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출처= 삼성전자
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출처= 삼성전자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네덜란드 ASML 본사를 방문한 다음 귀국한 후 다시 출국해 19일 베트남 현지 사업장 점검 및 베트남 총리 면담 등 해외 일정을 마치고 23일 재차 귀국했다.

이후 일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부회장은 “일본 고객들을 만나러 가야 할 것 같다. 일정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라고 답했다. 다만 재계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마주하고 있는 위기 극복을 위한 이 부회장의 철저한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네덜란드-베트남-일본의 ‘공통분모’  

이재용 부회장의 첫 번째 해외 행선지인 네덜란드 ASML은 극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EUV 노광기술은 극자외선 광원을 사용해 반도체의 원료인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통해 만들어지는 나노 단위 반도체는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는 AI·5G통신·자율주행 플랫폼에 반드시 들여가야 하는 부품이다. ASML은 세계에서 EUV 노광장비를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ASML의 노광장비 1대가 생산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천문학적 규모다. 장비 1대당 가격은 한화로 최소 1400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비를 공급받아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도 전 세계에서 손에 꼽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왼쪽부터 ASML 관계자 2명,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   출처=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왼쪽부터 ASML 관계자 2명,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   출처=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고성능 반도체 생산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며 2000년대부터 ASML과 꾸준하게 협력해 왔다. 2012년에는 ASML에 대한 지분 투자를 통해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2016년 11월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방문한 ASML 경영진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미세 공정 기술에 관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지난해 2월에는 2019년 2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또 한번 만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번 방문에서 이 부회장은 ASML의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CTO 등 최고 경영진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다시 한 번 논의했다. 

ASML 방문 직후에 이어진 이재용 부회장의 베트남 방문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바로 베트남 현지에 대한 ‘반도체 공장’ 건립 등 추가 투자 여부였다. 베트남 현지 언론들은 지난 20일 응우옌 쑤언 푹(Nguyen Xuan Phuc, 阮春福) 국무총리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베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삼성의 베트남 사업장들의 현황을 검토한 후, 다양한 방면에 거친 추가 투자를 고민하겠다”라면서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사업장들을 점검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출처= 삼성전자
베트남 사업장들을 점검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출처= 삼성전자

현지에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가전제품 생산공장이 가동되고 있으며 지난 2월부터 하노이에는 지하 3층, 지상 16층, 연면적 약 8만㎡ 규모의 삼성 베트남 연구개발 센터가 건립되고 있다. 베트남 일정을 마친 이 부회장은 다음 해외방문 행선지로 ‘일본’을 언급했다.

연결의 시나리오

이재용 부회장의 최근 해외 일정은 모두 반도체와 매우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ASML과의 만남은 EUV 반도체의 원활한 생산을 위한 협력관계 구축이 주된 목적이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의 지속으로 화웨이라는 중요한 고객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 직면한 삼성전자의 선택은 더 우수한 반도체를 만들어서 다른 부분에서 수요처를 우선 확장해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ASML과의 관계는 삼성전자의 미래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베트남의 경우 반도체 생산 역량의 강화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와 같다. 현재 삼성전자는 현지에 가전 생산법인과 연구개발 시설만을 운영하고 있다. 즉, 아직까지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 인프라는 베트남에 없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가 약속한 지원이 더해지면, 삼성전자는 현지에서 효율적으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일본 기업들과의 관계 개선은 반도체의 원활한 생산을 위한 준비다. 전 세계 기업들에게서 몰리는 반도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원료 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반도체 제작에 필요한 주요 원료들의 한국 수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이후로 불거진 우리나라와 일본의 외교 분쟁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인식은 이전보다 더 부정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게 일본은 매우 중요한 사업의 파트너다. 특히 삼성전자에게는 더 그렇다. 일본의 기업들은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반도체 원료의 공급 주체임과 동시에 반도체 수요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규제 강화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기자 이재용 부회장은 즉시 홀로 일본을 방문해 현지 파트너사 관계자들을 만나 갈등을 조율한 것은 삼성전자에게 있어 일본 기업들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일본의 반도체 원료를 우리나라가 아닌 베트남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직접 받는 우회적 연결고리 구축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말의 가능성이며 기술 유출의 가능성, 외교 관계 변수 등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다만 최근 이 부회장의 행보 교집합에 '반도체'가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다는 평가는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