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보험 분쟁 조정 신청은 1만3276건에 달한다. 작년 동기 대비 22.3%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계약 시 신청인들의 세심한 주의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또 설계사들의 교육강화 등도 요구된다고 언급했다.

# 2009년 5월, 유아교육학과에 재학중이던 B양은 정신 불안 증세를 느꼈다. 깊은 무기력증에 빠졌고 매사에 흥미도 잃었다. 중고교시절에는 적극적이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대학 입학 후에도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원활한 생활을 해왔다. 증세가 심해진 그는 모 대학병원에서 약 15개월 동안 향정신병 투약치료를 받는다.
그러던 2010년 8월 9일, B씨는 마지막 치료를 끝내고 자택 아파트 4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친인 A씨는 딸의 변액유니버셜종신보험에 가입한 상태였다. 가입은 B양이 정신 불안 증세를 호소하기 전인 2008년 12월 17일이었다. 딸의 죽음 후 A씨는 보험사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로부터 돌아온 것은 보험계약 해지통보였다. 분쟁의 시작이었다.

A씨는 이 같은 통보를 받고 약 보름 뒤,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보험사에서 응당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게 A씨의 주장이었지만 보험사 측은 A씨가 “고지 및 통지 의무(계약 전 알릴 의무)를 위반했다”고 맞섰다. 양측 간 분쟁금액은 1억3020만원이었다.

보험사가 주장한 ‘고지 및 통지 의무’는 보험 계약 전, 신청인이 보험사에 피보험자의 기존 병력 등에 대해 미리 알려야 할 의무다. 계약 청약서에 기재된 물음에 사실대로 답하면 양측 간 ‘신의를 토대로’ 해당 의무를 완수했다고 여긴다. 만일 체크한 사항이 허위로 드러날 경우 보험사에서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B양은 사실 보험 계약 전인 2007년에도 같은 증세로 내원하여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 측은 “그 연장선으로 2009년 정신질환 장애로 통원치료를 받았고 2010년에는 이 증세가 악화되어 추락 사망했으므로 보험가입 전의 병력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보험을 해지한 것은 타당하다는 입장. 하지만 A씨는 “2007년 내원할 당시에는 MMPI검사를 받았을 뿐이며, 검사 결과에 대해 향후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는 소견 외에 투약 등 치료는 없었다”고 응수했다.


늘어나는 보험 민원·분쟁, 왜?
위 사례에 대해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결국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위원회는 “심리검사 중 하나인 MMPI만으로 정신과적 진단을 내리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면서 “더불어 의도적으로 사망에 이른 게 아니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른 것이 인정되므로 보험약관에서 정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보험사고’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향후 발생할 사고의 위험에 대비하고자 하는 게 보험이다. 그렇지만 A씨의 사례처럼 ‘보장’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은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보험 민원은 2만3456건으로 전년(1만9688건) 대비 19.1% 증가했다. 이는 은행·비은행(2만2074건)보다 6.2%, 금융투자(1964건)보다 1094% 높은 수치다. 보험 분쟁 조정 신청 건수도 올 상반기 1만3276건에 달한다.

하루 82건 꼴이다. 이는 작년 동기(1만854건) 보다 22.3% 증가한 수치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최근 들어서 금융회사의 겸업화·대형화 등 금융환경이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보험상품이 복잡해지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보험민원과 보험분쟁도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사가 타 금융사 보다 분쟁이 잦은 이유에 대해 이 관계자는 “보험 상품은 보험금 지급요건을 충족하는지 엄밀한 판단을 필요로 하고, 보험금이 사후에 확정되는 상품이 많아 민원이 자주 발생한다”고 언급했다.

민원건수가 가장 많은 보험사로는 생보사는 삼성생명(1502건), 손보사는 삼성화재(2122건)가 집계됐다. 하지만 보험사마다 보유계약수가 천차만별이므로 민원 건수를 살펴볼 때 보유계약 수 10만 건당을 기준으로 삼는 게 좋다. 건당 기준으로 봤을 때 생보사의 경우 현대라이프(33.6건), PCA생명(32.2건), KDB생명(31.4건), ING생명(25.2건), 알리안츠생명(25.1건) 순으로 민원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손보사의 경우, 에르고다음(25.9건), 롯데손보(25.7건), 그린손보(25.2건)순으로 발생했다.

그린손보의 경우 민원건수 증감율이 -45.7%으로 감소폭은 가장 컸으나 여전히 민원건수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에르고다음, 롯데손보, 그린손해는 전년에 이어 민원발생율이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라이나생명과 에이스아메리칸은 계약 10만 건 당 민원건수가 가장 낮았다. 특히 라이나생명은 생손보업계 전체에서 가장 낮은 6.7건을 기록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민원발생은 소비자의 불만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면서 “소비자들은 보험사를 선택할 때 이 같은 수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보험상품 ‘불완전판매’, 분쟁 단골 유형
그렇다면 가장 자주 발생하는 분쟁 유형은 무엇일까. 유형은 총 7가지(보험모집, 보험금 등 산정, 면부책 결정, 보험금 등 지급, 계약의 성립 및 실효, 고지 및 통지의무위반, 장해 및 상해등급적용)로 분류되는데 접수 현황에 따르면 올해 특히 늘어난 유형은 ‘보험모집’과 ‘보험금 등 지급’이다.

실제로 분쟁 사례에서도 보험모집을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상품설명의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불완전판매가 여전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자연히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보험사와 소비자 간에 분쟁 또한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분쟁 유형은 ‘보험모집’과 ‘고지 및 통지의 의무 건’이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기타 항목의 경우 분쟁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라 여부가 결정되지만 두 가지 유형은 소비자가 계약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험모집’은 다른 말로 ‘불완전 판매’로 풀이된다. 즉, 보험을 판매하는 자의 불찰에서 비롯된 경우라는 얘기다. 이 국장은 “설계사(모집자)는 통상 3년 정도의 경력이 필요하며 비로소 전문가 수준이 됐을 때 보험 판매를 온전히 할 수 있다”면서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쟁을 야기시키게 된다”고 언급했다. 보험사에서는 설계사에게 ‘13개월 정착률’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설계사가 13개월 뒤에 얼마나 회사에 머물러 있느냐를 본다는 의미다. 이 국장은 “하지만 실제로 13개월 뒤 남아있는 설계사는 생보사의 경우 약 36%, 손보사의 경우 약 46%에 불과하다”면서 “3년이 흐르면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비단 숙련되지 않은 설계사 탓뿐만이 아니다. 실적에 급급해 무작위로 계약을 처리하는 경우 또한 ‘보험모집’ 분쟁을 부른다.

일례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이씨(35세)는 A형간염에 걸린 남편이 있다. 평소 교회를 다녔던 이씨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보험설계사 Y씨에게 남편C씨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던 중 Y씨로부터 솔깃한 얘기를 듣는다. “건강상태를 고지할 필요도 없고 자필 서명도 필요 없는 상품이 있다”는 것.

게다가 남편의 동의도 필요없다고 하니 이씨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 길로 이씨는 월보험료 50만원씩 납입하는 ‘통합보험’에 가입했고, 설계사 Y씨는 피보험자인 남편을 대신해 서명을 했다. 보험료를 2년 동안 1200만원을 납부한 어느 날, 남편C씨는 부인이 이 상품에 가입한 사실을 알게된다. “보험금을 몰래 타려고 한 것 아니냐”는 남편의 추궁에 따라 이씨는 가입하게 된 경로를 털어놨다.


그 과정이 미덥지 않았던 C씨는 해당 보험사 콜센터에 이는 ‘불완전판매’라며 항의했다. 보험사측은 ‘무효처리확인서’에 서명해서 보내면 기납입보험료를 돌려주겠다는 답변을 내 놨다. 남편은 “불완전판매인지도 모르고 2년 간 보험액을 납입한 것도 억울한데 보상 받을 길이 없냐”고 호소하며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현재 이씨는 기납입금액 1200만원만을 돌려받은 상태지만 납입금액에 대한 이자 및 기타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보험사와 맞서고 있다.

한편, 고지 및 통지 의무 위반 건은 2011년 상반기 1165건에서 2012년 상반기 946건으로 -18.8%의 증감률을 기록했다. 고지 및 통지 의무 위반 유형은 앞서 A씨의 사례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국장은 이에, “청약서를 작성할 때 질문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고 답변을 해야 한다”면서 “질문이 다소 모호할 경우에는 설계사에게 기준을 명확히 물어본 후 체크해 향후 분쟁의 소지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약서 작성, 아직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설계사 말에 따라 계약서를 작성했고, 꼬박꼬박 보험료도 납부했다. 그런데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소비자들은 민원을 제기한다. 문제 제기를 했다면 이제 해결할 차례다. 분쟁을 소송으로 해결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분쟁해결을 재판외적으로 하라고 권고한다. 보험관련 분쟁조정업무는 현재 두 가지 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설치된 금융분쟁조정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다. 위원회에서 조정안을 수락한 경우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중재업무는 중재법에 따라 상설중재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이 담당하는데 중재 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요구되는 점은 ‘사전 예방’이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보험계약은 냉장고를 고르듯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직접 만져보고, 비교해보라는 얘기다. 이 국장은 “평소 꼼꼼하던 사람이라도 보험 가입에 있어서는 관대해 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청약서에 서명을 하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서명은 반드시 본인이 직접해야 하며 ‘고지의 의무’가 없는 보험은 존재하지 않으니, 모호한 부분이 있으면 거듭 확인 후 명확히 체크해야 한다”면서 “약관의 경우도 무턱대고 넘기지 말고 최대한 숙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인이 추천한다고 해서 쉽게 가입하는 것도 금물이다. 이 국장은 “한 상품만 살펴볼 게 아니라, 최소 3개 보험사의 상품을 모두 비교해 본 뒤 선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보험은 엄밀히 따지면 상당히 고가의 상품”이라면서 “엄연히 ‘계약’을 하는 과정인데 이를 너무 쉽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향후 발생할 분쟁에 대비하여 청약서 사본 등 사실 관계 증명을 위한 증거 확보도 미리 해 놓는 것이 좋다.

한편 보험사의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조영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업은 금융분야에서 가장 많은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이미지가 형성돼 있다”면서 “이 같은 현상을 막기 위해 보험모집 시 소비자에게 상품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확하게 설명해 상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보험설계사에 대한 교육강화와 윤리준수를 유도하며, 가입 후에도 설계사가 보험금 지급 등의 서비스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보험사의 시스템 또한 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지현 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