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안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얼음 풀리는 봄 벌판에 어리는
연보라 달무리 해무리
실핏줄 속까지 수런거린다.

아기야 너는
어느 별자리에서 온 별이냐.
어느 동산의 잎사귀를 흔들던
바람이냐.

아기를 안으면
아지랑이 천지 된다.
아기 눈에서 피어나는
아기 아지랑이.
엄마 눈에서 피어나는
엄마 아지랑이.

-성낙희 <아기를 안고〉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감동이다. 사람이 감동하면 인체에 베타 엔도르핀(β-Endorphin)이 생성된다고 한다.

잘 알다시피 베타 엔도르핀은 체내의 암세포까지 해치우면서 인체의 젊음을 유지시키는 일종의 행복 호르몬이다. 그래서 감동은 인간에게 활력의 모체이자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동은 자연스럽게 감탄을 만든다. ‘우와’, ‘이야’, ‘아’ 등 감탄사는 감동의 자식이다. 감동 없는 감탄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감탄사는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많다. 왜 그럴까. 말 많이 하는 남성을 ‘촉새’라고 규정하며 비난의 대상으로 여긴 유교적 규범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때문에 감탄사에 익숙하지 않은 남성은 감동이 가져다주는 베타 엔도르핀의 생성이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다. 엔도르핀 생성이 적으니 우리나라 남성의 수명까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와 유엔인구기금(UNFPA)이 2008년 11월12일 발간한 ‘2008 세계인구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남녀 평균수명 차이는 11.2세(남성 71.1세, 여성은 82.3세)였다.

반면 선진국의 남녀 평균수명 차이는 6.8세(남성 73세, 여성 80.2세)였다. 우리나라 남녀 평균수명 차이가 선진국의 그것에 비해 훨씬 컸다.

스트레스와 감동은 반비례하는데 스트레스가 늘어나 감동이 줄어드니 엔도르핀의 생성도 그만큼 적어졌으리라. 오늘날의 한국 남성의 수명이 짧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반면 여성은 생리적으로 감동과 친하다. 감탄사를 쉽게 연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편이 퇴근길에 꽃 한 송이만 사다 줘도 감동한다. 그리곤 ‘어머, 예뻐라’ 하며 감탄을 쏟아낸다.

특히 여성에서 어머니로 그 상황이 달라지면 감동의 농도는 더욱 짙어진다.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감동을 받는다.

아이가 그냥 웃기만 해도 천사의 웃음이라고 과장하고, 옹알이를 듣고 말했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감동한다.

연필을 들고 놀다가 글자 비슷한 모양을 만들기라도 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천재가 태어난 듯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그리 뛰어난 외모가 아니어도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아이가 세상에서 최고 착하고, 최고 잘생긴 아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감동이 사랑을 잉태하고 정성을 낳는다. 감동이 출산한 사랑과 정성이 아이를 행복한 성장으로 이끈다.

최근 여성 CEO가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과연 집에서 아이 키울 당시처럼 감동을 많이 하고 있을까. 그때 그 감동의 심정을 직원과 나누고 있을까. 소비자에게 전하고 있을까.

남성 CEO들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행복의 원동력인 감동을 얼마나 회사 직원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을까.

이번에 소개할 시는 성낙희 시인의 <아기를 안고>라는 시다. 아기를 안고 감동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림을 보듯 선하게 드러난다.

아기를 안으면 달무리 해무리의 실핏줄 속까지도 수런거린단다. 어머니의 행복한 마음이 드러난 ‘감동의 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과장의 감동이 아기가 별이 됐다가, 바람이 됐다가 변화무쌍이다. 얼었던 땅도 아지랑이 천지가 되어 생기를 드러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대단한 힘 아닌가. 어머니의 감동은 이처럼 아이로 하여금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힘으로 일어선다.

CEO여, 시를 비롯한 인문학에서 감동을 받아라, 그리고 그 감동을 나눠라. 그리하면 어떤 고난과 불황도 이겨내는 기업의 지속성장 원동력을 얻으리라.

황인원 시인·문학경영연구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