리고 몸이 안 좋은 게 자신을 위한 보험 하나 정도를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저 가입 보험료 월 2만원에 일반암 진단시에는 2500만원이라니 나쁘지 않을 듯싶다. 서둘러 계약을 하고 나오니 점심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지난번 마트 미니존에서 구입한 적은 용량의 치약을 꺼내 서둘러 양치를 하는 R양. 샴푸·린스 미니 패키지는 집에 두고 쓴다. 큰 용량을 쓰면 1년을 훌쩍 넘기기 십상인데 빨리 쓰고 다른 브랜드 제품을 써볼 수 있고, 공간 활용도도 좋아 대부분 미니 제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PM 6:30
드디어 퇴근이다. 평소 다이어트 때문에 저녁은 간단한 칼로리 바 또는 바나나 한 개 정도를 먹지만, 오늘 아침은 시리얼로 때웠더니 배가 좀 출출하다. 집에 가서 간단히 밥을 해먹을 생각으로 반찬을 사러 R양은 마트로 향한다.

‘싱글녀를 위한 미니전기 오븐기’ 특가판매!! 아뿔싸, 보고야 말았다. 좁은 집에 이제는 그 어느 제품도 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깜찍한 사이즈와 레드 컬러의 세련된 오븐기를 보니 R양의 마음이 약해진다. “작은 사이즈라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을 테고, 자꾸 사먹으면 돈이 많이 드니까 여러 요리를 할 수 있는 오븐기가 있으면 좋겠군!” 스스로 장점을 열거하던 R양은 이내 카드를 긁어버렸다. 오늘 저녁 메뉴는 오븐기로 만든 그라탕이다.

PM 8:00
집 도착. R양은 주말에 다음 주에 먹을 수 있는 밥을 미리 해놓는다. 밥의 경우에는 1인분 정도씩 개별 포장해 냉동실에 넣어두면 정말 바쁠 때 유용하게 먹을 수 있다. R양은 미리 해둔 밥과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오븐기를 이용해 그라탕을 만들 계획이다.

냉동실을 열어 봤더니 밥이.. 없다. 생각해 보니 지난 주말에는 2주간 밀린 빨래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밥할 시간이 없었다. 혼자 사는 집에 큰 세탁기를 들일 수도 없어 작은 사이즈를 사용하다 보니 밀린 빨래 양이 많아 한꺼번에 처리할 수가 없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

R양은 배가 고프다. 어쩔 수 없이 냉장고 옆에 붙어있는 배달 음식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했다. “딩동!” R양은 이 순간이 가장 긴장된다. 평소 겁이 많은데다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배달 음식을 받아야 하지만 낮선 사람에게 문을 선뜻 열어 주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지난달부터 보안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무선 비상벨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그나마 안심이긴 하다. 이는 만약 집 안에 괴한이 침입하면 출동서비스나 경찰에 바로 신고가 접수되는 시스템이다.

R양은 저녁을 먹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그동안 밀린 드라마를 본다. 로봇 청소기를 한번 더 작동 시키고, 조금 건조한 것 같아 가습기를 틀었다. 오늘도 별로 한 게 없는데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싶은 R양. 때마침 친한 친구가 결혼 날짜를 잡았다고 전화가 온다. 타이밍도 기가 막히네! 묵혀뒀던 와인을 꺼내 한잔 하면서 내일 아침에는 밥을 먹기 위해 1인용 밥솥에 쌀을 미리 준비한다. 소파는 가변형 가구로 잠잘 때는 침대로 변신한다. 이제 잠이나 자야겠다. 침대에 누워 생각해 본다.

“내일 오븐기로 뭐 해 먹을까?” 혼자 살아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고, 나를 위한 작은 투자에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 R양이다.

1인 가구의 4대 소비 트렌드는
2011년 기준 대한민국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1인 가구다. 2011년 1인 가구의 연간 소비 지출은 50조 원에 이르고, 소비 지출액도 2인 이상 가구의 1인당 소비 지출액을 앞질렀다. 이제는 인구 비중과 소득 및 지출이 모두 높은 20~50대 1인 가구가 업계의 주력 소비자다.
1인 가구는 고립돼 생활하는 특성상 신체적 안전과 정서적 안정을 추구하며, 가족에 대한 의무가 적은 대신 자기 관리와 계발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인 편이다. 이에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1인 가구 4대 소비 트렌드를 살펴봤다.

①소형 : 크기는 줄이되 성능은 유지
1인 가구의 증가로 소형 주택, 가전, 생활용품이 인기다. 특히 크기는 줄여도 성능은 그대로인 초소형 고성능 가전제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더불어 가구와 가전이 설치돼 있는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 등 콤팩트형 주택에 대한 수요 또한 급증하는 추세다.

②효율 : 제한된 자원의 효과적 사용
제한된 주거 공간을 효율적이면서 심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멀티 기능 상품과 디자인 상품이 각광을 받고 있다. 시간을 절약해주는 레토르트 식품 시장이 매년 37.5%씩 고성장하고 있으며, 1인 가구의 주요 유통 채널인 편의점이 2006년 대비 2배 성장했다.

③안전 : 신체적 안전과 정서적 안정
고립된 생활을 하기 쉬운 여성과 고령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안전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보안과 안전을 결합한 여성 및 고령자 특화 가정용 방범 서비스가 인기다. 가사 지원 뿐 아니라 생활 전반의 안전과 편의를 지원해주는 생활지원 서비스도 등장했으며, 노후를 위한 연금형 금융 상품도 전 연령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④나 : 자기 가치 제고와 여가 향유
1인 가구는 가족 부양의 의무가 있는 2인 이상 가구보다 패션·미용·취미를 위한 상품의 주요 소비자다. 이들은 자기 투자에 적극적이며, 고가의 카메라나 자전거 같은 기호품 구매에도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이효정 기자 h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